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몰락이 이렇게 허무하게 이어질 수도 있냐란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물리적 시간의 차이는 존재할 수 있지만, 마음만 먹고 이런 식으로 작업에 들어가면 그 누구도 손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일들은 실제로도 일어나기 때문이죠.
해인의 퀸즈가 가 몰락하는 회차에서 첫 장면은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우가 해인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장면이 배치되었기 때문이죠. 최고의 데이트코스라고 해서 왔는데 아무도 없어서 신기하다는 현우와 이 모든 것을 준비한 해인.
재벌의 힘은 결국 돈에서 나오죠. 현우가 준비한 데이트코스는 통으로 사전에 빌려 둘만이 즐길 수 있게 만들었지만, 당시 현우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언급하며 온 우자가 도와주니 결혼하자며 아쿠라이움에서 프러포즈하는 현우와 너무 반갑고 행복한 해인의 모습은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해인은 빗속에서 현우와 만나 이런 가장 행복한 순간과 연결되었습니다. 프러포즈를 받고 결혼한 가장 행복한 시점에 머문 해인은 이내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글프게 울며 독일에 갔다 왔다는 말과 함께 그곳에서 있었던 이혼서류 이야기까지 꺼내자 다시 그 기억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해인은 이혼을 결정합니다. 서글프게 우는 현우를 바라보는 해인은 증오보다는 측은함과 미안함이 더 컸습니다. 이혼을 결정하자마자 속전속결로 진행되었습니다. 현우는 이혼전문 변호사인 친구 양기가 나섰지만 해인의 변호인은 의외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들어서자마자 양기는 기겁했습니다.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였죠. 그 바닥에서는 전설처럼 이야기되는 이혼 전문가라며 특별출연한 송중기의 필모그라피를 적절하게 대사화 했다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그가 정착한 것은 마피아 빈센조였습니다.
현우는 해인의 툴툴거림에도 서울 최고의 일몰이라며 아름다운 모습을 공유하는 장면은 그를 현우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운동장에서 뛰는 장면을 보며 왜 이런 곳에서 저러나 생각하고, 야구연습장에서는 이런 걸 왜 하냐더니 신발까지 벗고 집중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우가 매일 식사를 혼자 하던 백반집을 찾았는데, 공교롭게 그곳에 현우와 그 친구 양기가 함께 식사를 하러 왔습니다. 등을 대고 식사를 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해인은 현우의 진심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는 정말 이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재벌가 사위가 되어 머슴처럼 가족들이 부르면 달려가야 했던 삶. 친구와 술 한잔도 마음껏 할 수 없어, 홀로 이렇게 식사를 해야했다는 사실은 해인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서럽게 울며 남편과 다시 함께 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생겼다는 것은 앞서 의사의 말과 연결된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은성이 해인에게 집착하는 것은 당연히 짝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시절 보육원에 있던 은성은 개에게 쫓기던 해인을 구하다 다리를 다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은성의 상처 부위에 자신의 손수건을 감싸주던 해인을 절대 잊을 수 없었습니다.
해인에게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실제 은성은 열심히 노력한 듯합니다. 하지만 은성의 마음과 상관없이 해인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현우의 발자취를 따라 그를 느끼고 돌아온 해인은 자신에게 결혼 언급을 하는 은성에게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유치하고자 했던 명품관을 포기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은성의 도움을 받아 유치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이는 분명하게 은성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은성의 모습을 지켜보는 슬희는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은성이 누군지 추적하던 현우는 사진 속 명품 시계 구매자가 모슬희라는 사실까지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고모 범자를 통해 모슬희가 범죄자였고, 아들이 있다는 말까지 듣게 됩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모슬희의 음모를 눈치채고 있었던 범자는 이혼과정에서 자신의 일을 하던 이를 통해 모슬희가 누군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순영이란 본명을 버리고 모슬희로 변신한 그는 자신은 사망신고를 하고, 교도소에서 낳은 아들은 34살 은성과 같은 나이였습니다. 의심은 가지만 확신할 수 없는 모자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DNA 검사가 필요했습니다.
