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이 없는 자리 그들은 완벽하게 채워냈다
시골 장터를 찾는 그들의 여행은 현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거부터 그들이 밝혔던 '1박2일'의 정체성은 여행에 지역의 풍물과 삶을 담아내는 것이 목표였다는 의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소 선택이었습니다. 지역의 유명한 5일장을 찾아 그들과 함께 호흡하려는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시골 장터하면 생각나는 것들을 공통적으로 고를 수 있으면 미션에 성공한다고 했지만 시골 장터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이 동일한 물품을 구매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습니다. 그럼에도 다섯 명 중 세 명이 뻥튀기를 사온 것만으로도 그들의 소통은 원활해 보였습니다.
제작진들이 영특한 이유는 이후 진행된 게임을 통해 그대로 보여 졌습니다. 단점극복 프로젝트로 명명된 그들의 게임은 기존의 게임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각각의 멤버들에 맞춘 게임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로웠습니다. 성급함으로 대사 전달이 미흡한 김종민을 위한 글 읽기, 수줍어 하는 엄태웅을 위한 1분토론, 상식이 부족한 은지원과 이수근을 위한 맞춤식 상식 퀴즈, 유일한 단점으로 꼽힌 이승기의 요리까지 '1박2일'을 하면서 드러난 멤버들의 단점을 미션으로 제시한 제작진들은 탁월했습니다.
단점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강호동이라는 절대 존재감이 사라진 '1박2일'을 흔들림 없이 이끌어 가겠다는 제작진들의 의도는 '이심전심'으로 멤버들에게 전해져 의외의 재미로 다가왔습니다. 미션 한 번으로 모든 문제가 사라질 수는 없었지만 시도 자체만으로도 그들의 의지는 명확해졌으니 말입니다.
강호동의 부재와 함께 가장 큰 형이 된 엄태웅은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이 솔선수범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아 등장 시간도 점점 줄어가던 그에게는 강호동의 부재가 오히려 기회로 다가왔습니다.
피디와 겨룬 '1분토론'에서 드러나듯 그는 의외의 예능감과 함께 달변가의 소질도 보여주며 이후 '1박2일'에서 대활약을 펼칠 수 있을 것을 예고해주었습니다. 등장 초기 반짝 인기를 얻었던 엄태웅이 이후 거의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며 잉여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가질 수 있었지만, 그의 숨겨져 있었던 끼가 확연하게 드러난 '단점극복'미션은 그에게 예능이라는 날개를 달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강호동이 빠진 '1박2일'의 첫 녹화의 일등공신은 부정할 수 없는 이승기의 몫이었습니다. 중요한 지점에는 항상 그가 존재했고 편집의 방향이나 녹화의 중심에도 이승기는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멤버들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역할에 충실했지만 방송을 통해 드러나는 존재감은 이승기가 최고였습니다.
녹화 이후 나피디가 언론을 통해 강호동이 해왔던 역할을 이승기가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이유도 현장에서 보인 이승기의 존재감이 의외로 강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미 '강심장'을 통해 단독 MC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그는 현장에서 오랜 시간 함께 했던 감각을 그대로 유지하며 강호동과는 다른 이승기만의 독특함을 발산하며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일인 체제가 아닌 집단 체제로 전환된 상황에서 가장 앞에선 엄태웅이 끌어주고 뒤에서는 이승기가 밀어주는 형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1박2일'은 강호동이 갑자기 사라지며 종영이 아닌, 영원한 지속이 가능한 프로그램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강호동이 하차하면 곧 '1박2일'의 폐지와 같은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 연유로 KBS는 오랜 시간 공들여 키워온 최고 시청률 프로그램인 '1박2일'을 강호동과 합의하에 2012년 2월 종용한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강호동이 없는 '1박2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지요.
문제는 갑자기 강호동이 연예계에 잠정 은퇴를 하면서 부터였습니다. 너무 급하게 진행된 사안에 그가 출연하고 있던 프로그램들은 모두 긴장할 수밖에는 없었고 그중 그의 존재감이 가장 강했던 <무릎팍 도사>는 어쩔 수 없는 종영을 맞이했습니다.
다른 프로그램의 경우 앞서 실험을 시작했고 국민 예능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일요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있는 '1박2일'은 종영까지 내건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과 실험을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강호동의 부재가 과연 '1박2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첫 녹화를 통해 많은 부분 기우였음이 증명되었습니다.
강호동이 없는 '1박2일'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은 극대화된 가치 생산의 허울이었음이 밝혀졌고 절대 존재라 여겼던 이의 부재는 의외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절대 강자로 인해 주목받을 수 없었던 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기 시작했고 이런 능동적이며 긍정적인 변화는 자연스럽게 '1박2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멤버들의 노력과 함께 돋보였던 것은 제작진의 선택이었습니다. 강호동이 빠진 첫 번째 녹화가 어디에서 시작하느냐는 무척이나 중요했습니다. 이런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들의 선택은 초심으로 부를 수 있는 장터였습니다. 모든 삶이 시작되는 장터를 첫 번째 여행지로 삼은 그들의 여행지 선택은 대 성공이었습니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장터를 통해 그들은 여전히 '1박2일'을 응원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존재함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도외지의 차가운 시선과는 달리,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보이는 시골 장터의 훈훈함은 다른 멤버들에게도 즐거운 바이러스로 다가왔을 듯합니다.
그런 제작진이 내건 흥미로운 미션은 '단점극복'이었고, 이는 강호동이 부재한 상황에서 다섯 명의 멤버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단점을 부각해 재미로 이끌어내는 것은 예능이기에 가능한 방식이자 효과적인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그동안 시청자들이 알기 힘들었던 멤버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이런 결과를 통해 새로운 '1박2일'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제작진들이 준비한 '단점극복' 미션은 종영이 아닌 지속 가능한 '1박2일'에 대한 실험이자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위기를 당연한 위기로 바라보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는 점에서 '1박2일'이 얼마나 단단한 프로그램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강호동 부재가 주는 여운이 아직 남아있기는 하지만 다섯 명의 멤버들만으로도 충분히 다채롭고 흥겨운 '1박2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많은 것들을 제시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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