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를 걷어내고 대세로 자리를 잡은 일밤의 힘은 극리얼에 있습니다. 예능이면서도 리얼을 극대화한 승부수가 통했다는 점에서 일밤의 핵심에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끝판왕이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은 극단적인 리얼에 있습니다. 대세가 된 일밤과 달리 기존의 방식으로 투박하게 승부하는 런닝맨의 힘이 새삼스럽게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힘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능의 진화 혹은 퇴보;
치열한 일요 예능 전쟁터에서 맞붙은 극리얼과 리얼의 차이
MBC 일밤은 <아빠, 어디가>가 나오지 않았다면 폐지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그 시간대에 만들어졌지만 언제나 최악의 평가를 받으며 조기 종영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밤을 죽음에서 살려낸 <아빠, 어디가>는 단순한 예능이상으로 MBC에게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빠, 어디가>의 성공으로 인해 힘을 얻은 일밤은 연예인들의 군부대 체험을 중심으로 한 <진짜 사나이>를 통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쾌거를 만들어냈습니다. 극 리얼을 표방하는 두 프로그램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은 아닙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 두 프로그램은 앞선 프로그램들의 성공이 만든 결과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행 버라이어티라는 장르를 구축한 <1박2일>은 <아빠, 어디가>가 만들어질 수 있는 근간이었습니다. 여행이라는 테마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에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 방식은 아이들과 아빠의 여행이 가능하도록 해주었습니다. 만약 <1박2일>이 없었다면 <아빠, 어디가>는 탄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이 두 프로그램의 관계는 긴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존의 여행 버라이어티가 익숙해져서 식상해진 상황에 연예인들과 그 아이들이 함께 하는 여행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진짜 사나이> 역시 처음이라기보다는 <푸른거탑>이 큰 성공을 거둔 후폭풍이 만든 결과였습니다. 여성들에게 가장 싫은 이야기 중 하나가 군대 이야기라고 하듯, 남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군 이야기를 <푸른거탑>은 남녀노소가 모두 즐겨도 좋을 하나의 재미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군대 이야기가 단순히 남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가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은 결국 <진짜 사나이>가 만들어지게 했고,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두 프로그램의 특집은 극리얼을 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프로그램의 특성상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큰 틀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은 출연자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아빠의 여행, 군 체험이라는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그 여정들은 새로운 재미를 찾는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여행에서 얻어지는 교훈과 감동은 아버지와 아이들이라는 콘셉트로 더욱 강렬해졌습니다. 가족이지만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던 아빠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서로의 정을 나누고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그들의 모습은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서로 아빠와 아들 혹은 딸을 재발견하는 과정이었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는 타인의 가족이지만 그들을 통해 자신들의 가족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그저 연예인 자식이라는 의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던 이들이 시간이 흐르며 스타가 되어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현상이나 재미로 이어지며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웠습니다. 예능이 만들어지고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며 하나의 문화로 성장하는 과정을 아주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행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낯선 군대 이야기가 이렇게 예능이 되고 성공을 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푸른 거탑>의 성공으로 어느 정도 가능성을 점칠 수는 있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안정적인 예능으로 자리 잡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빠, 어디가>의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방식은 시청자들에게 익숙함으로 다가왔고, 군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뒤늦게 합류한 박형식이 아기병사라는 닉네임을 얻으며 캐릭터 구축에 성공하며 <진짜 사나이>는 보다 폭넓은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군 생활을 하나의 예능으로 풀어내며 무섭고 두렵기만 하던 군을 보다 편안하고 좋은 공간으로 뒤바꾼 <진짜 사나이>는 군에서 표창을 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극리얼을 통해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내는 일밤의 예능들과 달리, <런닝맨>은 철저하게 계산된 상황들을 만들어내는 기존의 예능과 유사합니다. 기존 리얼 예능과도 조금 차이가 있는 <런닝맨>은 제목에서 다가오듯, 뛰는 것이 주가 되는 예능입니다. 이름표 떼기와 추격이 주가 되는 이 예능에는 단순히 이런 기능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월요 커플이라든지 멤버들마다 다양한 별명들이 자리하며, 하나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은 <런닝맨>의 강점이자 재미입니다. 이들을 이끄는 유재석의 강한 리더십이 재미를 이끄는 중요한 포인트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강한 것은 바로 제작진들이 매 회 준비하는 상황 극입니다.
기본적으로 뛰며 이름표를 뜯는 일반적인 형식을 구축하고 있는 <런닝맨>은 이런 단순한 패턴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은 매 주 다양한 형식의 흥미로운 설정들이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번 주에 방송된 수지 편에서 그 진가가 가장 잘 드러난 모습이었습니다. 단순한 형식 속에서 출연진마저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반전의 힘은 그만큼 제작진들이 사전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만 했습니다.
일밤의 제작진들이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이를 지키는 관찰자의 입장이라면, <런닝맨>의 제작진은 하나리의 시나리오를 쓰고 다양한 형태의 이벤트들을 만들어 출연진과 경쟁을 하듯 게임을 하는 참가자의 입장입니다. 이런 제작진들의 차이가 곧 극리얼과 리얼의 차이를 만들었고, 서로 다른 예능의 힘으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치열하게 승부를 하는 두 프로그램의 승자가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시청률을 통해 광고 수익을 얻고 이로 제작이 이뤄지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수치이지만 말입니다.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서로 다른 느낌의 예능들이 치열하게 서로의 프로그램이 최고임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듯합니다.
익숙함 속에서 작은 변화를 통해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낸 일밤의 힘과, 익숙하지만 그 단조로운 큰 틀 속에서 매 주 새로운 형식으로 승부하는 <런닝맨>의 힘은 흥미롭고 재미있기만 합니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작은 변화를 통해 시청자들의 흥미로움을 끌어내고, 재미있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요일 예능들의 도전들이 과연 어떤 진화로까지 이어질지 기대됩니다. 물론 이런 상황들이 진화가 아닌 퇴보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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