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넷플릭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거대한 드라마는 바로 '경성크리처'입니다. 마지막 한주를 앞두고 공개한 이 작품에 대한 기대치는 공개된 시즌 1의 7회까지 감상하면 감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 일제 강점기를 다룬 그 어떤 드라마보다 격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한 드라마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취향에 따라 선호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크리처물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해 고질라 같은 괴물들이 등장하는 그런 장르물을 생각한 이들이라면 분명 실망했을 겁니다. 크리처물이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괴물은 하나뿐이고 그 괴물 자체가 핵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드라마보다 무거운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허들이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안 되는 이야기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다룬 다양한 작품들이 존재하고 그들 나름의 가치관과 재미를 담았습니다. '경성크리처'는 장르극을 가져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앞서 1, 2회가 거대한 서사의 시작을 알리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는 쉽게 몰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초반 흐름에 시청을 포기한 이들도 존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장 좋은 드라마 한 편을 놓친 겁니다.
'경성크리처'는 태상과 채옥이라는 인물을 큰 줄기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그들과 함께 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추가되며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죠. 이를 위해 작가는 매 회차마다 소제목을 달고, 다양한 캐릭터들의 서사를 충실하게 담았습니다.
한 방향의 역사가 아닌 출연진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를 구축하고 얼개를 갖추는 과정 역시 익숙한 방식이지만, 효과적으로 잘 쓰였습니다. 연결된 모든 이들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목적으로 향해갑니다.
그 목적지는 옹성병원이었고, 조각을 찾아 맞춰가는 과정에서 그곳으로 향하게 되죠. 이 형식은 이제는 만들어지지 않는 '서부극'의 고전적인 방식을 생각나게 합니다. 마을을 지배하는 악당들을 잡기 위해 보안관이 마을로 들어가 적들을 소탕하고 떠나는 방식은 전형적인 '서부극'을 연상하게 합니다.
태상은 자신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이시카와 경무관의 애첩인 명자를 찾기 위해서, 채옥은 엄마를 찾기 위해 옹성병원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중요인물들이 병원으로 감춰진 그곳에 들어가며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가토가 극찬한 '여신' 괴물의 정체는 채옥이 그토록 찾던 엄마 최성심이었습니다.
엄마가 괴물이 된 지도 모르고 지하에 갇힌 이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만난 괴물과 싸우는 채옥의 모습은 슬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가토가 채옥에게 그 괴물이 바로 네가 그토록 찾던 어머니라는 말을 듣는 순간은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직 돈만 밝히는 태상의 서사도 정확하게 드러났습니다. 그가 오직 생존에 집착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유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의열단 단원이기도 했던 태상의 어머니 심순덕은 밀고자에 의해 순사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를 감지하고 아들을 감추며 남긴 유언이 바로 "살아라"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라는 어머니의 말은 그를 버티게 만드는 유일한 힘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끌려간 형무소 앞에서 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매일 나와 있던 어린 태상은 피투성이가 되어 내던져진 한 아주머니를 발견합니다.
어머니와 같은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자신의 식량인 고구마와 물을 건넵니다. 허겁지겁 고구마를 먹던 그 아주머니는 어린 태상의 어머니 이름이 심순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오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밀고해 형무소에 들어가게 된 것이 순덕이기 때문이죠.
그 아주머니가 바로 태상 곁에 있는 나월댁입니다. 자신의 밀고로 죽은 순덕의 아들을 지키는 것이 나월댁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목표입니다. 이런 나월댁의 서사와 함께 흥미롭게도 태상과 함께 옹성병원에 들어갔다 붙잡힌 준택이 강요에 못 이겨, 나월댁처럼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밀고자가 되는 과정과 오버랩됩니다.
이런 서사를 전개하며 현재의 상황을 연결하는 과정은 정교한 연출입니다. 모두가 영웅이 될 수 있듯, 모든 이들은 밀고자도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아이러니 상황들은 태상과 애국단원인 인혁과 대화에서도 잘 드러났습니다.