해인이 현우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은 이혼하고도 그를 회사에서 내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우 역시 해인을 놔두고 회사를 떠날 이유도 없었습니다. 돈보다 더 소중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 어떤 수모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수철이 진행하던 퀸즈그룹 복합리조트 사업이 군부대와 마찰로 무산 위기에 처했습니다. 특수부대 출신의 현우는 국방부 관계자와 만나 해결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했지만, 은성의 시나리오에는 많은 단계들이 존재했습니다.
다양한 압박카드는 결국 은성이 내민 투자 계획서를 받아들게 됩니다. 다른 투자자들이 떠나면 자신이 단독 투자하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홍 회장은 이미 슬희를 통해 대무당이 큰돈이 들어올 상황이라면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이를 막는 자는 홍 회장에게 독이 되는 존재라고 합니다.
은성과 계획을 공유하는 슬희로서는 이미 판을 깔아놓은 것이고, 영민한 현우가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잘못되면 회장이 가진 지분 6%가 은성에게 넘어갈 수도 있는 투자 계획서는 은성의 '믿음' 앞세운 도박과 슬희의 '대무당'이 승자가 됩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현우는 범자와 함께 모슬희와 은성의 뒤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슬희의 본명과 수감 생활 등의 과거를 확인했습니다. 교도소에서 낳은 아이는 강원도 원산 퀸즈 수련장 근처의 희망 보육원으로 보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련장 관리인 부부를 통해 당시 그곳에서 개를 죽인 아이가 바로 은성이라는 증언도 듣게 됩니다. 범자는 아버지 팔순 잔치가 열리는 날 어머니 유품인 반지를 모슬희가 끼고 있음을 확인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모슬희의 과거를 들춰내자 다급하게 죽는 소리를 하는 그의 머리를 부여잡고 흔든 것은 의도적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아버지에게 태어나 처음 맞기는 했지만, 소기의 성과를 올렸습니다. 모근까지 잡아 뜯은 모슬희의 머리카락으로 은성과 모자 관계임을 DNA 검사로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홍범대의 팔순은 이들에게는 디데이였습니다. 다혜는 끝내 어린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도주했고, 허튼짓을 하던 수철은 집에도 없는 아내를 찾으러 타지도 못하는 자전거를 끌다 쓰러지며 오열했습니다. 아내가 자신을 떠났다는 확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수철은 아들이 친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현우와 범자가 결정적 증거를 잡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슬희와 장기를 두던 홍 회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약에 취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홍 회장의 습관을 이용해 장기알에 발라둔 약은 효과가 있었고, 당장 죽지 않고 몇 달 동안 살 수 있다는 말을 하며, 노골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슬희와 그런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쓰러진 홍 회장은 몰락의 시작이었습니다.
홍 회장이 쓰러지자마자 준비된 일정들이 순식간에 이어졌습니다. 20년 동안 세뇌한 효과는 강렬했습니다. 슬희만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정신적 격리가 되었던 홍 회장은 자발적으로 슬희에게 위임장을 써주며 모든 것을 빼앗기게 만들었습니다.
지분을 높인 은성과 슬희는 퀸즈가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들로 인해 오너일가는 모든 것을 잃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 그들이 목격된 곳은 현우의 시골집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 그들이 갈 곳은 없었습니다. 세상 모두가 아는 퀸즈가 사람들이 머물 곳 하나 없게 된 현실 속에서 현우의 시골집 행은 신의 한 수처럼 다가옵니다.
작가가 그리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이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현우 어머니를 조롱하듯 바라보고 하대하던 해인 어머니가 몰락한 후 시골에서 자신이 한 행동들이 얼마나 한심한 짓인지 깨닫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다른 가족들이라고 다르지 않죠.
이들의 시골 생활은 이야기의 재미를 살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현우와 범자, 그리고 해인이 은성에게 빼앗긴 회사를 되찾기 위해 복수에 나서는 과정은 쫄깃한 재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 균형감은 극을 절묘하게 만드는 신의 한 수가 됩니다.
홍 회장 대리인이 되면서 은성의 친모라는 사실이 드러나도 아무런 상관없게 된 슬희는 사이코패스지만, 은성은 해인에 대한 집착이 더 강렬해지며 몰락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 구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슬희처럼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하면 공격하기 어렵지만, 은성과 같은 상황은 오히려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야기의 절반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될 후반부 이야기는 농촌 생활을 하게 된 몰락한 재벌가의 짠내나는 이야기에, 은성과 슬희에게 복수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일 현우와 해인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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