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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역사 history of drama

에우리피데스 — 메데아, 가장 불편한 거울이 된 드라마 | 드라마의 역사 006

by 자이미 2026.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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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역사 — 006

에우리피데스 — 가장 불편한 거울

신화의 틀을 안에서부터 깨뜨린 극작가
— 메데아는 왜 2,4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가

핵심 답변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4~406)는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중 마지막 인물입니다. 심리적 사실주의를 드라마에 도입해 신화 속 인물들을 실제 인간처럼 묘사했으며, 여성과 이방인 등 사회 주변부 인물들에게 처음으로 무대의 중심을 내어줬습니다. 대표작 메데아(BC 431)는 배신당한 여성이 자식을 살해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초연 당시 3등에 그쳤지만, 오늘날 가장 많이 공연되고 연구되는 고대 그리스 비극 중 하나입니다.

기원전 431년 대 디오니시아 경연이 끝났을 때, 심판관들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 3등을 줬다. 1등은 에우포리온, 2등은 소포클레스였다. 에우포리온이라는 이름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설다. 그는 아이스킬로스의 아들로, 아버지의 미발표 유작을 가지고 경연에 나왔다고 전해진다.

alt"에우리피데스"
에우리피데스

 

그해 에우리피데스가 출품한 작품 중 하나가 메데아였다. 그 메데아는 3등으로 끝났다. 그러나 2,400년이 지난 지금, 그해 경연의 1등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메데아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매해 수십 편이 공연된다. 역사는 때로 심판관보다 훨씬 긴 안목을 가진다.

살라미스 섬의 동굴에서 쓴 드라마

에우리피데스는 기원전 480년경 살라미스 섬에서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그가 태어난 해, 혹은 그 근방의 해에 살라미스 해전이 일어났다. 소포클레스가 그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합창을 이끌었다면, 에우리피데스는 그 섬에서 태어난 셈이었다. 세 거장이 같은 역사적 사건 속에 각자 다른 방식으로 얽혀 있었다.

 

에우리피데스에 대한 고대의 전기들은 그를 유독 고독한 인물로 묘사한다. 살라미스 섬의 해변 동굴에 칩거하며 글을 썼다는 이야기, 대중의 시선보다 철학자들과의 대화를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가 교류한 인물 중에는 소크라테스, 프로타고라스, 아낙사고라스가 있었다. 당대 가장 급진적인 사유를 하는 철학자들이었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인간의 이성을 최우선으로 놓고, 전통적 가치 체계에 물음표를 던지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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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류가 에우리피데스의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이 됐다. 아이스킬로스는 신의 정의를 믿었고, 소포클레스는 신의 뜻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탐구했다. 에우리피데스는 달랐다. 그는 신을 의심했다. 신화 속 신들의 행동이 과연 정의로운가. 전통이 당연시하는 것들이 과연 옳은가. 그 의심이 그의 드라마를 불편하고, 그래서 가장 현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90편의 극작가, 그러나 단 4번의 우승

에우리피데스는 평생 약 90편의 작품을 썼다. 대 디오니시아 경연에 22번 참가했고, 살아있는 동안 단 한 번만 우승했다. 나머지 세 번의 우승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사후에 주어진 것이었다. 소포클레스가 24번 우승했고 단 한 번도 3위 아래로 내려가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에우리피데스는 당대의 경연에서 철저히 외면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대중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극작가였다. 경연의 심판관들은 그에게 낮은 점수를 줬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그의 작품을 필사하고 낭독하고 암송했다. 이 역설이 에우리피데스라는 인물의 본질을 담고 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갔다. 당대의 기준으로는 불편하고 이단적이었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후대에 가장 강력한 유산이 됐다.

 

오늘날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18~19편이다.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가 각각 7편만 남긴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많다. 이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후대 사람들이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더 열심히 필사하고 보존했다. 그가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살아있는 이야기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에우리피데스가 드라마에 가져온 것 — 심리적 사실주의

에우리피데스의 가장 중요한 혁신은 구조적인 것이 아니었다. 아이스킬로스는 두 번째 배우를, 소포클레스는 세 번째 배우를 도입하며 드라마의 형식을 확장했다. 에우리피데스의 혁신은 그 인물들의 내면에 있었다.

alt"심리적 사실주의 미국 연극"
심리적 사실주의 미국 연극의 계승

 

그 이전까지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숭고한 존재였다. 아이스킬로스의 인물들은 신과 정의의 힘을 대표했고, 소포클레스의 인물들은 운명 앞에서 위엄 있게 무너지는 고귀한 영웅이었다. 에우리피데스는 그 숭고함을 벗겨냈다. 그의 인물들은 질투하고, 두려워하고, 자기기만에 빠지고, 이성적으로는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에 끌려가는 인간이었다.

