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는 과연 우리 사회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막장 드라마는 뜬금없이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가 잉태하고 키워낸 막장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니 말이다.
막장과 정치는 동일하다;
변화는 곧 우리 스스로 시작해야 한다, 막장을 만들고 키운 것은 모두 우리들이다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로 큰 사랑을 받는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은 신기할 정도다. 막장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보는 이 묘한 심리가 곧 대한민국에 '막장 드라마' 전성시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도가 되니 막장계의 대부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제는 계보까지 만들어질 정도라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막장'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에 대해 비난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막장'은 말 그대로 갱도의 끝을 나타내는 말이다. 더는 갈 수 없는 곳.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광부들의 고통과 노고가 그대로 전해진다. 그런 점에서 '막장'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많았다.
대한민국은 드라마 왕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엄청난 드라마가 생산되고 소비되고 있다. 임성한, 문순옥, 김순옥으로 대변되는 막장 드라마 작가들의 향연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물론 최고라고 불리는 임성한이 은퇴를 선언하며 그녀의 막장 전설은 끝이 났지만 다른 막장급 드라마들은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는 드라마의 특징은 분명하다. 일단, 직관적이다. 복잡하고 어려우면 안 된다. 쉬운 이야기 구조가 막장 드라마의 시작이다. 출연진들에게 강렬한 공감을 부여하고, 지독한 악역은 필수다. 여기에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한다. 이런 특징들을 생각해보면 나쁠 게 없다. 모두가 지향하는 방식이니 말이다. 문제는 그 안에 담고 있는 가치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르 드라마는 복잡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런 복잡함이 곧 장르 드라마의 특징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국내에서 장르 드라마가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막장 드라마에 익숙한 상황에서 장르 드라마는 시청자들도 함께 고민을 하며 그 내용을 따라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직관적이라는 것은 큰 장점이다. 보자마자 알 수 있다는 것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를 담아내는 드라마에서 직관성이 모두 좋다고 볼 수는 없다.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직관만으로 모든 것을 풀어낼 수는 없으니 말이다.
드라마 왕국인 대한민국에서 성공하는 막장의 공식 중 으뜸은 '욕하면서 본다'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막장 드라마를 비난하고 비판하면서도 시청률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 안에서 '욕을 해야만 하는 대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출연진들에게 강렬한 공감을 부여하는 것은 어떤 이야기에서나 중요하다. 우리가 익숙하게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은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등장하는 절대적인 악역들은 '막장 드라마'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욕을 하면서도 본다'의 공식이나 원칙은 바로 이런 악역들에게 있다.
얼마나 지독한 악당인지에 따라 '막장 드라마'의 등급도 달라진다. 점점 더 악랄해지는 악당들이 존재하면서 '막장 드라마'는 곧 생명력을 얻는다. 주인공이 얼마나 큰 시련을 가질 수 있느냐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이들 이야기의 핵심이 최악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에 있다.
'막장 드라마'도 역사를 만들면서 점점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가는 듯한 모습이다. 기본 공식을 뛰어넘는 좀처럼 범접하기 힘든 존재들까지 등장하니 말이다. 여기에 암세포도 생명이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그들의 세상은 그들만의 세상이다. 이제는 패륜은 일상적인 공식으로 자리 잡은 '막장 드라마'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질 정도다.
이제는 은퇴한 임성한의 '압구정 백야'가 다시 화제다. 패악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대표적인 사회악 드라마로 손꼽히며 방송위에 중징계를 받았다. 드라마 자체에 대한 징계만이 아니라 '드라마 관계자 중징계 처분'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징계로 화제를 모았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에 이 사건 방송을 방영한 방송편성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대사 및 극의 내용이 사회적 윤리의식, 가족의 가치를 저해하고, 가족구성원 간의 정서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MBC는 이에 반박하며 불복 소송을 냈고 최근 법원의 첫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막장 드라마와 관련해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다. 표현의 자유가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 시청 보호 시간대에 이런 내용의 드라마가 방송 편성 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직시다.
청소년을 보호하는 시간대라는 것이 모호하고 기이하기는 하지만 재판부의 선택은 사회적 윤리의식과 가족의 가치를 저해하며 가족 구성원 간의 정서를 왜곡 시킬 수 있는 드라마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막장의 필수 요소가 재판부는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막장 드라마'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킨 <압구정 백야> 논란이 막장을 끝내는 계기가 될지 알 수는 없다. <압구정 백야>는 막말, 폭력묘사, 점술 등 비과학적 내용, 지나친 간접광고 등을 이유로 지난해 3월과 5월 법정제재인 '관계자 징계'와 '경고'를 받았다.
실제 의결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방송심의소위원회 의원 5명 중 4명이 '프로그램 중지' 의견을 낼 정도로 '막장의 끝'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은 중요하게 다가온다. 방송 중인 드라마를 중지시키고 싶을 정도로 끝까지 가고 있다는 지적은 심각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막장 드라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압구정 백야> 논란 이후에도 여전히 '막장 드라마'는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논란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막장 드라마'는 제작되고 있고 크게 성공하고 있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방송사들이 이런 비난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막장 드라마'를 고수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소위 돈이 되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그들은 결코 '막장'을 놓지 않을 것이다.
'막장 드라마'는 우리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그런 말들은 사실이다. 우리 정치를 보면 왜 그런 말이 사실인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모든 것들을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에 대입해 보면 '막장 드라마'는 그저 TV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여의도에서도 상시 방영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회 전체를 막장으로 몰아가고 있는 정치는 분명하게 바뀌어야만 한다.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잘못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바뀌지 않는 것은 '막장 드라마'를 '욕 하면서 보는 것과 같은 이치'로 다가온다. 엉망이 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선출직 대의민주주의에서 그들을 만드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다.
'막장 드라마'가 사라지는 것은 시청자들이 외면하면 된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드라마는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잘못된 정치를 바꾸는 것 역시 국민들의 몫이다. '막장 드라마'가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가듯 엉망인 '정치' 역시 그렇게 잔인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막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제는 국민들 스스로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버렸다는 사실이 공포스럽다. 스스로 바꾸려 노력하지 않는 한 결코 잘못이라고 지적되는 것은 사라질 수 없음을 '막장 드라마'는 잘 보여주고 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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