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이 지났으니 잊어야 하는 것일까?무고한 시민에게 학살을 지시한 김 소령은 취재 중인 피디에게 욕까지 한다. 자신도 피해자라 강변하며 승진도 못하고 그로 인해 연금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피해자라는 김 소령에게는 80년 광주에서 사망한 무고한 희생자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잔혹한 충성 2부 학살을 조작하라;
주남마을 버스 민간인 학살과 511 연구회의 조작, 진실을 찾기가 절실한 이유
518이라는 단어는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한 느낌을 주고는 한다. 어린 시절 봤던 그날의 참상을 담은 영상은 여전히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끔찍했던 주검들 앞에서 혼란스럽기만 했던 기억은 항상 5월이 되면 자동반사처럼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전혀 상관없는 이들의 기억까지 지배하고 있는데 가족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감싸주기 위해서 절실한 것은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다. 하지만 38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화는 없다. 전두환은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고, 오히려 희생자들을 능욕하고 있을 뿐이다.
전두환과 그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시민들을 학살한 자들은 북한군이 내려와 벌인 반란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자료들이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지만, 그들은 누구도 믿지 않는 억지 주장만 하고 있다. 전두환이 사형 선고를 받고 여전히 감옥에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일이다.
1년 만에 다시 세상으로 나오도록 한 3당 야합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역사적 단죄를 포기했다. 자국민을 학살한 자들에 대해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국가는 정상이 아니다. 그러니 다시 이명박근혜라는 기괴한 정치 집단이 창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내 법의학자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사망자 사진을 보고 '학살'이라 규정했다. 너무 충격적이라 방송에 그대로 내보낼 수 없는 끔찍한 사진들 속 주검. 수많은 죽음을 봤고 분석해왔던 법의학자들마저 분노하게 하는 그 사진들 속 희생자들은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신 닦는 자원봉사를 했던 19살 박현숙은 모자란 관을 가지러 화순으로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다. 주남마을에 들어서기 전 박현숙은 자신과 함께 가던 남동생을 내리게 했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동생을 내려주고 화순을 향하던 버스는 공수부대의 집중 사격으로 탑승객들이 사망하게 되었다.
생존자는 여학생과 남학생 둘이 전부였다. 하지만 잔인한 공수부대원들은 현장을 지휘하던 김 소령의 사실 명령을 받고 병원으로 옮기기만 해도 살 수 있었던 남학생을 사살했다. 그 사살한 공수부대원 중 하나는 사망자의 사촌이기도 했다. 자신의 사촌임을 확인한 후에도 살리려는 노력도 할 수 없었던 당시 분위기는 그래서 끔찍하다.
광주 참상 소식을 막기 위해 광주 외부에 주둔하던 계엄군들을 그렇게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아무런 관련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청년들을 산으로 데려가 학살한 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저 젊은 남자라는 이유로 학살을 한 그들은 625 전쟁 당시 군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11살 전재수는 친구들과 놀다 군인들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는 이유로 학살 당했다. 대낮에 벌어진 잔인한 학살이었다. 총을 쏘는 군인들을 피해 도망치다 벗겨진 신발을 가지러 간 그 아이는 열발이 넘는 총상을 입고 사망하고 말았다.
너무 잔인해 11살 소년의 사진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17살 김부열 학생은 얼굴이 없다. 사후 분리를 통해 가장 잔인한 시신으로 발견된 그 학생의 사인은 사라진 얼굴에 있었을 것이라는 법의학자들의 설명은 끔찍하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임신한 여성의 잔인한 학살 등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그날 광중에서는 벌어졌다.
1987년 민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민정당을 누르고 야당이 선거 승리 후 88년 광주민주화운동 청문회가 개최되었다. 많은 이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전두환과 신군부는 진실을 외면했다. 이희성 계엄 사령관은 조그만 말단 부대의 잘못이라 주장했다.
잔인한 학살을 감행한 11공수여단 61대대장인 안부웅 역시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었다. 국회에 나왔던 전두환 역시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만 하던 시절. 그 모든 것은 시나리오에 의한 입 맞추기 결과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511 연구회에서 만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민정당은 해당 군인들과 사전 연습까지 했다.
어느 한 축이 무너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들은 청문회 전 철저하게 준비까지 하며 거짓말을 했다. 당시 기록을 왜곡하고 훼손한 511 연구회에 참여한 자들 역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진실을 왜곡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학살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범죄자일 뿐이니 말이다.
기무사는 철저하게 5월 광주를 왜곡하고 조작했다. 그리고 당시 광주 현장에 있었던 1만 명에 달하는 공수부대원들을 사찰해왔다. 주남 마을 학살을 목격하고 양심선언을 한 최영신과 같은 이들이 더는 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기무사 사찰 때문이었다.
양심선언 후 지독한 협박과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최영신의 증언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잔혹하게 그날의 기억을 막아왔는지 알 수 있다. 문 정부가 들어선 후 변화를 하겠다며 보여주기 쇼를 하는 기무사는 그게 쇼가 아닌 진심이었음을 밝히는 방법은 단순하다. 지난날 그들이 해왔던 모든 과오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숨겨두거나 은폐한 자료들을 공개해야 한다.
미 국립문서 기록청에서 어렵게 찾은 광주민주화운동 자료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그리고 그 자료 중에는 전두환이 북한 개입설을 최초로 언급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22구의 시신은 북한에서 온 스파이다"라는 전두환의 주장이 미군의 자료에는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이 문건들을 당시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거짓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군부가 얼마나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 미국이었다. 그들을 전두환과 신군부의 만행을 용인했고, 그렇게 그들의 자국민 학살을 방조한 자들이었다.
최영신처럼 양심선언한 군인은 또 있었다. 당시 광주에 있었던 임 소령은 상관인 김 장군이 한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주남 마을 버스 학살 현장에서 김 장군은 "이 놈들 확실하게 처리했네"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고 했다. 하지만 당사자는 아무런 기억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장군은 그날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리고 그의 집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다. 자신은 군인으로서 할 일을 했다는 그의 파렴치한 발언은 그래서 더욱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광주로 간 1만 명의 군인. 잔인한 학살 후 기무사는 그들을 사찰 해왔다. 그들이 침묵을 강요받았던 이유는 알 수 있다. 하지만 더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미국에 자료 요청을 해 진실을 밝혀야만 한다. 제작팀도 확인한 자료를 국가가 외면한다면 이는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군이 훼손하고 당사자들이 부정한다고 해도 기록은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리고 미 국립문서 기록청에 보관되어 있는 수많은 그날의 기록은 진실을 확인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많은 유가족들은 가해자들이 뒤늦게라도 참회하고 사과를 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진심어린 사과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 자격을 박탈당한 전두환 노태우에게 국민의 혈세를 들여 경비를 서줘야 하는 일부터 멈춰야 할 것이다.
전두환은 사자명예훼손과 관련해 적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 살인마가 다시는 이 땅에 나오지 않게 하는 일은 단순하다. 단죄를 통해 다시는 유사한 범죄가 벌어지지 않도록 한다면 역사는 그렇게 반복될 수는 없다. 독일과 프랑스 등이 여전히 전범들을 추적하고 처벌하는 이유는 다시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와 달리, 우린 친일파 청산도 독재자 처벌도, 자국민 학살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과 신군부에 대한 처벌도 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가 여전히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의미다. 그들을 옹호하는 권력 집단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는 그래서 더디고 힘들 수밖에 없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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