다시 5월이 왔다. MBC가 가정의 달이 되면 방송하는 <휴먼다큐 사랑>이 올해에도 찾아왔다. 보기가 꺼려지는 경우가 있다. 사랑이라는 그렇게 잔인하고 서글플 수밖에 없는 가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긴 여운은 우리에게 사랑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곱씹게 한다는 점에서 아프게 바라보고 따뜻하게 새기게 해준다.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
꽃보다 아름다운 엄마와 어머니, 제주 마더 카페에는 세 모녀가 살고 있었다
68세 영혜씨는 할머니다. 아들이 아이를 낳았으니 할머니가 맞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두 분의 어머니가 있다. 105세인 시어머니 김말선씨와 88세 친정 엄마 홍정임씨와 함께 살고 있다. 제주 마더 카페에는 세 분이 모여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은 어머니와 두 할머니들을 모시려 한다. 하지만 엄마는 반대했다. 자신이 아직 모실 수 있는데 아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사별하고 힘겨워 하던 영혜씨는 그렇게 제주로 향했다. 그런 딸을 위해 친정 엄마 정임씨도 딸의 곁으로 향했다.
고향 마을을 떠나 살아본 적 없는 친정 엄마는 자신처럼 상처한 딸이 아팠다. 노래도 잘하고 잘 불러 동네 가수로 통하던 정임씨는 모든 것을 버리고 딸을 위해 제주도를 택했다. 그리고 서울에 머물러 있던 시어머니 말선씨도 제주로 모셨다.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던 시어머니에게 제주로 오게 한 것은 친정 엄마의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었다.
서로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두 할머니가 함께 살게 되었다. 사돈이 함께 사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군가 마음을 열면 쉽게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친정 엄마 정임씨의 노력이 만든 결과라 할 수 있다. 마더 카페에 사는 세 여성들의 공통점은 50이전에 모두 병으로 남편들을 떠나보냈다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병사한 남편. 그렇게 남겨진 아이들을 악착 같이 키워낸 어머니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105세가 된 시어머니 말선씨는 고관절 부상을 당한 후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항상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고, 누군가 옆에서 돕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카페 옆에 마련된 방에서 도란도란 살아가는 사돈의 모습은 행복하다. 웃음이 많고 사돈댁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정임씨는 딸이 할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평생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아야 했던 딸. 그런 딸을 돕고 싶어 고향도 버리고 사돈과 함께 사는 엄마는 그렇게 평생 엄마였다.
마실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에서 행복해 하는 정임씨는 하루 종일 사돈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 그렇게 잠시 주어진 외출 시간에 사돈 휠체어를 밀고 가까운 바닷가를 찾은 정임씨와 말선씨는 '클레멘타인'을 함께 부르며 매일 바다로 놀러 오자고 다짐하기도 한다.
68세 며느리 영혜씨는 허리를 다치며 시어머니를 보살피기 힘들어 요양원에 두 달 정도 모신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애처롭게 함께 살기 원하는 시어머니를 보고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 시어머니를 모셔오던 날 친정 엄마 역시 자신의 일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육체적으로 조금 편할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2개월. 그렇게 다시 하나가 되어 살기 시작한 세 모녀의 삶은 항상 행복할 수는 없었다. 12년을 두 분이 함께 사셨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성격도 다르다. 그렇게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기도 하는 평범한 두 분이다.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화남을 표시하는 말선씨에게 정임씨는 들꽃을 꺾어 화해를 청한다.
예쁜 꽃을 보고 화를 낼 사람은 없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가장 다정한 친구로 돌아간다. 잠든 말선씨 옆에서 '형제별' 노래를 부르는 정임씨의 모습은 그래서 더 짠하게 다가온다. 이 노래는 마치 이들 가족을 상징하는 노래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깔끔했던 시어머니는 고관절 부상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 장사도 해야 하는 며느리 영혜씨가 빨리 확인하지 못하게 되면 엉망이 되고 만다. 온 몸과 옷에 대변이 가득한 상황. 이런 상황을 모두 해결하기에는 영혜씨도 너무 나이가 많다.
친정 엄마는 가끔 서운해 한다. 모든 정성이 시어머니로 향해 있는 딸 때문이다. 이해를 하면서도 서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친정 엄마를 보면서도 어쩔 수 없는 딸은 거동이 불편한 그래서 소화 기능이 급격하게 떨어진 시어머니를 살뜰하게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혜씨는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꾸 친정 엄마가 시어머니에게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을 먹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이나 부드러운 빵이 아니면 소화를 할 수 없는 어머니에게 딱딱한 음식이 독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친정 엄마는 자신이 준 사실을 모른다.
깜짝 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 인가 친정 엄마는 좀 전에 먹은 식사도 잊는다. 아들이 왔는데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고 "저 아저씨"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영혜씨는 겁이 났다. 치매를 의심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자는 딸의 말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친정 엄마 정임씨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병인지. 가고 싶지 않다고 버텨도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병원에서 의사는 치매 간이 검사를 통해 인지 능력이 현격하게 떨어진다며 정밀 검사를 권했다.
치매가 의심된다는 소견이다. 거동이 힘들어 대소변도 가릴 수 없는 시어머니에게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딸은 엄마가 치매라는 사실에 서럽게 울었다. 자신이 보살피지 못해 그렇게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죄스럽기까지 했다. 애처로운 딸을 위해 사돈과 동거를 흔쾌하게 받아들인 친정 엄마. 누구보다 가장 큰 힘이 되었던 엄마가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참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엄마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딸이자 며느리인 영혜씨에게는 홀로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가 전해진다. 그 지독한 고통 앞에서 서럽게 울 수밖에 없는 영혜씨의 마음을 누가 이해하지 못할까? 다음 이야기가 무서워 보기 힘들 정도로 묵직함이 전해지는 <휴먼다큐 사랑>은 그렇게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휴먼다큐 사랑>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내용이 주는 가치의 힘이다. 그리고 따뜻함으로 감싸주는 내레이션의 힘도 부정할 수 없다. 시작부터 함께 했던 유해진 피디가 첫 작품에서 함께 했던 박혜진 아나운서의 언니인 배우 박지영의 목소리로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휴먼다큐 사랑>이 정말 따뜻한 것은 영상으로 전해지는 모든 그림들이 폭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영상은 피사체인 이야기의 주인공의 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만드는 이들까지 따뜻해서 좋다. 하지만 이 지독할 정도로 아름다워서 아픈 사랑 이야기는 여전히 힘들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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