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사랑하고 있는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간절함에서 나오는 것이라 한다. 사랑은 손쉽게 부를 수 있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진짜 사랑은 평생 한 번 찾아오면 다행일 정도로 힘든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런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12회는 <응답하라 1988>이 왜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지 다시 확인해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을 결코 미워할 수 없다는 것, 그 위대한 사랑을 위해 살아간다
설을 지낸 쌍문동은 여전하다. 아이들의 개학이 다가오고 고3이 된 아이들에 대한 고민들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그곳에 부는 훈훈한 사랑은 더욱 따뜻하게 그 골목을 감싸고 있다. 부모 자식 간의 한없는 사랑과 첫 사랑에 눈을 뜬 아이들의 사랑까지 쌍문동에 이는 사랑은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 정도다.
각성하고 물건 사 나르는 것을 정리했던 동일은 설날이 지난 후에는 다시 물건들을 사 나르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12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온 동일은 잠자고 있는 아들 노을이 얼굴을 만지며 행복해한다. 하지만 차가운 겨울 밤 얼음장처럼 변한 손으로 인해 화들짝 놀라는 노을이. 그런 노을이를 향한 동일의 변화는 곧 <응답하라 1988 12회>의 모든 것이었다. 그저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동일과 진심으로 화내는 노을. 그런 아들을 위해 따뜻한 방바닥에 온도를 맞춰 아들의 볼을 만지는 동일의 모습이 곧 사랑이니 말이다.
보라를 제외하고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덕선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 택이는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덕선이의 남편 찾기가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통이라는 점에서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존재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택이와 정환이의 미묘한 변화 하나도 이들의 관계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덕선이를 피해 아침 일찍 학교에 가는 정환. 선우가 상대였을 때도 포기하고 양보했던 정환은 이번에도 같았다. 택이가 친구들 앞에서 덕선이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한 후 피해 다니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정환이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덕선이는 더욱 정환에게 집착하고 더 빨리 일어나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열정을 보인다.
학주는 서울대생 보라가 나가는 모습에 "역시"라는 감탄을 하더니 뒤따라 전교 가장 뒷자리에 서 있는 덕선이의 변화에도 흐뭇해한다. 고3이라 변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선이의 변화는 오로지 하나다. 자신을 좋아하는 정환. 그래서 좋아진 덕선이 하고 싶은 것은 잘 보이기 위해서다. 대학 생각도 없었던 덕선이 아침 일찍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하고 학교에서 그나마 공부를 하려 노력하는 것 역시 모두 사랑의 힘이니 말이다.
홀로 뒷자리에 앉아 있는 정환 곁에서 잠이 든 덕선의 머리가 슬쩍 흔들리며 정환의 어깨에 내려앉는 순간 쌍문동에 내린다는 비가 잠시 멈췄단 떨어지는 교묘함(삽입곡)까지 선보이는 제작진은 참 재미있다. 그런 덕선이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창밖을 바라보는 정환의 표정은 복잡하기만 하다.
10시간이 넘는 대국에서 승기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패한 택이는 거의 시체와 같은 모습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 앞에 다다르는 중 반갑게 자신을 반겨주는 덕선이를 발견하고 행복해 한다. 하루 종일 웃음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던 택이가 유일하게 행복해 하는 것은 덕선이와 함께 하는 그 순간이다.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택이는 덕선이의 두 손을 잡고 그대로 어깨에 쓰러지듯 내려앉는다. 덕선이가 잠결에 정환의 어깨에 쓰러지듯, 택이는 지친 마음과 육체를 덕선이의 어깨에 내려놓았다. 그런 택이를 위로하는 덕선이의 모습과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떨리는 말투로 변한 덕선의 모습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선우로 시작해 정환과 택이로 이어지는 그 과정들을 통해 '사랑'을 책이 아닌 실전으로 배우고 있는 덕선은 그렇게 성장해가고 있었다. 돈가스 먹을 생각에 행복하기만 한 덕선과 그런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국 승부를 가볍게 이겨내고 '또치 경양식'에 모인 이들의 변화 역시 재미있게 이어졌다.
당시 유행했던 '둘리'의 이름들이 교묘하게 엮이는 것도 재미있다. 동네에서 친구들은 택이를 '희동'이라고 부른다. 물론 쌍문동 단골 슈퍼가 '둘리 슈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둘리' 캐릭터 별명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경양식 집 에피소드는 덕선이와 택이의 관계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남들은 다 봤다는 바바리맨을 보지 못해 아쉬워했던 덕선은 그곳에서 드디어 바바리맨과 마주했다. 쥐도 무서워하지 않고 오직 두려운 것은 보라 언니가 전부인 덕선이지만 그녀 역시 여린 여자일 뿐이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은 채 울고 있는 덕선이 곁에 아무 말 없이 지켜주는 택이.
