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고뇌 속에는 우리가 요구하는 군주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범인을 찾기도 힘겨운 상황에 시체가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설왕설래하지만 '밀본'은 이미 그들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합니다. 성상문이 시체를 빼내와 박팽년과 함께 시체를 검사한 이유는 자신들에게도 존재하는 문신 때문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누가 무슨 이유로 자신들 주변인들을 살해하는지 알 길이 없었던 그들은 채윤이 자신들을 대상으로 문신을 검사하겠다고 이야기를 하자 의문점은 자연스럽게 죽은 이들에게도 같은 문신이 있는지에 쏠릴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만약 같은 문신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그들은 분명 세종의 사람들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한글 창제를 위해 서로가 모르는 상황에서 문자를 만들기 위한 연구를 행하던 이들이 차례대로 숨지는 상황은 세종에게는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이 후대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이들이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은 그를 곤혹스럽게 하기 때문이지요.
'밀본'이라는 단어가 죽은 이의 마지막 메시지로 전해지며 선대왕이 경고했던 일이 사실로 일어나고 있음에 두려움을 느낀 세종은 선대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 조말생을 만납니다. 조말생 역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의 중심에는 '밀본'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정도전의 집 지하에 남겨져 있는 문구를 세종에게 보여주며 본원은 현재 정도광의 아들인 정기준이 이끌고 있다는 말은 남깁니다. 세종이 살리고 싶어 했던 존재인 정기준이 여전히 살아있고 그들이 바로 밀본의 3대 본원임을 이야기하며 그를 은밀하게 조사한 조사일지를 세종에게 건넵니다.
채윤은 범인들이 '밀본'이라는 사실을 알지는 못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적하는 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조립하고 그 가능성들을 열거해 범인을 좁혀가는 그의 능력은 탁월하지요. 허담학사의 미망인에게 자신이 건넨 물건이 '비바사론'이라는 범어로 된 불경이라는 사실을 알고 '벽사제' 주인과 그 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는 증언을 듣고 의문의 공간으로 향합니다.
벽사제에서 마주한 채윤과 윤평은 순간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채윤은 소이가 그려준 팔찌를 통해 그가 가면을 쓴 범인임을 확신하고 이미 얼굴을 하고 있는 윤평으로서는 그에게 경계를 하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그 긴장된 상황에서 도주를 하는 윤평과 그를 잡으려는 채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세종은 주변 사람들이 '밀본'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모든 일을 중지시킵니다. 핵심적인 자료들만 취합하고 모두 자신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라는 어명은 은밀하게 이어지지만 이런 움직임은 '밀본'세력 역시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세종의 어명에 따라 연구를 하던 장교리는 소이에게 자료를 넘기려다 윤평에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장교리와 소이의 관계 이를 중심으로 소이의 정체가 더욱 의심스럽기만 한 상황에서 채윤과 윤평의 대결은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같은 스승에게 배운 '출상술'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는 그들. 그들의 대결 속에 숨겨진 이방지의 존재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상황에서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조선 제일 검이라는 무휼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겼던 최고 무사. 2년 전 갑자기 사라진 채윤의 스승 이방지. 그만이 알고 있는 비술들을 이용해 연이어 세종의 주변 인물들이 연쇄 살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채윤은 의구심이 커지기만 합니다.
윤평으로서는 자신이 사용하는 출상술을 사용하는 채윤이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를 사용하는 이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채윤이라는 존재는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벌이는 대결이 무협지에서 보던 방식이라 뜬금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의 하나로 생각해본다면 무척이나 의미 있는 대결이었습니다.
인본 정치를 행하려는 세종은 선대왕이 행한 힘의 정치를 버렸습니다. 자신이 솔선수범해 똥지게를 지기도 하고 백성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밤잠도 잊고 살아가는 그였지만, 현재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세종을 혼란스럽게만 합니다. 권력을 위한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의 권력을 위한 자기 합리성은 세종을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무기로 작용하는 모습은 현대의 우리 상황과도 많이 비슷합니다.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말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 가장 뛰어난 인재들에게 어문을 연구하게 했지만 '밀본'이라는 조직이 그들을 살해하며 자신을 위협하는 현실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정치는 왕이나 신하나 모두가 바라는 정치임에도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인본의 정치가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도록 합니다.
사람을 믿느냐는 세종의 말에 무휼은 "전하를 믿사옵니다"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똘복이를 죽이려는 무휼에게 왜 죽이려고 하느냐는 말에 "그의 살기도 믿기 때문입니다"라 말하는 무휼의 대답은 세종을 더욱 힘겹게 합니다.
"이래 저래 왕이란 사람을 죽이는 자리였나 보다"
라며 헛헛한 웃음을 짓는 세종은 허탈하기만 합니다. 내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때 사람을 죽이고 싶은 때라는 세종은 이 한 마디로 현재의 혼란을 규정합니다. 이런 혼란함 속에 세종이 선대왕들처럼 강력한 '피의 정치'를 했다면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한글 역시도 우리에게는 전해지지 않았을 테니 말이지요.
드라마 속에 중요하게 자리 잡기 시작하는 정기준의 정체에 대해 많은 이들은 궁금해 합니다. 그가 '밀본'의 3대 본원임은 이미 시작과 함께 알리고 있었기에 다들 숙지하는 사실이지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그가 과연 누구일까에 대한 궁금증은 <뿌리깊은 나무>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제작진은 이미 심종수를 통해 정기준에 대한 속임수를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시청자들에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게 했지만 너무 일찍 정체를 드러낸 심종수는 완벽한 존재감으로 정기준일 가능성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은 가리온이 정기준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들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가리온이 그 역할을 수행하기에 적역이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지요. 윤제문이라는 배우의 명성을 봐도 그가 정기준을 맡으면 제법 반전을 수행하기에 적합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역할로 인해 그는 정기준일 가능성은 더욱 멀어졌습니다. 숙련된 시체 해부 실력과 이를 통해 의문을 풀어가는 능력과 소통은 정기준이라 이야기를 하기에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 조말생이 건넨 정기준 수사일지에 그려진 그림 속의 존재와 가리온은 일치하지 않고 끊임없이 정기준을 추적해온 그가 가리온이 정기준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고 보기에는 억지가 많기 때문이지요. 여기에 의문스러운 남자가 등장했고 그가 정기준일 가능성은 높기만 합니다.
가리온 밑에서 일을 하는 이 낯선 남자는 대사 한 마디 없이 스치듯 지나갔지만 7회에서도 단 한 장면 등장 속에서도 뭔지 알 수 없는 웃음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정기준일 가능성은 높아 보입니다. 수사일지에 그려진 그림과도 유사한 그가 정기준이라면 어느 시점에서 그 정체를 드러낼지도 기대됩니다.
정기준의 숨겨진 정체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추리 형식을 취하고 있는 드라마의 특성상 숨겨진 존재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을 뿐이니 말입니다. 중요하지만 숨겨진 존재들이 조금씩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뿌리깊은 나무>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죽음 속에 숨겨졌던 정체들이 드러나며 반격을 준비하는 세종과 사건을 해결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채윤의 모습은 볼수록 흥미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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