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을 가진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해집니다. 제주에서 시작해 우리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여성들의 삶과 연결해 풀어간 '폭싹 속았수다'는 이 시대를 살아간 모든 이들을 위한 감사의 서사입니다.
애순의 유일하다 할 수 있는 혼수인 자개장을 낡고 낡은 아파트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것은 그 안에 자신의 모든 것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물은 할머니, 어머니와 자신을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자개장을 넣을 수준의 방도 없어 출입구 옆에 두자 아들 은명은 신발장으로 쓸 거냐고 하지만, 관식은 달랐습니다. 오자마자 겉옷 벗어 넣을 수 있어 좋다는 관식은 오직 애순을 위해 태어났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금명이 자기 부모들의 삶을 동화라고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금명을 유학 보내기 위해 애순은 그렇게 소원했던 생선가게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세 이모네 횟집' 앞에 가판을 두고 장사하는 애순은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금명이 하고 싶은 공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가게도 집도 포기했지만 애순의 행복은 딸 금명에게 있었습니다.
90년 금명은 달동네 하숙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유학을 다녀오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 상상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어 과외를 하려 해도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우연하게 만난 그 사람이 어떤 인연으로 이어질지 그때는 미처 몰랐던 금명입니다.
하숙집 딸 부선은 갑자기 잠글 수도 없는 문을 비집고 자신이 데려온 남자를 욱여넣기 시작합니다. 황당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던 그 남자는 금명의 옷장에 숨어 있었지만, 하숙집 주인아저씨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박충섭(김선호)이었습니다.
극장에서 간판을 그리는 화가 지망생입니다. 그게 인연이라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 금명에게 자신이 간판을 그리는 깐느극장 매표원 자리를 알아봐 줍니다. 그렇게 극장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의 관계는 느슨하지만 연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명은 서울에서 미국 유학 갔던 남자친구가 돌아오자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극장 스크린 뒤에서 키스를 하며 마음껏 애정을 뿜어내는 사이 제주에서도 일이 생겼습니다. 애순네 집에서는 은명의 첫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방안에 누군가 함께 있는 것을 안 애순은 단짝 친구인 철용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옷장에 숨어있던 이는 머리를 짧게 깎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애순과 관식에게는 악연인 선장 부상길의 딸 부현숙(이수경)이었습니다. 로미오와 쥴리엣도 아니고, 두 집안이 사돈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습니다.
현숙의 엄마 영란은 언제나 관식과 같은 남자와 결혼하라고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오직 아내만 바라보는 관식에 대한 애정은 그렇게 딸 현숙이 관식의 아들 은남과 연애하게 만들었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그들이 쉽게 친해지는 것은 너무 당연했습니다.
은명의 사랑은 금명이 이야기하듯, 또 다른 동화가 될 수 있을까요? 동화는 아니지만 활극이 가미된 일일드라마 수준은 되는 듯합니다.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장이 사 온 만두가 이상한 상황들을 만들었습니다. 충섭에게 만두를 가져다 주라는 말에 그가 일하는 곳에 들어선 금명은 '백석 시 전집'을 읽는 충섭이 의외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충섭이 간판쟁이를 그만두기 바라는 부선과 자신을 두고 선을 반복해서 보는 행동을 언급하는 다툼이 이어집니다. 혹시 누구 숨겨둔 사람 없냐며 따지는 상황에 황당하게도 금명이 있었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운 상황이지만, 만두 가져다주러 왔다는 말에 도시락은 누가 싸줬냐로 발전합니다.
이후 부선은 금명의 신발을 차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은명은 현숙과 헤어지기로 합니다. 그 이유는 얼굴 상처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좁은 제주에서 현숙의 오빠 오성과 한음,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오성은 영란이 낳은 아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키워준 영란을 그들은 친엄마로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헤어지라고 요구할 정도가 아니라, 이혼하면 어머니 따라 나간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 오성에게 현숙은 당연하게도 끔찍한 여동생이었습니다.
얻어터져 더는 만날 수 없게 된 은명이 이별을 고하자 현숙은 도망가자고 합니다. 오직 은명만 바라보는 현숙에게 이별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영범의 생일날 그의 집을 찾은 금명은 그곳에서 영범 어머니 부용(강명주)은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냅니다.
아들 생일날 금명과 부용의 기싸움은 일방적으로 금명을 압박할 수밖에 없었죠. 금명은 영범에게 '착한 아들과 착한 남편'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합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 하지만 금명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관식은 착한 남편이 되기 위해 싸웠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은명은 학교에서 담배를 팔다 걸렸습니다. 애순은 딸 금명과 너무 다른 은명의 행동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런 상황에 이모들은 은명이 왜 돈이 필요한지 아냐고 묻습니다. 은명이 하는 모든 것은 돈을 벌기 위함이기 때문이죠. 이는 현숙이 제안한 도망치기 위한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극장에는 개봉 때마다 오는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이제 극장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그 아줌마는 신기하게도 영화보다는 간판 그림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배우와 닮았냐는 질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사람들이 간판은 보지 않고 극장에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기까지 했습니다.
우연하게 그 아주머니의 행동을 본 금명은 누군지 알 수 있었습니다. 간판 그림을 그리는 충섭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런 충섭 어머니에게 표를 주며 영화도 보시라고 합니다. 아들 그림만 보는 충섭 어머니의 모습은 항상 예술적 그림만 그린다고 타박하는 사장도 울컥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시네마천국'을 보는 충섭 어머니는 환상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충섭은 엄마가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은 처음 본다 합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선 엄마는 충섭이 토토 같다고 합니다. 예술가인 아들을 응원하는 엄마의 마음은 '시네마천국'에 잘 녹여져 있었습니다.
