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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육룡이 나르샤 16회-신들린 유아인, 진정한 이방원을 완성하다

by 자이미 201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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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체절명의 순간 이방원은 진가를 보였다.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이방원은 해내며 그의 존재감은 더욱 강력해졌다. 뒤집을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판을 뒤집어버린 이방원으로 인해 홍인방과 길태미, 그리고 이인겸 등은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모든 탐욕에 찌든 위정자들이 그렇듯 말이다. 

 

판 뒤집은 이방원;

모두를 두려워하게 만들 광기, 이방원의 그 무서운 광기가 모두를 살렸다

 

 

 

 

홍인방을 무너트리기 위한 정도전과 이성계의 선택은 위기를 맞이한다. 탄핵안을 소추해 도당에서 축출하려는 순간 홍인방은 마치 마법을 부리듯 그들 앞에 등장했고 모든 것을 뒤집는 충격적인 발언까지 했다. 해동갑족의 조반이 역모를 꾸몄다는 말로 판을 뒤집어 버렸기 때문이다.

 

'역모죄'는 그 어떤 것보다 강하다. 현재 시점 자신들과 반하는 이들은 모두 '빨갱이'이라고 몰아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과거와 달리 지금 더 역모죄가 수시로 등장하며 그 역모라는 가치가 무의미하게 만들어지게 할 정도로 남발하는 현실이 씁쓸하게 한다.

 

700년 동안 이 땅에서 모든 권리를 누리며 살아왔던 귀족들인 해동갑족은 어떤 권력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었다. 언제나 캐스팅보드 역할을 하며 권력의 실세로 살아왔던 그들이 홍인방에 의해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누구도 감히 다가설 수도 없었던 그들에게 홍인방은 치고 들어갔다. 누구도 하지 못했던 성역을 건드린 홍인방은 모든 패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홍인방의 목표는 명확했다. 자신을 옥죄는 이성계를 '역모죄'로 엮어 해동갑족과 함께 붕괴시켜 고려의 진정한 실세가 되고자 하는 그의 계략에 모두가 흔들렸다. 천하의 정도전도 이성계에게 몰래 개경을 빠져나가라고 조언을 할 정도로 홍인방의 한 방은 강력했다.

 

모두가 홍인방을 탄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좋아하던 상황에서도 이방원만은 다른 계략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 되었다. 스스로 홍인방과 자신이 닮았다고 이야기하는 이방원은 정확하게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추리해냈다. 홍인방의 의도를 예측했듯 이방원은 그를 막아낼 수 있는 묘책도 만들어냈다.

 

정도전마저 홍인방의 공격에 휘청 일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가 이런 방법을 생각해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방지는 알고 있었다. 권력 근처에도 없었던 그는 권력을 오히려 더 잘 알고 있었다. 힘의 본질은 결국 말 그대로 '힘'일 수밖에 없음을 명확하다는 것을 이방지는 몸으로 체득해왔기 때문이다.

 

 

홍인방은 그 힘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거대한 힘을 가진 이성계가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자신이 맺으려 했던 해동갑족과 혼례를 치르려 했지만 이마저도 빼앗겼다. 이인겸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더는 나아갈 수 없는 벽에 막힌 홍인방이 취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정도전에게 휘둘려 그저 병풍처럼 있었던 홍인방이라는 점에서 그는 독기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인겸을 축출한 존재는 홍인방 자신이 아니라 정도전이었고, 자신 역시 정도전의 꼭두각시일 뿐이었음을 알게 된 그는 복수심에 가득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미쳤다. 광기를 품은 괴물이 되지 않는 한 거대한 적들을 막을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의 이 한 수는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이미 패를 모두 쥔 홍인방은 해동갑족의 우두머리인 민제를 찾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는 스스로 "협박"을 하러 왔다고 말한다. 감히 누구도 하지 못했던 해동갑족에 대한 무례함에 민제는 당황했지만 말뿐인 권력의 실체는 아무것도 없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700년 동안 이 땅의 주인이었던 해동갑족이지만 언제나 권력의 중추에 있었던 그들은 싸울 필요조차 없었다.

 

알아서 그들에게 충성을 하는 그들에게 해동갑족은 더 큰 힘을 쓸 일도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700년 동안 이 땅을 지배해왔다. 하지만 홍인방은 정확하게 그 문제를 알고 있었다. 거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실체만 존재하는 권력은 무의미할 뿐이었다.

