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흘러가며 감정선을 극대화하는 방식은 스릴러에서는 유용합니다. 보다 밀도 높게 출연자들의 연기에 몰입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심리 묘사를 하기 위해서는 빠른 컷이 아닌 느리게 흐르며 연기자의 내면 연기까지 모두 잡아낼 수 있는 방식이 최고인데, 이 작품이 그렇습니다.
자신의 딸 하빈에게 프로파일러인 아빠 태수는 "송민아 네가 죽였어"라는 직접적인 질문을 건넵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딸 하빈은 어린 나이에 사망한 남동생 호준은 과연 사고였을까? 얼마 전 자살한 어머니에 대해서는 정말 자살이라 생각하냐는 충격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섬뜩할 정도의 부녀간의 기싸움을 멈추게 하고 긴장하게 만든 것은 외부인이었습니다. 사건을 수사하던 오 형사가 하빈을 찾기 위해 집을 방문했습니다. 이미 사건 속에서 하빈의 이름을 본 태수는 이를 알리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행동이라 쉽게 문을 열어줄 수도 없었습니다.
대답 없는 상황에 돌아가려던 오 형사는 집 앞에 주차된 차량이 태수 것임을 알고 바로 전화를 걸죠. 이 상황에서 태수는 딸을 보호하려 했지만, 하빈은 오히려 문을 열어줍니다. 이 상황을 태수가 당황스럽게 받아들인 것은 딸이 범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화산에서 하빈의 휴대전화가 발견되었다는 형사들의 질문에도 능숙하게 대응하는 하빈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어떤 질문들이 나올지 예상이라도 한 듯, 송민아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합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 11일 자신은 남자친구와 함께 있었다는 좀 충격적인 이야기도 합니다. 하빈이 집앞에서 의도적으로 사고를 낸 것도 이 상황들까지 염두에 둔 행동이었습니다.
오 형사가 다녀간 후 이들이 자신의 방 책상에 앉아 있는 장면이 번갈아 나옵니다. 구조가 완벽하게 같은 방에서 뭔가를 보는 이들의 뒷모습이 서서히 달리 샷으로 집밖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은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같은 공간에 거주하면서도 서로 다른 부녀의 모습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미장센이었습니다.
십자가 모양의 내부에 부녀가 거주하는 공간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만 둘은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징성은 결국 이 스릴러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뛰어난 프로파일러와 그에 못지않게 비상한 머리를 가진 딸의 심리극이 초반을 압도하고 있는데, 이를 상징적으로 묘사해 풀어낸 것이 이 장면이었습니다.
하빈은 포털사이트에 아버지인 태수를 검색해봅니다. 그는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일까요? 아버지가 풀어낸 사건을 기사화로 정리하거나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하빈이 아버지를 검색한 것은 그가 해결한 사건들 속에서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함일 것입니다. 이는 후반 하빈이 아버지를 궁지로 내모는 장면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오 형사는 학교를 찾아 하빈의 남자친구인 수현을 만나 그날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파티룸에서 같이 있었다는 증언과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들 뒤에 태수도 수현을 찾아 딸과 함께 있었냐고 묻습니다. 하루 종일 방안에 둘이 같이 있었냐는 질문을 합니다. 중간에 하빈이 나간 것이 아닌지 묻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빈의 1학년 담임인 준태를 만난 태수는 자신은 모르고 있는 딸의 일상을 듣습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수현과는 1학년 때부터 친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실제 체육시간에 아이들과 활발하게 노는 하빈은 또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태수가 하빈 남친이라는 수현과 만난 후 홀로 남은 장면 역시 분명한 상징을 보여줬습니다. 부감샷으로 찍은 이 장면에서 태수의 그림자는 삼각형 구도의 벽에 갇혀 있습니다. 물론 조금만 틀면 출구가 존재하지만, 이 장면은 현시점 태수의 출구 없는 불안을 상징적으로 잘 담아낸 상징이었습니다.