자신은 독립군으로 활동한다며 신념을 앞세워 거만함을 보이는 인혁의 행동들은 태상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조직 앞세워 이분법적으로 사람을 나누며 자기합리화와 정당성만 앞세우는 인혁의 논리는 궁지에 몰리자 밀고자가 된 준택의 모습과 연결됩니다.
태상에게 왜 애국단에 들어오지 않느냐고 타박을 주던 준택과 그런 조직에 들어오지도 않은 자라는 말로 태상을 공격하는 인혁의 모습은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현재 시점에도 존재하는 이중성입니다. 이런 거창한 포장 없이도 독립을 위해 싸우는 이들은 많았기 때문입니다.
옹성병원에서 구출된 이들을 구조해 경성에 도착한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태상과 인혁의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보여줬습니다. 술집 사장도 양복점 주인도, 인력거꾼도 모두가 독립을 위해 자신을 숨기고 활동하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살피고 챙긴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태상이었습니다. 태상이 돈에 집착했지만, 그 돈으로 탐욕스러운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독립군을 도왔던 것이죠. 그저 애국단이라는 이름을 걸고 말만 거창한 것이 아니라, 드러내지 않고 직접 실천하고 있던 인물이 바로 태상이었죠. 그렇게 태상의 희생으로 구조된 인혁은 나월댁의 이야기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7회까지 이야기에서 강렬하게 다가온 세 장면이 존재합니다. 보신 분들에게는 각기 다른 강렬한 기억이 존재하겠지만, 학도병, 채옥과 괴물의 만남, 인력거꾼들이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두 장면은 모두가 고객를 끄덕일 수도 있겠지만, 인력거꾼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할 수도 있겠네요.
학도병 최군은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일본군들에게 온갖 학대를 당해왔고, 죽음을 생각한 순간 채옥에 의해 살 수 있었습니다. 채옥은 죽더라도 지금은 아니라 했습니다. 그들에 굴복해 죽지 말고, 그들과 맞서 싸우다 죽으라는 말에 "절 잊으시면 안됩니다"라는 말을 하죠.
이 발언은 중의적인 표현이죠. 극 중 최 군은 옹성병원을 함께 탈출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채옥에게 자신을 잊지 말고 함께 탈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것은 당시 수많은 이들이 학도병으로 끌려가 이름 없이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독립을 위해 투쟁한 것도 아니기에 누구에게도 인정받지도 기억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을 좋아해서 일본군의 앞잡이가 된 것이 아니었죠. 당시 조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방패막이가 되어 죽어간 수많은 학도병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작가의 부탁이 이 대사에 담겨 있었습니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나약하기만 했던 학도병 최군은 중요한 역할을 하죠. 태어나 처음으로 총을 쐈는데, 탈출하는 이들을 발견한 일본군을 향한 사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일본군과 총격을 가하는 상황에서도 최 군은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무도한 일본군들과 전투에서 총을 맞고 숨이 멎어가는 과정에서 박군은 채옥에게 다시 "저를 기억해 주세요. 제 이름은 최영관입니다"라며 주소까지 어렵게 말하고 군인 인식표를 건네고 숨을 거둡니다. 경성 의대생이었던 영관은 학도병으로 끌려가 지독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갇혔던 이들의 구출을 돕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영관의 어머니는 학도병으로 끌려간 아들을 찾기 위해 나월댁을 찾아가 당시에는 고가인 재봉틀을 건넸습니다. 아들의 행방이라도 알고 싶다는 이유였죠. 그런 어머니 집앞에 정갈하게 묶은 포장 안에는 자신이 건넨 재봉틀과 피가 묻은 아들의 인식표가 있었습니다.
비록 살아서 어머니에게 갈 수는 없었지만, 아들의 인식표를 받은 어머니는 오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많은 학도병들은 그렇게 가족들에게 생사도 알리지 못하고 사라져 갔습니다. 그런 그들을 잊지 말아 달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강렬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토에 의해 자신이 죽이려 했던 괴물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채옥은 이를 믿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괴물은 옹성병원 원장인 이치로에 의해 진짜 괴물로 길러졌습니다. 사람들을 먹이러 던지고는 종을 치는 방식으로 길들여갔죠.
