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한국 단편 애니들의 성찬이 웨이브에서 펼쳐졌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세계적인 시도를 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하지만, 그건 시간과 돈이 해결해 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투자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부드러운 움직임과 좋은 작화, 그리고 블렌더를 이용해서 더욱 사실적인 묘사 등 많은 부분 흥미롭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요소들이었습니다. 여기에 영화 촬영과 다름없이 컷편집들도 좋았다는 점에서 좀 더 투자만 이어진다면 K애니가 세계화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짧은 단편 8개로 만들어진 옵니버스 애니메이션입니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제목인 '호러 나이츠'에서도 알 수 있듯, 익숙하게 들어봤을 법한 혹은 새롭게 다가오는 도시괴담과 같은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했습니다.
여덟개의여덟 개의 에피소드 각각 짧지만 주제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흉가 체험, 가시, 학교에서, 끝나지 않는 도로, 여우재, 1601호의 주문, 액귀, 연모요 등 여덟 개의 소제목을 가진 각각의 이야기는 '호러 나이츠'라는 대명제에서 흥미롭게 펼쳐졌습니다.
12분에서 23분 분량이라는 점에서 쉽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기도 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주제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짧지만 강렬할 수밖에 없죠.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장르의 한정성에서 호러가 중심이 되면 새로운 재미로 다가옵니다.
과거의 애니메이션과 달리, 보다 현실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는 점이 반가웠습니다. 투박한 움직임이 아닌 자연스러운 동작들은 몰입도를 높일 수밖에 없죠. 그리고 영화적 편집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는 사실도 반가웠습니다.
돈 벌기 위해 가짜 심령 경험을 하고자 떠난 흉가 체험에서 진짜 귀신을 만나는 이들의 이야기는 익숙함으로 다가올 겁니다. 다양한 공포영화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틀이기 때문이죠. 이를 시작으로 '가시'는 학교폭력의 잔혹함을 적나라하게 통쾌하게 다뤘습니다.
학교폭력은 언제나 큰 문제로 언급되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피해자는 평생을 숨어 살아야 하고, 가해자는 과거의 행동을 그저 장난처럼 생각하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현실이 정상일 수는 없습니다. 실제 최근에도 피해자가 과거 학폭 사건을 폭로한 후 2차 가해가 이어지며, 극단적 선택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가시'는 이런 상황을 호러물에 걸맞게 흥미롭게 풀어갔습니다. 학창 시절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졸업 후에도 약한 이를 괴롭히는 자들이 화장실에서 끔찍한 가시가 돋아나 제거하는 장면은 통쾌함을 줍니다. 죽기 전 과거 행동은 모두 장난이었다는 가해자에게 귀신이 된 피해자는 나도 장난이야라는 말은 통쾌한 복수극의 전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여고괴담'의 새로운 버전처럼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학교괴담을 풀어내면서도 마지막 반전을 통해 이 모든 상황이 전교 1등이 제안한 괴담 이야기와 현실을 오가며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앞서 말했듯 유려한 움직임과 카툰 스타일이 공포와 만나니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서로 괴담을 주고 받는 평범해 보이는 여고생들의 놀이가 어느 순간 현실이 되고, 이를 통해 지독할 정도의 공포가 되는 상황을 흥미롭게 연출했습니다. 호러물 특유의 반전을 선사하며 편안함이 더욱 고통스럽게 괴롭게 다가오는 반전을 선사합니다.
'끝나지 않는 도로'는 인간의 탐욕을 매력적으로 풀어냈습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노인과 죽을 먹이려 노력하는 아들, 그럼에도 거부하는 시아버지에게 간청하는 며느리로 인해 억지로 받아먹는 모습에서 아마도 많은 생각들을 했을 듯합니다.
자식들을 위해 음식도 거부하고 죽으려는 노인과 어떤 일이 있어도 아버지를 살리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효자 아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천진난만한 어린 딸은 소파에서 놀다 잠이 들고, 어렵게 음식을 먹고 사망하고 맙니다.
그저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정리되는 듯 했지만, 호러물이라는 점에서 반전은 분명 등장할 수밖에 없었죠. 장례식장에서부터 시작된 공포는 아들을 극한으로 치닫게 합니다. 아버지가 사망하기 전 유언장대로 해달라고 했지만, 유언장을 찾아보지도 않은 아들은 화장하고 뿌리기 위해 산으로 향합니다.
그렇게 향한 길에서 우연하게 산양을 치게 되고 이후 그는 끊임없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도로 위를 달리기만 합니다. 아무리 달려도 죽은 산양 곁을 스쳐가는 과정은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이 모든 것 이후 드러나는 반전은 강렬함으로 다가옵니다.
