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스포츠인들이 모여서 다양한 도전과 여행을 떠나는 예능인 <노는 언니>가 시즌 2를 시작했다. 1년 전 방송이 되던 시점에는 이 프로그램이 과연 얼마나 갈지 우려하는 이들도 많았다. 케이블 방송에 여성들만 나오는 예능의 한계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와 기우와 달리, <노는 언니>는 많은 화제를 몰아가며 판도 자체를 바꿨다. 여성 예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후 여성들만을 위한 예능이 정규 편성되는 등 효과도 보고 있다. 지상파 방송에서도 여성들의 풋살리그를 다룬 <골 때리는 그녀들>을 진행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다.
여성이 주체가 되어 방송을 이끌어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봐왔던 시대가 분명 존재했다. 그렇다고 그런 시도 자체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여성 아이돌들을 앞세운 <청춘불패>만이 아니라 <여걸식스>, <영웅호걸> 등의 프로그램이 존재했다.
남녀 비율의 차이나 아이돌 등 화제성을 모으는 여성 스타들을 앞세운 전형적인 예능의 범주에 그쳤다는 점에서 아쉬움도 있었다. 물론 그런 도전들이 있었기에 다양한 형태의 가능성들도 열릴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 그런 점에서 <노는 언니>는 그런 씨앗들을 통해 피어난 예능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남자 스포츠 스타들은 은퇴하면 자연스럽게 방송에 나와 새로운 존재감을 보이는 경우들이 많다. 현재까지도 다양한 남자 스포츠 스타를 앞세운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고 방송 중이다. 하지만 여성 스포츠 스타들의 경우 은퇴를 해도 설 자리는 없다.
그나마 잘해야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전부다. 심판이나, 감독, 코치라는 자리는 여전히 남자들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포츠 스타들을 앞세운 예능은 흥미롭기만 했다. 박세리라는 절대 강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포맷이었다.
박세리가 은퇴 후 다양한 예능들에 모습을 보이며 '리치언니'라는 별명을 얻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 박세리는 항상 왜 여성 스포츠 선수들은 홀대를 받는가에 대한 의문을 표했다. 그렇게 준비되어 시작된 <노는 언니>는 여성 스포츠 전현직 선수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초반 남자 게스트 MC를 불렀다 시청자들의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어설프게 남자 MC들을 불러 <노는 언니>를 흐리지 말라는 지적에 제작진은 다시는 이런 식의 진행을 하지 않았다. 물론 특집처럼 남자 스포츠 선수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것은 존재하지만, 극을 진행하는 위치에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2020년 8월 시작한 <노는 언니>는 1주년을 맞아 엄마가 된 스포츠 스타들과 여행을 하며 마무리했다. 그리고 9월 첫 방송으로 <노는 언니2>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올림픽 전에 진행되었던 '노는 언니동'이 다시 재현되었다.
멤버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이를 초대한 손님들에게 대접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다. 장소가 시내가 아닌 교외로 변화하며 족구를 하는 등 함께 즐기는 상황까지 추가되며 더 흥미롭게 만들었다. 팬데믹 시대 가장 합리적 선택이라고 보였다.
올림픽이 끝나고 많은 프로그램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이 초대받아 다양한 형태의 이슈들이 만들어졌다. 메달리스트에 대해 예우를 해준다는 점에서도 이는 당연하다. 이를 비난할 그 어떤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메달리스트의 예능 출연은 자연스러웠다.
문제는 여러 방송을 순회하듯 등장하다 보니 식상한 느낌을 받는 시청자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는 언니2>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기획을 했다. 올림픽에 출전한 여성 선수들만 초대했다.
양궁이나 배구 선수들을 초대하면 보다 큰 화제를 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메달을 받거나 큰 사랑을 받았던 종목 선수가 아닌,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을 초대했다. 메달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들 모두 올림픽이라는 무대를 위해 사력을 다해 노력했던 선수들이다.
메달의 유무로 갈리며, 그 노력들이 사라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들도 분명 존재했다. 메달을 딴 이들만 열심히 했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식의 이상한 논리나 시선이 존재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니 말이다.
