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동안 이들이 예능에서 자주 활약하지 못했을까? 그만큼 새로운 시도에 둔감해왔다는 의미일 겁니다. 4, 50대 남자 연예인들이 무한 반복하듯 예능을 지배하고 있는 시장에서 2, 30대 여자 연예인들을 발굴한 나영석 사단이 고맙게 다가올 정도입니다.
새로운 인물들을 찾아내고 그에 적합한 예능을 만드는 것은 그 일에 종사하는 이들의 책무죠. 하지만 그동안 그들은 참 편하게 일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의 포맷이 성공하면 이를 끊임없이 재생산만 할 뿐 새로운 도전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김태호 vs 나영석이라는 구도가 만든 황금기는 이미 지나갔고, 이들을 대처할 새로운 예능 피디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역시 우리 예능의 정체기와도 맞물릴 수밖에 없죠. 그런 점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필요한 시점에 나영석 사단은 단순하지만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듯합니다.
'뿅뿅 지구오락실(이하 지락실)'의 경우 완전히 새롭다고 볼 요소는 없습니다. 여행을 하는 예능이란 기본 틀 속에 식사와 게임을 연결하는 방식은 나영석 사단이 꾸준하게 사용하는 툴(Tool)이니 말이죠. 이런 형식에 기존의 남자 연예인들과 함께 했다면 식상함의 끝판왕이었을 겁니다.
단순히 여자 연예인들로 채웠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흥미로운 전개가 가능해졌다는 것은 많은 것들을 시사합니다. 이제 스무 살이 된 유진부터 서른두 살 맏언니 이은지까지 확 낮아진 나이대가 주는 신선함은 그대로 프로그램에 전달되었습니다.
나영석 사단은 그동안 함께 나이들어 간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오래 함께 한 이들과 꾸준하게 예능을 해왔습니다. 강호동의 경우 오십이 넘었고, 다른 멤버들 역시 사십 대가 주를 이룰 정도로 익숙함으로 점철된 인물들이 대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나영석 사단의 의외의 선택을 했습니다.
여성 예능을 힘겨워하던 그들은 과감하게 세대교체를 할 수 있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들이 과연 어떤 재미를 선사할 수 있을지, 그들도 미처 알지 못했을 겁니다. 이은지, 미미, 이영지, 안유진으로 이어진 라인업은 화제를 모을 정도는 아닙니다.
이런 조합으로 과연 어떤 예능을 만들지 궁금했지만 통했습니다. 시작부터 노골적 B급 장르를 드러내며, 자신들만의 유니버스를 만들고 그 안에서 수많은 변주가 가능한 틀을 가지고 이들과 태국으로 떠난 여정은 또 다른 지구로 온 토끼를 잡는단 설정이기는 하지만, 4명의 용사들에게 붙잡힌 제작진들의 모습이 더 재미있게 다가올 정도였습니다.
태국에서 이틀째를 보내는 이들의 텐션은 이제는 나이 들어버린 나영석 피디를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왕성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이내 나 피디 예능에 익숙해진 그들은 오히려 제작진들을 보채기에 여념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게임 중독자라고 나영석 피디를 불렀던 그들은 실제 게임 중독자였죠. 끊임없이 게임을 갈구하고, 마음껏 "영석이 형"을 외치는 이들은 새로운 세대가 맞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에 가깝고, 마음껏 자신의 의견을 말할 줄 아는 세대가 보여준 예능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청개구리 가위바위보'라는 단순하지만 흥미로운 게임은 나영석 사단이 많은 준비를 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너무 단순해서 이걸 어떻게 틀리냐고 말할 수 있지만, 막상 해보면 적응하기 어려운 게임은 그 자체로 재미였습니다.
게임을 요구하는 영지가 알고 봤더니, 구멍이라는 사실은 이 과정이 만들어낸 재미였습니다. 가상의 상황을 만들고, 그 세계관을 정상이라고 만드는 과정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상황에 몰입하며 시청자들에게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이번 세계관은 흥미롭습니다.
조용히 강한 안유진은 오히려 게임 에이스가 되고, 당당하고 주도하던 이영지가 무기력하게 무너지며 결국 게임을 망치게 만드는 상황 역시 의외성이 만든 결과가 준 재미였습니다. 태국 맥주를 걸고 한 게임에서는 졌지만, 과정에서 주는 재미는 그동안 느끼지 못한 예능적 즐거움이었습니다.
'레트로 음악 게임'은 이들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Y2K 의상으로 여정을 시작했다는 것을 들어 '2000년대' 초반 음악을 틀어주고 가수와 제목을 맞추는 단순한 게임이지만, 2003년생 유진과 2004년 생 영지에게는 이는 미지의 세계일 수도 있었습니다.
야식을 걸고 벌이는 이 게임의 절대 강자는 당시를 즐겼던 은지라고 확신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또 달랐죠. 언니만 둘인 미미가 다크호스가 되며, 상황을 주도하는 과정도 흥미로웠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게임 결과를 맞추자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는 그들의 모습에 제작진들이 당황하는 것도 재미였습니다.
미미의 춤은 그렇다고 하지만, 유진이 게임에서 이기자 바로 나와 시키지도 않았는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나영석 피디를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전혀 의도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상황에 찐 당황하는 나 피디의 모습은 이 예능이 왜 흥미롭고 재미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함께 생활하던 은지가 유진을 보고 "애 좀 이상한거 같애"라는 말은 그의 예능감을 엿보게 합니다. 솔직하면서도 외모와 달리, 열심히 노래하고 게임에 집중하는 모습은 유진에 대한 기대를 더욱 크게 했습니다. 돌+아이인데 걸그룹 리더라는 타이틀이 주는 이질감이 유진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단순한 노래 퀴즈마저 콘서트 장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들의 텐션은 나영석 사단의 판단이 옳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습니다. 나 피디가 자신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느냐고, 출연진에게 하소연하는 모습은 이전 예능에서 볼 수 없었던 재미였습니다.
나 피디에게 "영식이 형"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부를 수 있는 상황은 이 예능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기준점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의 경직을 넘어, 그저 친구 같은 관계도 뛰어넘는 새로운 세대의 접근 방식이 "영식이 형"이라는 호칭에 모두 담겨 있으니 말이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막내 안유진의 매력은 뭘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솔직함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현역 아이돌이 떨지도 않고 예능 베테랑 앞에서 오히려 상황을 주도하는 것은 대단할 수밖에 없죠.
"호동이 형"과 "수근이 형"으로 "영식이 형"을 경악하게 했던 막내의 이 당당함과 게임에 빠르게 적응하며 상황을 주도하는 능력은 유진에 대한 기대치를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국내 최고 예능 피디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그 당당함이 곧 유진의 매력이었습니다.
그저 여성 멤버들로 꾸린 것이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나영석 사단은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영석 사단이 만들어갈 새로운 예능의 유니버스는 이들 4명의 용사가 기준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얼마나 성장해나갈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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