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판사가 주인공인 드라마는 왜 안 나오나? 그런 의문에서 출발했는지 모르지만 판사들이 주인공인 <이판 사판>이 첫 방송되었다. 박은빈과 연우진을 앞세운 이 드라마는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첫 회 극단적 상황으로 인해 호불호를 더욱 키우고 말았다.
검사 아닌 판사 이야기;
재판정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상황극 주목도는 높이지만 불안감은 커진다
판사 이정주(박은빈)와 사의현(연우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판 사판>은 말 그대로 이들을 지칭하며 이야기의 주제를 담고 있는 이중적 의미다. 재판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익숙하다. 그 역할이 검사가 아닌 판사라는 역할 놀이가 달라진 것 뿐이다.
이정주는 어렵게 판사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판사와는 전혀 다르다. 다혈질에 천방지축인 이정주에게 법복은 무겁게 다가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전히 피가 뜨거운 그녀에게 범죄자를 바라보는 것이 쉽지는 않으니 말이다.
사의현은 냉철하다. 아버지 역시 거대 로펌 대표다. 할아버지 역시 판사였던 그에게는 법이 무엇보다 가까웠다. 그렇게 대를 이어 판사가 된 의현에게 정주는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다. 금수저보다 더한 법수저를 가지고 태어나 스스로 판사의 자리까지 오른 의현에게 세상은 단순함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정주를 좋아하는 도한준(동하) 검사는 유력한 대선 후보인 아버지를 둔 금수저다. 그리고 한준과 의현은 어린 시절부터 절친이었다. 사법연수원 수석이었음에도 판사가 아닌 검사가 된 것은 아버지의 가면을 벗기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검사가 되어 좌충우돌하는 한준에게는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어머니 유명희(김해숙)는 로스쿨 교수다.
정주가 어린 시절 오빠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 담당 판사가 바로 유명희였다. 미성년강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사는 오빠를 위해 판사가 되었다. 그런 정주는 어린 시절 방법을 찾지 못해 기록을 없애려 했다. 기록만 없어지면 오빠의 누명도 벗겨질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에 말이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유명희 당시 판사였다.
유 판사로 인해 정주는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정주의 롤모델인 유명희는 로스쿨 교수이다. 유명희는 어린 정주에게서 자신을 봤을지도 모른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듯 공부했고, 그렇게 엘리트 코스를 모두 밟아왔던 유명희.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남편인 언론인 도진명을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첫 회부터 중요한 사건이 정신없이 쏟아졌다. 정주를 한순간에 최악의 판사로 만들어버린 '아동 연쇄 강간범'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반성은 존재하지 않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그를 향해 법정에서 법복까지 벗어 던지고 분노하는 정주의 모습은 누군가에 의해 촬영되어 퍼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정주는 누군가에게는 행운이었다. 무죄를 주장하며 법정에 피로 글을 쓴 장순복 사건은 골치 아픈 사건이다. 재심을 요구하지만 들어주는 이 하나 없다. 그렇게 장순복은 법정에 서기 위해 의도적으로 교도소 내에서 물건을 훔쳤다. 그렇게 법정에 선 장순복은 무죄를 주장하며 재심을 요구했다.
장순복의 요구로 법정 모습을 녹화했다. 그게 유일한 증거가 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해해 법정에 '나의 무죄는 당신의 유죄다'라는 분노의 글을 쓴 장순복 사건은 법원에서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런 내용들이 언론에 흘러나가게 되면, 재심 요구가 빗발치듯 나올 수밖에 없다.
사법부는 장순복 사건을 감추기 위해 정주를 앞세웠다. 법정에서 소란을 피운 판사는 좋은 먹잇감이니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이정주 고난기는 극단적 상황에 처하는 이유가 되었다. 어린 아이들을 성폭행하고도 교육을 해줬다며 당당해 하는 범죄자에게 응징을 한 정주에게 불만은 컸던 범인은 법정에서 판사를 인질로 잡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었다.
몰래 숨겨온 칼로 서기를 위협하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 범인의 요구대로 스스로 인질을 선택한 정주. 그녀 앞에 범인은 자신의 조서를 모두 태워버리라고 요구한다. 판사가 직접 태우면 자신의 죄는 사라질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는 어린 시절 정주가 했던 행동의 반복이다.
기록을 날치기 당한 정주. 그리고 이를 찾아준 의현.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앞으로 악연이 될지 연인이 될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시청자들이 예상하듯 정주를 사이에 둔 의현과 한준의 삼각관계에서 승자는 의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정해진 수순을 어떻게 흥미롭게 끌고 가느냐가 작가의 능력이 될 것이다.
법정에 아동 연쇄 강간범의 인질이 된 정주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들어선 의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극은 첫 회 <이판 사판>에서 보여준 이야기다. 너무 극단적 상황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지치게 한다. 법정에 피의자가 흉기를 소지하고 들어오고, 판사를 인질로 잡는 상황극은 과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은빈과 연우진, 동하 모두 기존의 캐릭터를 그대로 차용했다. <이판 사판>을 위한 캐릭터 구축이 아니라 기존의 캐릭터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점에서 식상함을 쉽게 느끼게 한다. 박은빈의 활발함은 그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번 드라마마저 동일 선상의 느낌이 연결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동하의 경우도 아버지와 대립하고, 주인공을 위해 노력하는 캐릭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도 아쉽다. 연우진 역시 그동안 보여왔던 이미지를 벗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 역시 드라마를 아쉽게 만들고 있다. 장순복 사건과 최경호 사건을 통해 이들의 인간 관계 속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이 <이판 사판>의 핵심이다.
대립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들 캐릭터들이 어떻게 충돌하고 재미를 양산해 내느냐가 관건이리라. 하지만 첫 회 만으로 많은 기대를 하기는 한계도 명확해 보인다. 검사에서 판사로 역할이 이동한 것 외에는 기존의 한국형 법정 드라마와 차별성을 찾기가 어려우니 말이다. 2회 어떤 변수를 보이며 다음 주에도 <이판 사판>을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지 궁금해진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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