 

브리태니커는 에우리피데스의 이 특질을 이렇게 정의한다. "에우리피데스는 등장인물들의 비극적 운명이 거의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결함 있는 본성과 통제되지 않은 열정에서 비롯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와 달랐다." 신의 뜻도, 운명의 저주도 아니었다. 인간 자신의 내면에서 비극이 자라났다.

"에우리피데스는 드라마를 영웅적 장엄함의 이야기에서 인간 감정과 현실에 뿌리를 둔 강렬한 드라마로 변모시켰다. 그는 비극을 영웅주의를 찬양하거나 운명을 묘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 사람들의 날것의 감정과 윤리적 딜레마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했다."

— History and Culture, Euripides

에우리피데스는 또한 드라마의 언어를 바꿨다.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의 언어가 장엄하고 시적이었다면, 에우리피데스의 대사는 더 구어적이고 자연스러웠다. 그의 인물들은 실제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말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희극에서 에우리피데스를 패러디하며 그의 대사가 "거리의 언어"를 닮았다고 조롱했다. 에우리피데스에게 그것은 조롱이 아니라 찬사였다.

메데아 —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것이 이미 일어났다

메데아(Medea)는 기원전 431년에 초연됐다. 이야기의 배경은 코린토스다. 그러나 메데아의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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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아

 

메데아는 콜키스의 공주였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손녀이자 강력한 마법을 지닌 여인이었다. 이아손(Jason)이 황금 양털을 찾아 콜키스에 왔을 때, 메데아는 그에게 반했다. 그리고 그를 돕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신의 왕국을 등졌으며, 도망치는 배에서 추격을 늦추기 위해 오빠를 죽여 그 시신을 바다에 던졌다. 이아손을 위해, 그와 함께하기 위해.

 

그리스에 정착한 뒤에도 메데아의 헌신은 계속됐다. 이아손의 왕위를 되찾기 위해 왕을 속여 죽게 만들었다. 이아손의 곁에서 두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이방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리고 이아손이 코린토스 왕의 딸 글라우케(Glauce)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메데아와 두 아들은 코린토스에서 추방당했다. 에우리피데스의 드라마는 바로 이 순간, 메데아가 추방 통보를 받은 직후부터 시작된다. 모든 비극의 원인은 이미 일어난 것이었다.

메데아의 독백 — 인류 드라마 역사상 가장 무섭고 인간적인 장면

에우리피데스가 메데아 신화에 가져온 가장 충격적인 혁신은 메데아 자신이 자식을 죽인다는 설정이었다. 기존 신화에서 자식들의 죽음은 다른 방식으로 설명됐거나, 코린토스 시민들에 의한 것이었다. 에우리피데스는 처음으로 메데아를 아이들을 직접 죽이는 인물로 만들었다.

 

그런데 에우리피데스가 이 충격적인 설정보다 더 충격적으로 만든 것이 있다. 메데아가 그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다. 메데아는 단번에 결심하지 않는다. 그녀의 독백은 어머니의 사랑과 복수의 열망 사이에서 찢기는 내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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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

"왜 내가 아버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두 배의 고통을 자신에게 입혀야 하는가?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 내 계획을 바꾸겠다. … 아니, 이아손이 자식들로 기뻐하는 것을 보겠다고?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들은 죽어야 한다. 그리고 죽인 것이 나이므로, 아무도 그들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겠다."

— Euripides, Medea, BC 431

이 독백이 무서운 이유는 메데아의 논리가 완벽하게 이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이아손이 아이들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을 볼 수 없다. 자식을 죽이는 것이 자식을 이아손의 곁에 남기는 것보다 낫다는 논리. 그 논리가 우리를 공포에 빠뜨리는 이유는 그것이 완전히 비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에우리피데스는 메데아를 단순한 악인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녀를 악인으로 만들기는 훨씬 쉬웠을 것이다. 대신 그는 그 행위에 이르는 감정의 경로를 낱낱이 보여줬다. 그래서 관객은 메데아를 혐오하면서도 이해하게 된다. 그 불편한 이해가 메데아를 2,400년 동안 살아있는 인물로 만든 것이다.

이방인과 여성 — 에우리피데스가 무대의 중심에 세운 사람들

메데아는 이중의 아웃사이더였다. 여성이었고, 이방인이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여성은 공적 삶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재산권도, 시민권도 없었다. 결혼은 아버지가 결정했고, 이혼은 남편만이 선언할 수 있었다. 이방인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테네 시민이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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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

 

메데아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짊어졌다. 그녀는 이아손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지만, 이아손이 더 유리한 결혼을 위해 그녀를 버렸을 때 그녀에게는 아무런 법적 보호도 없었다. 돌아갈 고향도 없었고, 의지할 가족도 없었다. 코린토스에서 추방되면 갈 곳이 없었다.