 

 

한 번도 싸워 본적도 없는 해동갑족 정도는 언제나 붕괴시킬 수 있다는 홍인방의 발언은 명확했다. 해동갑족은 현재의 실세인 홍인방에 대항할 수도 없다. 이성계 앞에서도 당당함을 넘어 우월적 존재감을 보이던 민제가 홍인방에게 굴욕적인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허울뿐인 권력이었다. 홍인방은 민제에게 이성계가 모반의 중추라는 취지의 연명서를 해동갑족 모두가 서명을 하라는 요구를 한다.

 

"싸움을 걸어온 쪽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흐름을 뒤늦게 알게 된 정도전은 정확하게 판을 읽었다. 이방지가 이야기를 했듯 권력의 본질을 알아버린 홍인방에게 해동갑족은 더는 두렵거나 경외심을 가져야 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리고 먼저 싸움을 걸어 온 쪽에 두려움을 가지고 설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인간의 본질이기도 하다.

 

해동갑족이 홍인방의 편에 서서 이성계를 모반의 중추로 만들어버린다면 천하의 이성계도 위기를 벗어날 수는 없다. 고려의 수많은 영웅들이 모함으로 무너졌던 것처럼 이성계 역시 대의를 제대로 꿈꾸기도 전에 모든 것이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묘책을 찾지 못해 힘들어 하는 상황에서 분이는 이방원에게 간단하지만 단순한 답을 알려줬다. 방원 스스로 홍인방이 되었듯이 정다정이 되어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는 말이었다. 홍인방의 협박을 받은 후 이성계 측 사람들을 만나기 거부하는 민제. 그런 민제가 자신의 여식인 다정을 만났다는 점에서 답은 그녀에게서 나올 수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거래를 제안한 방원은 자신 집안의 모든 약점을 보여주고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었다. 그리고 방원은 최무선이 발명한 '화약'을 실험했던 것을 착안해 그는 분이에게 둘 중 하나의 상자를 골라달라고 한다. 돌멩이가 가득 한 상자와 화약이 가득한 상자 중 하나를 골라 달라는 방원에게 분이는 그런 존재였다. 실패하면 집안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방원의 선택은 결국 분이였으니 말이다. 

 

큰 파도를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더 큰 파도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도전과 이방원의 뜻은 일치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이를 벗어나기 위한 해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진짜 모반을 일으키지 않는 한 현재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이방원이 전부였다.

 

개경에 있는 모든 가별초를 동원해 다정을 통해 알게 된 해동갑족의 회동 장소로 향한 이방원은 모두가 있는 그곳에서 그들의 현실과 본질을 공격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미 홍인방의 협박에 넘어간 그들에게 이방원은 앞으로 살아갈 700년은 치욕의 역사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홍인방에 의해 무너진 해동갑족은 이후 수많은 권력들에게도 동일하게 굴복을 당할 수밖에 없음을 주지시킨다. 그리고 그는 화약통에 불을 붙이며 이인겸을 포함한 홍인방과 길태미를 탄핵하는 연명서에 서명하라고 한다. 타오르는 불꽃에 겁을 먹은 해동갑족들은 서명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방원과 기싸움을 하던 민제마저 서명을 마치며 판은 완벽하게 뒤집혔다.

 

만약 그 화약통이 터졌다면 그 정자에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방원의 광기를 누구보다 의심스러워하는 남은의 고민과 불안해하는 정도전의 마음을 진정시켜 준 것은 분이였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분이는 화약통이 아닌 돌멩이가 가득한 상자를 방원에게 주었고 그 선택은 결국 판을 뒤집은데 일조했다.

 

이방원의 이 강력한 한 수는 이인겸과 홍인반, 길태미를 고려 도당에서 축출하는 혁혁한 공헌을 하게 한다. 고려 말 가장 커다란 권력을 가지고 있던 그들이 축출되면서 정도전이 계획하고 이성계가 합류한 새로운 국가에 대한 꿈은 현실이 되기 시작한다.

 

이방원 역할의 유아인은 눈빛부터 살아있었다. 마치 신들린 듯한 유아인의 연기는 <육룡이 나르샤>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로 다가왔다. 역사 속 실존하는 이방원이 마냥 좋아할 수밖에는 없음을 다양한 형태로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역사가 아닌 다층적으로 바라보는 역사가 흥미롭게 펼쳐질 것이라는 점에서도 기대된다.

 

역사는 오늘을 보는 창이고, 내일을 예측하게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기록된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그런 시각이 결과적으로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역사를 강요하는 현실은 처참하기만 하다. 역사는 누군가에 의해 강제될 수 없음을 재미있게도 <육룡이 나르샤>는 잘 보여주고 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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