여성 유도 선수를 시작으로 복싱, 배드민턴, 다이빙, 그리고 농구로 마무리되는 과정은 흥미롭게 시작되었다. 유도 대표로 나섰지만 아쉽게 메달을 따지 못했던 김성연, 윤현지, 강유정 등이 출연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78kg급 윤현지는 2016년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어깨 부상을 당해 긴 재활과 훈련을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9년 만에 올림픽에 출전한 윤현지 선수가 얼마나 사력을 다했을지는 직접 경기를 보지 않아도 상상만으로도 충분할 정도다.
비록 4위에 그치며 메달리스트가 되지는 못했지만, 기대 이상의 경기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검지 세레머니로 화제를 모았던 윤현지 선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자랑스러운 대표선수였다. 이를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올림픽에서 화제를 모았던 선수들 중 머리를 삭발한 여자 유도 선수가 있었다. 48kg급 강유정 선수는 계체통과에서 150g 초과해 과감하게 삭발을 감행했다고 한다. 감독이 가위로 직접 계체 10분 전 잘랐다고 하니,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많은 부상들을 당해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는 막내 강유정의 넋두리는 유도 선수들이 얼마나 고된 훈련들을 받아왔는지 알게 한다. 기자 인터뷰를 하면서 눈물을 보였던 강유정은 <노는 언니2>에서는 20대 초반 특유의 발랄함을 선보였다.
여성 유도 대표팀의 맏언니였던 70kg급 김성연은 개인전 16강을 기록했다. 하지만 혼성 단체전에서 몽골과 대결에서 무려 10분 간의 대결을 벌이는 투혼을 선보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10분 동안 대결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초인적인 힘을 내지 않으면 불가능한 대결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김성연은 박수를 받아 마땅했다.
경기 직후 은퇴 선언을 했던 김성연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시안 게임이 마지막일 수도 있고, 그전에 은퇴를 할 수도 있다는 말에 30대가 된 여성 유도선수의 고뇌가 잘 드러났다. 여성 스포츠 선수들이 은퇴 후 다양한 진로가 가능하면 좋겠지만, 좁은 문은 지속된다는 점에서 은퇴 후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 스포츠 감독이나 코치들까지 남성들이 독점하는 상황에서 은퇴를 앞둔 여성 스포츠 선수들의 고민은 당연히 복잡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들에게 각자 어떤 결과를 냈는지 묻는 과정은 순간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에게 너 몇 위 했냐는 질문보다 더 잔인한 것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그런 질문을 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주눅 들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서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워진 기회가 아니다. 최소한 자국에서 최고의 선수들이 나서는 무대다. 그런 점에서 올림픽에서 몇 위를 했느냐는 당일 컨디션과 운까지 결합된 결과물이다. 물론 그렇다고 메달을 딴 선수들을 폄훼할 이유는 없지만, 메달을 따지 않았다고 비난받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집착이 아닌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노는 언니2>는 그래서 반가웠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다양한 사연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이 메달을 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역시 누군가는 들어줘야 했다.
경험이 전무한 이들이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것과 달리, 운동을 해왔던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노는 언니2>의 공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들에게 메달은 결과물로 소중한 가치일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다.
어디에서도 불러주지 않은 노 메달리스트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그래서 반갑고 고맙게 다가왔다. 그저 이슈를 소비하는 방송과 달리, 목적이 아닌 과정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줬다는 것만으로도 시즌2 첫 프로젝트는 반갑게 다가왔다.
이제는 하나의 시그니처럼 되어가는 족구를 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부쩍 더 가까워졌다. 함께 땀을 흘리면서 친해지는 것은 당연하니 말이다. 유도 선수들을 시작으로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과 풀어갈 여성 스포츠 선수들의 도전들은 기대가 크다.
여성 스포츠 스타라는 점에서 홀대 아닌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노는 언니>는 새로운 가치의 장이다. 조금 엉성하고 어색함으로 다가오는 모습들도 존재하지만, 과정일 뿐이다. 다양한 종목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스타들과 만나, 직접 해당 종목을 경험해봤던 시즌1에 이어 시즌2는 어떤 흥미롭고 재미있는 과정들을 담아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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