다른 친구들 앞에서는 여전히 강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는 덕선이는 화장실을 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를 정도다. 그렇게 힘들게 마음먹고 다시 향한 화장실이지만 바바리맨을 다시 볼까 두려울 뿐이다. 그런 덕선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 택이는 다시 덕선이의 수호신과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보라와 선우의 사랑은 위태롭다. 그들의 사랑 전선이 위태로운 게 아니라 감추고 있는 그들의 사랑이 남들에게 알려질 가능성이 점점 농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노을이는 큰 누나 보라의 이상 행동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한 보라를 안심시키며 새벽 골목길 눈이 내리는 그곳에서 멋진 키스를 하던 둘은 의외의 복병인 택이에게 걸리고 말았다.
친구들과 달리 오직 바둑만 두는 그는 담배를 일찍 배웠고 지독한 스트레스를 풀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사랑했다. 그렇게 새벽 아무도 없는 쌍문동 골목은 택이에게는 담배를 편하게 피울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그곳에서 마주친 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재미를 더해주었다.
선우를 좋아하는 보라의 변화도 흥미롭다. 평생 심부름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던 보라가 자신이 나서서 선우네 집에 심부름을 자청한다. 그런 보라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당황하는 일화와 덕선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마음과 동일했다. 그런 보라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방으로 데려간 선우의 행동은 섬세하다. 양말도 없이 맨발로 심부름을 온 보라의 차가운 발을 이불로 덮어주는 선우의 이런 섬세함이 곧 사랑이었다.
급체를 해서 일찍 집으로 향하던 선우는 약국에 들려 자신의 약과 함께 감기에 걸린 엄마 약을 산다. 세상 그 누구보다 효자인 선우는 그렇게 집으로 향하다 우연하게 봉황당에 있던 엄마와 택이 아버지를 목격하게 된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그림에 당황한 선우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 생각으로 집중하지 못하던 선우는 다음 날에도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집으로 향했다. 뭐라 규정하기 어려운 상황들에 혼란만 더욱 가중되던 선우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엄마가 자신 몰래 목욕탕에서 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새로운 사랑을 한다는 사실에 당황했던 선우는 자신을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목욕탕 청소 일을 하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당황한다. 그 독한 세재를 풀어 맨 손으로 목욕탕을 청소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차마 다가서지도 못한 채 얼어붙어 울기만 하는 선우는 마음이 아팠다.
혼자가 된 엄마를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누구보다 착하게 살아왔고 그렇게 엄마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왔던 선우다. 그런 선우가 아픈 몸으로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듯 힘겨워지는 것 역시 자연스러웠다.
택이 아버지와의 로맨스가 짐짓 걱정이 되었던 선우는 엄마가 힘들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모든 것이 변했다. 택이 아버지에게 엄마가 목욕탕에서 일하는 것 모른 척 하겠다며 보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 도움이란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꼭 주고 싶은 넉넉함이 아니라 꼭 줄 수밖에 없는 절실함 인거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단지 그 사람의 체온을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체온을 닮아간다는 이야기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널 끝없이 괴롭게 만드는데도, 그래서 그 사람을 끝없이 미워하고 싶어지는데도 결국 그 사람을 결국 그 사람을 절대 미워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
"사랑한다는 건 미워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결코 미워할 수 없다는 뜻 인거야"
포장마차에서 보라를 만난 선우는 그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보라는 그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는 선우에게 등을 토닥이며 "가서 엄마 어깨나 주물러 드려"라는 말로 모든 것을 정리해 버렸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상대를 이해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선우가 엄마를 끔찍하게 사랑하듯, 엄마 역시 아들에 대한 사랑은 지독할 정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절실함의 결과다. 보라의 내레이션으로 이어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에 대한 정의는 감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절실함이고 절대 미워할 수 없다는 결코 미워할 수 없다는 뜻이라는 말은 강렬하게 다가왔다.
매 번 차가운 손으로 잠든 아들 노을을 화들짝 놀라게만 했던 아빠 동일. 진심으로 싫어하는 노을이를 보고는 잠든 아들을 만지려다 말고 이불 밑에 손을 넣어 체온을 맞춘다. 그리고 따뜻해진 손으로 아들 얼굴을 감싸는 아빠 동일의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덕선이를 좋아하지만 택이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한 정환은 엄마 심부름으로 택이 집에 가서 바둑을 공부하다 잠이 든 택이를 위해 잠자리를 만들어 준다. 쓰러지듯 이불 위에 누운 택이에게 다시 다가가 이불을 덮어 주고 나가는 정환이의 모습은 진정한 '사랑'이라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보라의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향한 선우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참아내고 환하게 웃으며 엄마를 부른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엄마를 대하는 선우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사랑을 배웠다. 자신이 사랑하는 만큼 상대가 보여주는 사랑. 그 방식의 차이가 존재하고 그런 차이가 자신을 아프게 할지라도 그게 왜 위대한 것인지를 배우게 된 선우는 그렇게 한 뼘 더 성장해 갔다.
<응답하라 1988>이 세 번째 시리즈임에도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하다. 확장된 이야기들 속에 가족이 존재하고, 그런 가족들의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더 큰 감동으로 우리에게 찾아올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단순한 '사랑'이야기의 범주를 넘어 확장된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12회 <응답하라 1988-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을 통해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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