하빈이 머물렀던 5층 파티룸까지 들어간 태수는 창문과 아래에서 위를 쳐다봐도 11일 출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 오 형사는 하빈을 의심할 수도 있었지만, 탐문을 하고 현장 CCTV 등으로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형사들과 아버지가 다녀간 후 하빈은 수현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수현을 찾아 어떤 질문들을 했는지 확인하죠. 그런 상황에서 수현은 아버지가 프로파일러라면 자신은 숨막힐 것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빈의 말은 의외였죠. 아버지가 프로파일러면 거짓말을 더 잘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정교하게 상대를 분석하는 프로파일러에 맞서 보다 세밀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이. 이 지독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에서 배신은 누가 하고 있는 것일까요? 서장에게 중간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오 형사는 태수가 자신의 딸이 사건에 개입되었다는 것을 알고 수사원칙을 어겼다는 것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태수가 이를 자백하려할때 막아서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앙숙처럼 지내고는 있지만, 태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더욱 하빈이 의심스러운 정황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죠. 하지만 태수 딸 문제로 강력 1팀 형사와 범죄 행동 분석팀 사이에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상황을 중재하고 정리한 것도 오 형사였습니다.
문제의 가출팸들이 사는 집의 주인인 김성희의 행동도 이상합니다. 도주한 가출팸 리더인 최영민을 잡기 위해 잠복 중인 형사들을 단박에 알아보는 것은 이전에 많은 경험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영민이 숨어 있던 곳이 성희의 방이라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성희의 몸에 멍들이 있었는데, 영민이 그를 힘으로 제압하고 폭력을 휘둘러왔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들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집주인과 세 들어 사는 관계 사이에 나올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민이 성희를 향해 비밀이 존재함을 암시하는 장면도 그의 과거를 궁금하게 만듭니다. 어느 한 사건으로 인해 성희는 영민에게 약점을 잡혔고, 그렇게 갑을 관계가 만들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게 하니 말이죠. 여기에 잠복중인 형사의 눈길을 끌고 이틈을 이용해 영민이 도주하게 만드는 성희의 행동은 그래서 과거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하빈은 왜 무인물품 보관소를 찾은 것일까요? 그리고 매번 비밀번호 오류가 나서 해당 물건을 찾지도 못하는 상황도 궁금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소득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던 하빈의 그림자가 집 앞에서 두 개로 나뉘는 장면도 상징입니다.
조명에 의해 그림자는 다수로 만들어질 수 있는데, 하빈이 집앞에서 두 개의 그림자로 나뉘는 것은 그의 캐릭터를 잘 보여줍니다. 하빈은 뭔가를 숨기고 연기하고 있는데 그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집 앞에 도착한 하빈의 그림자로 표현한 제작진의 연출은 칭찬해 줄 만합니다. 그만큼 많은 고민을 하면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태수는 하빈을 믿기로 합니다. 여러 정황들에 대해 불안해했지만, 알리바이까지 확인된 상황에서 더는 딸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말에 하빈은 돌아가자 합니다. 본청으로 복귀하면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태수가 본청 복귀를 미룬 것은 딸 때문이었습니다. 아내의 죽음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딸을 홀로 둘 수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상황에 하빈이 먼저 본청을 언급합니다. 더욱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하빈의 이런 제안은 반갑기보다는 오히려 불안하게 다가왔습니다.
도망쳤던 가출팸 아이들이 붙잡혔습니다. 관할지 밖에 있는 찜질방과 모텔 등을 전전한 이들을 잡은 후 본격적으로 취조를 하기 시작하죠. 하지만 이들은 모두 말을 맞춘 듯 비슷한 이야기들만 합니다. 송민아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들을 하고 영민을 비호하는 듯한 행동은 분명한 의도로 다가옵니다.
이를 분석해 이들이 말을 맞췄다는 것을 확인한 태수는 부드러운 대홍에게 약한 고리를 취조하도록 합니다. 불안에 손톱을 뜯는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습니다. 그 아이에게 밴드를 내밀며 부드럽고 편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대홍으로 인해 영민이 지시했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다른 아이들의 증언과 달리, 그 아이는 진실을 말했습니다. 영민과 민아 사이에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민아가 가출팸을 나간 것을 알고는 분노하며 찾으면 죽인다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사건이 발생한 11일 영민은 숙소에 안 돌아왔다는 말까지 합니다.
그렇게 영민을 추적해 붙잡기는 하지만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붙잡아 둘 수는 없었습니다. 무인 물품 보관소에서 하빈은 비밀번호를 풀고 안에 있던 가방을 가져 갑니다. 그 안에는 영민이 그렇게 찾고 싶어 한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영민이 기를 쓰고 도망친 지연을 찾으려 했던 것은 민아가 가지고 나간 돈가방 때문이었습니다. 뒤늦게 무인 물품 보관소를 찾지만 비밀번호를 알길은 없었습니다. 그런 영민에게 돈다발이 찍힌 사진이 도착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이끄는 것은 하빈입니다.