탈출한 괴물을 다시 불러들인 가토가 원한 것은 과연 어머니 괴물이 자신의 딸 채옥도 죽일 수 있느냐였습니다. 인간을 뛰어넘은 절대적 존재라 생각한 가토는 그렇게 괴물이 채옥도 죽이고 완벽해지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채옥은 믿지 않았던 괴물의 목에 자신이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줬던 나무 목걸이를 보고 오열했습니다.
채옥이 자신의 딸인지도 모르고 죽이려는 순간 "어머니"라는 외침은 갑작스럽게 공격을 멈추게 했습니다. 괴물이 되었음에도 결코 잊지 못한 딸 채옥을 그제서야 알아본 괴물의 모성은 일본군들의 공격마저 완벽하게 차단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 분노한 가토의 지시를 받고 시작된 총격에서 채옥을 구하기 위해 거대한 우산처럼 자신의 몸을 감싸는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크리처물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인간적인 모성애는 누군가에는 근천스럽고 한심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겠지만, 이야기를 몰입했다면 이 장면이 왜 위대한지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인력거꾼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하층민입니다. 그런 그들이 힘들게 옹성병원을 탈출한 이들을 태우고 움직이는 장면은 7회를 장식하는 하이라이트이기도 했습니다. 이시카와 경무관과 준택 아버지를 태상은 이용합니다. 명자와 준택이 옹성병원에 갇힌 상황임을 이용해 이들을 이용해 구출작전을 펼친 것이죠.
명자를 구하는 조건으로 갇힌 조선인들을 구출하는 것을 용인했던 이시카와이지만 그 자를 믿을 수 없었죠. 명자를 내려주자마자 그들은 증거가 될 수 있는 조선인들을 잡으러 추격하기 시작했죠. 이 과정에서 경성에서 이름 없는 이들이 하나가 되어 돕기 시작합니다.
거리에서 축제를 열고 그렇게 순경들의 차를 막고 조직적으로 탈출한 조선인들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과정은 흥미로웠습니다. 비록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한 무명의 조선인들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력거꾼들이 탈출에 성공한 이들을 태우고 경성을 벗어나는 장면을 부감으로 잡은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경성크리처'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와 잘 맞아떨어지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 이들의 모습을 담는 이 드라마의 주제는 너무 명확합니다. 이름 없이 독립을 위해 죽어간 수많은 이들을 위함이니 말입니다.
7회 말미에 가토가 채옥마저 괴물로 만들기 위해 물과 분간이 되지 않는 약물 '나진'을 먹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채옥은 먹지 않았고, 누군가는 그 나진을 먹었습니다. 자신의 방에 들어왔던 이들 중 하나는 나진을 마셨다는 의미이고, 이를 마신 자는 괴물이 됩니다.
모두를 위해 스스로 옹성병원에 남은 태상이 괴물이 될까요? 자신을 쫓는 일본군을 죽이고 피를 흘리며 벽에 남겨진 태상의 피가 일반적이지 않아, 괴물화되어가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탈출에 성공해 이시카와의 품에 안겨 잠든 명자의 얼굴에 괴물의 흔적이 드러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탈출한 채옥의 악몽은 복선처럼 남겨져 있습니다. 괴물이 된 어머니가 있던 그 장소에는 수많은 이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마주한 태상을 보고 다가가는 채옥은 괴물의 촉수에 찔리고 맙니다. 그건 태상이 괴물이 되어 채옥을 공격한 것이었죠. 악몽이었지만, 이게 복선이 되어 이후 이야기에서 전개될지 궁금해집니다.
'경성크리처'는 단순한 크리처물이 아닙니다. 단순한 오락 드라마도 아닙니다. 그리고 애달픈 사랑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도 아닙니다. 그래서 허탈해하고 아쉬워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경성크리처'는 분명한 색깔을 내며 매혹적이고, 완성도 높은 시대극을 만들어냈습니다. 다음 이야기와 시즌 2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너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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