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모두를 울리고 있습니다. 달리기는 전형적인 순위를 정하는 게임입니다. 누구나 달리기는 해봤고, 누구든 1등을 하고 싶어 합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 1위를 하는 것은 단순히 상품을 타는 재미만이 아니라 상대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지위를 준다는 점에서 특별함으로 다가오고는 했었습니다. 이런 우리 사회의 일등지상주의를 모두 내던져버린 사진 한 장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일등이 아니면 존재하지 못하는 사회;
손을 잡고 함께 골인 지점으로 향하는 아이들, 그들이 던진 함께 사는 사회의 가치
현대 사회의 미덕은 어느 사이엔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상대를 짓밟고 모든 것을 쟁취한 자들은 영웅이 되고, 특별한 대우를 받는게 우리 사회의 새로운 미덕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성공 전성시대에 성공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그런 사회는 결국 지독한 경쟁만 존재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명박 시절(물론 과거부터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기는 했지만) 모든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실시하고 전국의 학생들을 일렬로 세우는 정책을 강요했습니다. 전국의 아이들에게 순위를 매기겠다는 그의 고집은, 지독한 경쟁 사회를 초등학생들부터 공개적으로 강제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학부모들의 경쟁심은 이어지고, 그런 경쟁심은 결과적으로 사교육에 대한 비대한 비용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모든 이들이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함께 잘 사는 사회는 부도덕함으로 다가왔고, 모든 것은 경쟁을 통해 알아서 차지하는 식의 신자유주의 정신을 심어주기에 여념이 없을 뿐입니다. 북유럽식의 복지사회는 공산주의 사상이라 비난하는 현실은 우리가 얼마나 치열한 경쟁의 도구로 전락했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함께 잘 살자는 생각조차 거부당하는 사회는 섬뜩하기만 합니다.
그저 결과만 존재하는 경쟁사회에서 편법과 탈법이 판을 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결과만 좋으면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정치판부터 동네의 소소한 일들까지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먼 이들의 치열한 탐욕들은 게걸스럽게 우리사회를 집어 삼키기에 급급할 뿐입니다. 그 어떤 가치조차 거부한 채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바쁜 사회에서 공공이라는 가치도 함께 라는 의미도 퇴색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이런 지독한 탐욕의 시대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타인을 비난하고 물어뜯고 끌어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과 실제 그런 경쟁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상황에서 타인은 함께 걸어가야 할 운명이 아니라 파괴해야만 하는 경쟁의 상대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짐승의 시대에 사진 한 장은 대단한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한 사이트에 올려진 '눈물 나게 고마운 사진'이라는 글과 함께 등장한 한 장의 사진은 많은 이들을 울렸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초등학생 다섯 명이 함께 손을 잡고 나란히 달리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치열한 경쟁에만 내몰린 현대인들에게도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마법과 같은 일을 해주고 있습니다. 눈물마저 사치가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사진 한 장에 목이 메이도록 울 수 있다는 사실은 그나마 우리는 아직 희망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진과 함께 공개된 글에는 또래 보다 작고 뚱뚱해 항상 꼴지만 하는 아이를 위해 먼저 달리던 친구들이 갑자기 멈춰 꼴찌인 친구의 손을 잡고 함께 뛰었다는 글이었습니다. 항상 뒤쳐지던 친구를 위해 경쟁을 포기하고 함께 손을 잡고 결승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오직 성취만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왔던 어른들을 호되게 야단치고 있었습니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 그렇게 치열하게 누군가를 이기면서 얻어지는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 어린 아이들은 벌써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인간이란 누구나 함께 라는 가치를 품고 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른이 되어가며 탐욕의 사회가 모두를 변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사진이 공개되고 화제가 되자 뚱뚱하고 작은 아이의 누나가 글을 올렸습니다. 자신의 동생인 '연골무형성증'을 앓고 있는 지체장애 6급이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키가 클 수 없는 장애를 가진 동생은 초등학교 6학년으로 마지막 가을 운동회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친구들과 다른 장애를 가진 동생은 매년 이어지는 가을운동회는 상처만 받는 날들이었다고 합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벌어지는 격차로 인해 동생이 느끼는 고통은 심각한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운동회 날 학교에 가기 싫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그 아이에게 경쟁은 지독한 고통 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동생과 함께 달리던 같은 조 친구들이 계속 뒤를 보고 달리다 결승선을 앞두고 뒤에 있는 동생에게 달려와 누구 하나를 꼴찌 만드는 달리기가 아니라 모두가 일등인 경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어쩌면 이렇게 대단한 생각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꼴찌를 만들지 않고 모두가 일등이 되려고 노력한 이 아이들은 우리의 스승이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사연들이 공개되고 화제가 되자 그날의 달리기의 모든 과정들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날의 달리기는 함께 뛰던 친구들이 직접 담임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서로의 손을 잡고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연히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 항상 뒤쳐지는 친구를 위해 깜찍한 선물을 준비한 친구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성인들에게 명예와 돈 등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듯 어린 아이들의 운동회에서 1등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자존심이자 기쁨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항상 뒤쳐지던 친구를 위해 선뜻 손을 내밀고 그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함께 결승선을 들어온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 무엇으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감동 그 이상이었습니다.
경쟁을 유도하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모든 것에 맞서 뒤쳐진 아이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1등을 포기한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지독한 아픔을 던져주었습니다. 경기도 용인 제일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이 달리기 사진은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치열한 경쟁만이 아니라 서로를 살피고 함께 하는 사회가 곧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회임을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어른들의 스승이 된 아이들의 이 따뜻함은 곧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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