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로 종결된 <아르곤>은 마지막까지 그 힘을 놓치지 않았다. 미드타운 사건 해결 과정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된 이 드라마는 짧아서 더욱 강렬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언론 총파업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은 무엇이고,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기자는 영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붕괴한 언론의 존재 가치를 되살린 아르곤, 양심고백을 통해 얻어낸 언론인의 가치
2년 계약직으로 들어온 시용 기자 연화는 연장보다는 기자로서 삶을 선택했다. 비굴하게 연장하기보다 단 한 번이라도 기자로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그는 집요하게 미드타운 사건을 추적했다. 백진의 독려도 존재했지만, 연화의 집요함이 없었다면 큰회장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미드타운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미드타운은 처음부터 불법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세워져서는 안 되는 곳에 불법으로 지어진 미드타운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숨져야 했다. 엄청난 인명 사고가 벌어졌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
불법 건축의 위험성을 알린 현장 소장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그들의 중심에는 큰회장이 있었다. 모든 것을 감춘 기록들.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기록들은 의외의 곳에 존재했었다. 지역 신문들에서 기공식 기사를 찾기 시작한 연화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한 인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모든 행사 사진에 존재하는 이 낯선 존재는 바로 부동산 사기범 윤덕수였다. 많은 이들은 윤덕수가 구속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집행유예로 풀려난 윤덕수는 자신을 숨기고 거대한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사건의 실체는 그렇게 '아르곤' 팀에 의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복귀한 윤덕수를 확인하기 위해 연화가 찾은 것은 서장혁과 일을 했던 수영이었다. 서 사장 단란주점에서 일하다 회사를 옮긴 수영을 통해 큰회장이 미드타운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큰회장의 실체가 윤덕수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딜레마는 시작되었다.
윤덕수를 고소한 양호중은 바로 '아르곤'과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김백진이 보도했던 그 사건으로 인해 미드타운이 세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착한병원 시민단체'의 부패 밝혀내기 위해 백진의 아내가 그들을 만나러 가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백진은 그 사건으로 인해 윤덕수와 양호중이 한 패였다고 확신했다. 큰회장과 손잡고 병원 설립을 막았다고 백진은 생각하고 있었다. 3년 전 사건에서도 그랬지만 백진은 자신의 확신만을 믿고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너무 확고한 신념은 오히려 독이 되어버렸다.
양호중이 소명 자료를 보냈지만 백진은 그 자료를 읽지도 않았다. 아내의 죽음에 그들의 소명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시민단체의 탈을 쓴 악랄한 자들이 벌인 결과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런 잘못된 확신은 결과적으로 오보를 만들어냈다.
그 오보는 결국 병원 설립을 불가능하게 했고, 그 자리에 미드타운이라는 온갖 비리의 집합체가 세워지는 이유가 되었다. 가장 강직하고 기자다운 기자였던 백진은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불법 후원 비리를 확인하고 양심 고백을 설득하기 위해 가다 사망한 아내로 인해 백진은 기자로서 본분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엄청난 오보는 만들어졌다.
보고 싶은 진실만 봤던 백진의 실수 한 번은 모든 것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미드타운이라는 거대한 비리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백진의 실수도 드러내야 한다. 이는 백진의 기자 생활은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다. 그 끝이 비리 언론인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독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백진은 용기를 냈다. 자신의 잘못을 밝혀 거대한 비리의 끈을 끊을 수 있다면 충분히 희생하겠다고 생각했다. 평생 올곧은 기자로 살아왔던, 아니 그렇다고 스스로도 확신했던 백진은 힘든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따르던 후배들 조차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가 던진 "우리도 보호막이었다"는 말은 강렬함으로 다가온다.
언론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 한 마디로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언론은 사회의 부패를 막아내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 9년 동안 언론은 그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허물었다. 그 둑이 무너지며 부정부패는 일상이 되었고, 결국 그 모든 비리를 막기 위해 다시 국민이 거리로 나섰다. 그렇게 적폐들은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그 청산 작업들은 시작되었다.
힘겹게 준비한 방송은 HBC 사장으로 인해 방송 송출이 막히고 만다. 비리의 고리 속에 HBC 사장도 연루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신을 고발하는 방송을 내보내게 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선택한 것은 진실이었다. HBC가 아니더라도 언론사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자들이 연루된 이 사건은 다른 언론사들도 제대로 취급하지 않았다.
완벽한 벽에 갇혀 버린 그 진실은 백진의 용기로 세상에 등장했다. 송건식 언론상 수상자가 되어 시상을 하는 과정에서 백진은 자신이 3년 전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충격적이었다. 방송 생중계가 되는 상황에서 김백진이 밝힌 자기 반성과 고발은 거대한 미드타운 비리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모두가 막았던 그 사건은 그렇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연루된 자들은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방송사 사장, 국토부 차관, 현직 검찰 등 수많은 이들은 공범이 되어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백진의 이 용기는 그렇게 언론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었다.
백진이 선배인 근화와 주고 받는 말들 속에 언론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들이 들어 있었다. 언론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그 고민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언론이 무너지면 세상은 암흑이 될 수밖에 없다. 권력의 시녀를 자처하고 그렇게 바른 보도를 포기하는 순간 세상은 악랄한 탐욕자의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명박근혜는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했다. 그리고 그 통제 속에서 그들이 무슨 짓을 해왔는지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 엄청난 비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언론이 침묵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도 그들의 비리 공범임을 부정할 수 없다.
기자는 영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건 사람들은 영웅의 말을 그대로 믿기 때문이라는 백진의 발언은 그래서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기자의 역할은 결코 쉬운 직업이 아니다. 선과 악이 명확하게 가를 수 없는 세상에서 <아르곤>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적당히 떼가 묻은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MBC와 KBS의 총파업이 4주차를 맞이하고 있지만 아직 변한 것은 없다. 그리고 언론에서도 이들의 파업 소식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게 바로 우리가 맞닥트리고 있는 현실이다. 언론이 붕괴되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이를 재건하는 것은 힘겨운 일일 수밖에 없다.
파업 중인 언론 노동자들이 극중 김백진처럼 용기를 내서 파업을 하며 언론인으로서 당당해지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 그리고 그들의 투쟁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들의 파업을 응원한다. 그들이 바른 보도를 하는 언론인으로서 다시 돌아온다면 대한민국에 이명박근혜와 같은 시대는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적폐 청산의 시작은 언론이 바로서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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