능숙한 프로파일러인 태수는 딸이 11일 하루종일 있었다는 파티룸이 있는 건물 뒷편에 주차된 차량에 명함을 끼워놨습니다. 그리고 연락이 왔고 확인한 그날의 진실은 하빈의 말과는 달랐습니다. 하빈은 저녁 파티룸을 빠져나와 어딘가로 향했습니다.
1학년때 담임은 수현이 가난했다고 하지만 실제는 달랐습니다. 교사 언급한 수현은 전학온지 얼마 되지 않은 남학생 수현이 아닌 동명이인 여학생이었습니다. 수현은 학교 그만두고 가출 중이라는 말을 들은 태수는 그의 집을 찾습니다.
술에 쩔은 수현의 아버지는 딸을 원망하다 태수가 보여준 하빈 사진을 보고 중요한 말을 합니다. 애도 가출했냐고 묻더니, 딸이 하빈의 전화만 받으면 언제나 달려 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다 가출했다는 말은 태수를 불안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의 거짓말과 파고들면 들수록 모든 곳에 하빈의 흔적들이 있다는 것은 프로파일러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징후들입니다. 할 이야기가 있다며 독서실 가는데 태워달라는 딸에 아무 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던 태수는 갑자기 불안해집니다.
글로브 박스에 키링을 넣어놨기 때문입니다. 빨간털실로 만든 인형 키링은 중요한 증거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키링을 가출하고 사라진 하빈의 친구였다는 수현이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된 상황입니다. 혹시라도 딸이 이를 가로채 가져간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합니다.
별말 없이 독서실에 도착했으니 말이죠. 그러면서 하빈은 태수가 했던 말을 확인하듯 말합니다. "진짜 범인 아빠가 잡을거야"라는 말은 태수가 하빈에게 했던 말입니다. 본청 복귀를 하지 않고 이번 사건을 끝까지 맡겠다며 딸에게 한 말을 하빈은 독서실 앞에서 되돌려 줬습니다.
다행스럽게 태수의 불안과 달리, 글로브박스 안 키링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딸을 다시 의심했다는 사실이 미안해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안심은 위기로 찾아옵니다. 태수가 국과수의 황영수 과수팀장에게 키링을 맡긴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누군가의 제보로 태수는 대기 발령 상태가 됩니다. 태수 차 트렁크에 현금이 들어있었고, 2년 전 체포한 범인이 준 뇌물이라는 제보로 인해 수사를 받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하빈이 판 함정이었습니다. 글로브 박스에 모든 신경이 가 있는 사이 하빈은 트렁크에 영민의 돈을 이용해 트릭을 만들어 놓은 것이죠.
태수가 맡긴 키링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붉은 실과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1년 전 사망한 백골사체의 DNA와도 일치한다는 말은 태수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증거들만 보면 딸이 범인이고, 그것도 모자라 1년 전에도 살인을 했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10대 백골 사체는 당연하게도 1년 전 집을 나간 수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하빈은 영민과 짜고 이런 짓들을 벌였을까요? 당연하게도 전혀 아닙니다. 영민과 하빈이 친하고 그렇게 연쇄살인을 하는 존재였다면 가출팸에서 오래 생활했던 민아가 그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은밀하게 영민이 밖에서 만났다는 말은 무의미하니 말이죠. 그렇다면 이는 하빈이 절친했던 친구 수현을 찾아다니며 그날의 진실들을 찾고 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수현이 만든 인형 키링은 동일한 것을 하빈과 나눴을 가능성도 큽니다.
절친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 말이죠. 절친이었던 수현이 사라진 후 끈질기게 하빈은 그 사건을 추적해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과 같은 수현의 키링을 발견한 하빈은 친구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었을 듯합니다.
진짜 범인을 아빠가 잡을 거냐는 질문 속에 그 답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랄한 살인마가 도발하듯 건넨 발언은 아니었습니다. 하늘색 대포폰의 경우도 민아의 것이 아닌 사망한 수현의 것일 가능성도 큽니다. 그리고 하빈이 민아를 지하철에서 보고 도우며 곁으로 다가선 것도 수현의 진실을 파해치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갑작스럽게 유력한 연쇄살인마가 되어버린 하빈. 그런 딸을 바라보는 프로파일러 아버지 태수. 믿음과 불안 속에서 태수는 정말 진짜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요? 사건을 파해치고 해결하는 과정은 단순히 범인을 잡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멀어진 부녀의 관계 회복도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이후 이야기들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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