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작은 창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던 아이 가은이
작은 교도소에서 생활해야 하는 어린 가은이는 힘들기만 합니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좁은 방에서 나오고 싶어 하는 아이와 정해진 시간 외에는 절대 나갈 수 없는 엄마. 잠깐 정해진 시간은 가은이나 엄마 소향에게는 힘겨운 시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깥도 갇힌 공간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보다는 훨씬 넓고 하늘을 볼 수 있는 그곳에서 다시 작은 방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아이의 칭얼댐은 시작됩니다. 본능적으로 갇히기 싫은 것인지 자꾸 나가려고 문을 두드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소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어린 시절 부유한 집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던 소향은 부모의 이혼이후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방황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혼 후 그 누구도 자신을 자식으로 키워주지 않는 상황에서 소향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한정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거리에 나서 온갖 일들을 해야만 했던 소향. 길거리 삶을 살았던 그녀에게는 남들보다 화려한 모습으로 자신을 감추려했습니다. 그래서 도둑질을 하게 되었고 그런 도둑질은 그녀가 교도소를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순대국밥집, 김밥집, 수영장 탈의실 보조원, 군밤장사, 스키장 암표상까지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 해보았지만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청소년 보호시설, 고시원, 찜질방에서 생활하는 그녀에게 삶은 오늘 살고 오늘 죽고 또 다시 내일 새로운 삶을 사는 무의미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무감각하게 이어지는 절도는 가중처벌을 받을 수밖에는 없게 되었고 그녀는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수감된 이후에도 알지 못했던 임신사실은 임신 5개월이 넘어 교도소에서 행한 신체검사를 통해서였습니다. 아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지만 지우라고만 할 뿐 그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던 그녀.
수감번호 116번으로 불리며 아이를 낳고 그 안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그녀는 자신의 아이 가은이를 통해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입양을 보낼까란 생각도 해봤지만 자신이 입양아인데 자신의 딸마저 입양을 보낼 수 없었던 엄마 116번.
작은 배식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16개월 된 아이 가은이.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문으로 달려가는 아이는 수인 번호를 자신의 가슴에 달아보며 놀고는 합니다. 어린 아이에게 먹일 수 있는 유아식이 나오지도 않는 상황에서 맵고 짠 성인용 밥상을 물로 씻어 먹여야 하는 삶.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교도소에서 매일 차가운 물로 아이의 옷을 빨아야 하는 교도소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18개월까지만 키울 수 있는 교도소의 정책 하지만 3개월 후에나 교도소를 나갈 수 있는 116번 소향은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가석방 신청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소향은 2010년 12월 24일 교도소를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녀와 아이를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차가운 겨울, 그녀가 향할 수 있었던 곳은 쉼터 선생님이 소개해준 미혼모 시설이었습니다. 30년 만의 혹한이 찾아왔던 그 추운 겨울 밖에서 떨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수인번호 116번인 아닌, 가은이 엄마 정소향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만 고민합니다.
정부에서 나오는 놀이방 비용으로 아이를 놀이방에 맡기고 열심히 일자리를 찾던 그녀는 힘들게 빵집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첫 출근하는 날 어린 아이를 놀이방에 맡기고 일터로 향하는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희망차고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노력해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줄 아이가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 삶의 무게감이 한없이 무겁고 힘겨울 지라도 이를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것 역시 가은이이기 때문이지요.
태어나서 평생 엄마와 5평 남짓한 교도소에서 살아왔던 가은에게 놀이방은 낯선 공간일 뿐입니다. 아이들이 작은 방에 이렇게 많은 것도 처음이고 자신과 비슷한 이들을 본 것도 처음인 어린 가은이가 힘겨워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너무 낯선 환경이라 놀이방에서 주는 간식도 식사도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 그런 아이가 엄마가 해준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부쩍 '아빠'라는 단어를 내뱉기 시작하는 아이를 위해 아빠를 보여주고 싶었던 소향은 전화도 받지 않고 아이도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고 힘겹게 발걸음을 돌려야만 합니다. 그저 아이에게 아빠라는 존재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 마저도 그녀에게는 사치였다는 사실이 그녀를 힘들게만 합니다.
놀이방도 쉬는 설날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일터로 나간 소향. 바쁜 명절 아이를 데리고 나온 소향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사장과 호의임에도 불안한 소향은 고개를 숙인 채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아이를 돌봐줄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할 수 있는 것이란 자신이 일을 해 아이를 돌보는 것이 전부인 그녀가 힘겹게 얻은 일자리는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다행히 세 번째 월급을 받던 소향은 손님들이 뽑은 우수사원으로 뽑히는 영광까지도 얻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그녀는 어쩌면 살아오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딸을 위해 작은 집을 하나 가지고 싶은 소향. 그녀는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우리시대 입양과 파양에 대한 이야기에서 미혼모의 삶까지 소향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환경은 많은 것을 고민하게 합니다. 입양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가족에게 파양당한 아이 문제는 더욱 심각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한 번 버림받았던 아이가 다시 버림을 받으면 그 충격이나 상처는 더욱 깊고 클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지요.
소향의 경우도 파양 사실을 알게 된 후 거리를 배회하고 비행청소년이 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입양되었던 가정이 이혼으로 파탄나지만 않았어도, 혹은 이혼 후에도 소향이 파양당하지만 않았어도 그녀의 삶은 달라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파양을 당했다 해도 정책적으로 그런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그녀 같은 혼란은 겪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죄를 지은 것은 잘못이지만 교도소에서 애를 낳고 키워야 하는 그녀에게 과연 그런 환경은 정당한 것인지도 반문하게 합니다. 다른 제소 자와 다름없이 한정된 시간만 허락된 외출시간. 아이의 건강이나 삶의 질에 대해 그 어떤 것도 해주지 못하는 교도소의 문제도 아쉽게 다가옵니다. 그나마 엄마와 18개월 동안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해야 하는 상황에서 교도 행정을 탓하는 것도 사치일지 모르겠습니다.
<엄마의 약속>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버려진 아이에 대한 관심과 그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절실함을 느끼게 됩니다. 버림받은 아이들이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체계적인 관리와 보살핌은 국가의 몫이건만 우리 사회에서 그런 보살핌마저 사치라고 여기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이런 악순환은 운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잘사는 이들은 더욱 잘 살 수밖에 없는 사회. 못사는 이들은 그런 가난을 숙명처럼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사회는 절망과 다름없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고 현재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제거된 사회는 미래를 꿈꾸기 힘든 사회일 겁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백만장자들을 탄생시킬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대단한 뉴스인가요? 그만큼 사회의 경계는 명확해지고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의 괴리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다 함께 행복하게 살자는 모토는 사라지고 가진 자들에게 몰아주는 사회가 점점 고착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절망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어린 딸과 함께 살면서 그녀가 꿈꾸는 미래는 단순합니다.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어린 가은이에게는 걷게 하지 않겠다는 소박하지만 예쁜 그녀의 소망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조금은 힘겹고 어려운 날들이겠지만 어린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테니 말이지요. 열심히 일하고 월급을 받으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오랜 시간 계속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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