대학가에서 복사집을 운영하는 충섭 어머니는 금명이 영문학과라는 이야기를 듣고 졸업할 때까지 책을 다 주겠다고 합니다. 복사 맡겨놓고 가져가지 않은 책들이 너무 많다며 싸주며 여자는 들 수 없다며, 눈으로 충섭에게 들어다 주라는 그 선택은 많은 것을 바꾸게 했습니다. 충섭 어머니는 금명과 같은 며느리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바로 부모의 마음이죠.
'낯선 사람의 낯선 호의가 위험하던 시절'에 애순은 꿈자리가 나쁩니다. 불쾌한 꿈들은 애순을 괴롭히고 있었죠. 아버지 재사날 애순은 60년 3월 그날 있었던 일을 잊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해서 집으로 가던 어린 애순은 검은 잠자리를 우연하게 보게 됩니다.
저승 잠자리라고도 불리는 검은 잠자리에 홀리듯 쫓아간 애순은 '애기 오름'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의 부탁을 들어줍니다. 돈을 바꿔다 달라는 말에 애순은 땀까지 흘리며 열심히 뛰어갔습니다. 그렇게 10 환을 준 그 여성은 이번에는 배추 장수 도라꾸에 가서 돈을 바꿔오라고 부탁합니다.
손목에 그은 상처가 있는 그 여성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한 애순은 열심히 배추 장수 도라꾸를 향해 달려갔지만, 그 앞에서 막아선 것은 엄마 광례였습니다. 광례가 그곳에 나타난 것은 애순이 검은 잠자리를 따라갔다는 사촌 동생의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뭔가 이상하단 생각에 광례는 발바닥에 상처가 가득할 정도로 한달음에 산을 넘어 애순을 찾았습니다. "엄마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다"는 말을 하는 광례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순을 속인 어른을 잡고 싶어 했습니다. 광례는 자기 딸을 납치해 팔려고 한 자들을 찾기 위해 제주를 전부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생선 팔던 좌판에서도 애순이 본 손에 상처가 있는 자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죠. 그렇게 기다리던 범인이 등장했습니다. 광례가 그렇게 범인을 잡고자 했던 것은 그자가 딸 애순의 얼굴을 봤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봤다는 것은 언제라도 딸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이 자들은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앵벌이 시키는 범죄자들이었습니다. 광례 손에 잡힌 남녀 범인은 시장 상인들과 손님들에게 죽도록 얻어맞았습니다. "엄마 촉을 누가 이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광례는 소중한 딸을 지키기 위해서 초인적인 능력을 보인 엄마였습니다.
'여명의 눈동자'가 하는 시간 애순에게 걸려온 전화에 불편해하는 금명. 그렇게 모녀는 오늘도 싸웁니다. 너무 친해서 그래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관계가 가족이기도 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래도 가족은 위대합니다. 그 위대함이 때로는 부담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니 말이죠.
"너랑 똑같은 딸 낳아봐"라는 애순의 말은 모든 어머니들이 딸들에게 하는 고정 레퍼토리입니다. 고전 중의 고전이 되어버린 이 말은 실제 그 딸이 딸을 낳으면 자신의 딸에게 다시 할 수밖에 없는 고전이 됩니다. 부모가 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태풍이 불던 날 자전거 타다 넘어진 금명을 찾아 나서던 애순은 그날과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수제비를 먹지 않고 사탕을 먹으려다 엄마에게 혼난 막내 아이는 "안아줘"라고 했지만, 금명 사고 소식에 미처 듣지도 못하고 뛰쳐나갔습니다.
애순은 꿈속에서 금명이 아닌 동명에게 돌아가 안아줬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아이를 품에 안고 울던 애순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악몽을 꾸고 있다 생각해 힘겨운 관식의 모습은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돌이킬 수도 없는 그 허무함이 삶을 짓누르고 있는 부모들이니 말이죠.
꿈자리가 좋지 않았던 애순은 금명을 찾아갔습니다. 여전히 자는 딸을 깨우려 했지만 이상했습니다. 연탄가스 중독이 되어 쓰러진 딸을 안은 애순은 "아가, 아가"라며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죽은 동명을 품에 안고 넋이 나간 애순과 오버랩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힘없이 팔이 뚝 떨어지는 순간 애순은 불길한 애감에 경악했습니다. 동명을 품에 안고 울던 애순은 그 순간을 모두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당시에는 어린 아들을 잃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잠긴 문을 무슨 힘인지 모르지만 부수듯 열었고, 다급하게 119에 전화를 하는 애순은 어린 엄마 시절과는 달랐습니다.
대한민국 3대 미제 사건이 모두 일어난 날 금명은 연탄가스에 중독되었습니다. 부선의 집에 찾아온 충섭은 쓰러진 금명을 업고 뛰었습니다. 달동네라 차도 올라올 수 없는 상황을 아는 충섭으로 인해 금명은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금명은 이번에도 엄마의 조바심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마음껏 자전거를 타게 해 주겠다는 엄마 애순으로 인해, 하고 싶은 것 다한 어린 금명이었습니다. 비탈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는 금명은 자칫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애타게 딸을 쫓아가는 엄마 애순과 순간적으로 딸을 구한 관식.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금명을 잡다 팔이 부러진 아빠 관식은 자신의 고통보다는 힘겨워하는 어린 딸 금명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수십 번을 살린 애순과 관식은 부모였습니다. 금명은 부모님처럼 동화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우린 잊고 있었지만 부모들은 그렇게 어린 자식들을 구해왔습니다. 망각의 힘은 현재를 살 수 있게 하지만, 부모의 희생이 현재의 자신이 있게 만들었다는 것은 자신이 부모가 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망각이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의 삶을 '폭싹 속았수다'는 매력적으로 잘 그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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