'여우재'는 여우 괴담에서 익숙하게 나오는 소재를 차용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색다름이라기보다는 비주얼이라는 측면을 생각해 보면 한국 애니의 장점이 곧 세계적인 관심이 될 수도 있다고 보였습니다. 블렌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현실적인 공간이 만들어지고, 이를 연기한 배우의 몸에 애니메이션을 입히는 방식으로 보다 부드럽고 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여우 괴담의 핵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인간의 탐욕을 욕하는 방식은 이 작품 전체를 휘감는 정서이기도 합니다. 부당함에 맞서 싸우려는 행위, 그런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은 보는 이들에게도 반갑게 다가옵니다. 한국의 정서를 호러에 담는 방식을 잘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1601호의 주문'은 한가족의 삶을 통해 우리 현실 속 도시난민의 힘겨움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피자가게 알바생이 퇴근 직후 걸려온 주문 전화를 받으며 시작됩니다. 낡은 아파트에서 온 배달 요청에 사장은 받으라 하고, 곧바로 퇴근하라는 말에 배달을 시작합니다.
낡은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마저 고장났습니다. 힘들게 계단을 통해 16층을 향하지만, 황당하게도 이 아파트는 15층이 최고층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걸려온 주문 전화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여기에 옥상에서 뛰쳐 나온 어린아이가 벽으로 사라지는 황당한 상황과 마주합니다.
모자가 왜 그 낡은 아파트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달원이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과정은 시청자들에게도 적나라하게 다가옵니다. 그 안타까움을 공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에피소드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사회적 이슈를 적절하게 활용해 공포 속에 많은 함의를 담아낸다는 점에서도 좋았습니다.
'액귀' 역시 이런 사회적 문제를 잘 다루고 있습니다. 서울에 공부하기 올라와 가장 저렴하게 나온 고시원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프로모션으로 싸게 들어와 다행이라 생각하고 공부하던 중 이상한 기운에 휩싸이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접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자고 있는 동안 옆으로 눕는 과정도 자기 의지가 아닌, 머리카락이 잡아 돌린 것임을 당사자는 정작 알지 못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중 고시원 앞에서 우연하게 만난 이웃이 그 방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방을 쓰던 이가 취직에 매번 실패하고 연인과도 헤어지며 최악의 상황에 몰린 후 목을 매고 자살했다고 알려줬습니다. 이후 그곳에 들어온 이들이 매번 도망치는 일들이 벌어졌다고 하죠. 어떤 이는 짐도 챙기지 못하고 야반도주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더욱 이상하기만 한 상황에서 실제 그 방에서 자살했다는 여성 귀신과 마주한 주인공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죠. 여성의 마지막 모습이 실제 눈앞에서 펼쳐지고 고통에 발을 동동거리다 벽을 치는 과정은 실제처럼 다가와 보는 순간 기겁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문제의 방에는 언제나 새로운 프로모션으로 값싸게 들어오는 젊은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밀은 프로모션으로 오면 환불이 안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고시원 주인은 그렇게 돈을 벌고 있었고, 수많은 도시빈민들은 그렇게 소비되고 있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탈출구도 없는 상태는 지옥일 수밖에 없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점점 미쳐가지 않으면 그게 비정상이라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죽음은 쉽게 사라지고, 도시 괴담으로 전해질뿐 새로운 희생자들은 속속 그 무덤 속으로 들어선다는 이야기는 끔찍함으로 다가올 정도였습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연모요'는 모자의 정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가 친한 형에게 집들이라는 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엘리베이터 층수 특정 숫자를 누르는 방식을 통해 귀신을 불러낼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는 이들은 알고 있는 괴담이기도 하죠. 귀신을 부르는 방식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왜 들었는지 모릅니다. 술에 취한 형을 보내고 엘리베이터에 타서 알려준 대로 하는 와중에 관리인 아저씨도 택배기사와도 마주치게 됩니다.
여러 날에 걸쳐 시도해본 그는 정말 귀신이 자신의 뒤에 있는 것을 느끼게 되죠. 가장 중요한 것은 귀신을 부른 후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귀신을 향하려는 모습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 그가 어딘가로 끌려들어가 깨어난 곳은 과거 어머니와 함께 있던 버스정류장이었습니다. 당시 아기였던 주인공은 그곳에서 어머니와 재회했습니다. 이제는 볼 수도 없는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행복했지만, 귀신처럼 변한 어머니는 아들을 발로 차버리죠.
사망한 어머니는 귀신이 된 후에도 아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자식 사랑을 이런 방식으로도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병원에서 깨어난 젖을 먹이는 엄마와 아이의 모습을 보며, 엄마에 대한 사랑을 다시 깨닫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과정도 좋았습니다.
'뽀로로'를 만들던 제작사에서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아이들의 대통령을 만들다, 호러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도전은 반갑기만 합니다. K 문화의 다양성에 이제는 만화가 아닌 애니메이션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호러 나이츠'가 잘 보여줬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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