 

에우리피데스는 바로 이 구조적 불의를 메데아의 목소리로 직접 말하게 했다. 극 중 메데아의 대사는 당대 아테네 여성의 처지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우리 여성은 가장 불행한 존재입니다. 먼저 비싼 값을 치르고 남편을 사야 하고, 그 남편이 선인인지 악인인지는 살아봐야 압니다. …"

 

기원전 431년 아테네의 남성 관객들이 이 대사를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생각해보면, 에우리피데스가 3등을 받은 것이 그리 놀랍지 않다. 그는 자신의 드라마를 사회에 들이미는 거울로 사용했고, 그 거울 속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었다.

이아손 — 악당이 아닌 것이 더 무서운 이유

메데아를 이야기하면서 이아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에우리피데스의 이아손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드라마를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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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손과 메데아

 

이아손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왕의 딸과 결혼하는 것이 자신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메데아가 그리스에 살 수 있게 해줬고, 그리스 문명을 알게 해줬으며, 훌륭한 자식들을 낳았으니 이미 충분히 보상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 논리는 이기적이고 냉정하지만, 완전히 비이성적이지는 않다. 당시 그리스 사회의 기준에서는 오히려 상식적인 것에 가까웠다.

 

에우리피데스는 이아손을 악인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그저 당대의 가치관을 충실히 따르는 남자였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더 무섭다. 특별한 악의 없이도, 단지 사회의 규칙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삶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 에우리피데스가 드라마를 통해 던진 질문이었다.

생전의 패배, 사후의 영광

에우리피데스는 기원전 408년, 아테네를 떠났다. 마케도니아의 왕 아르켈라오스의 초청을 받아서였다. 그는 아테네 경연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당대 희극 작가들에게 끊임없이 패러디와 조롱의 대상이 됐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전통을 파괴하는 이단아로 반복해서 등장했다. 그 조롱 자체가 역설적으로 그가 얼마나 영향력 있는 존재였는지를 보여준다.

 

기원전 406년, 에우리피데스는 마케도니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해, 소포클레스도 세상을 떠났다. 아이스킬로스는 이미 50년 전에 없었다. 그리스 비극의 황금기가 한 해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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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

 

에우리피데스 사후, 그의 명성은 급격히 상승했다. 헬레니즘 시대에 그의 작품은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보다 훨씬 더 많이 읽히고 공연됐다. 로마의 세네카는 그의 비극들을 라틴어로 각색했고, 그 라틴어 번역이 르네상스 시대 유럽 극작가들에게 전달됐다. 셰익스피어, 라신, 괴테가 에우리피데스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20세기에는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메데아가 다시 주목받았다. 2,400년의 시간 동안 메데아는 매 시대가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다시 읽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리피데스를 "가장 비극적인 시인"이라고 불렀다. 소포클레스가 인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면, 에우리피데스는 인간이 실제로 어떠한지를 보여줬다는 의미였다. 그 "실제로 어떠한가" 속에는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질투, 분노, 자기파괴, 그리고 사랑하는 것을 죽이는 것도 포함됐다.

 

그것이 불편한 거울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을 제대로 보려면, 가끔은 그런 거울이 필요하다. 에우리피데스는 그 거울을 무대 위에 세운 최초의 극작가였다. 그리고 그 거울은 지금도 깨지지 않았다.

참고 및 인용

1. Britannica, Euripides — 생애, 심리적 사실주의, 작품 세계.

2. Grokipedia, Euripides — 심리적 사실주의의 혁신과 경연 기록.

3. Literariness.org, Analysis of Euripides' Medea — 메데아 플롯, 인물 분석, 에우리피데스의 신화 수정.

4. CROSSINGS Vol.10, Translating Medea's Infanticide (2019) — 메데아의 이방인 지위와 아테네 사회 구조 분석.

5. History and Culture, Euripides — 에우리피데스의 사회 비판과 헬레니즘 이후 영향.

6. Aristotle, Poetics (BC 335) — 에우리피데스를 "가장 비극적인 시인"으로 평가.

다음 편

드라마의 역사 007 — 아리스토파네스와 희극의 탄생. 비극이 인간의 고통을 다뤘다면, 희극은 그 고통을 웃음으로 뒤집었다. 고대 그리스 희극이 어떻게 탄생했고, 왜 그것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가장 날카로운 사회 비판의 도구가 됐는지로 들어간다.

드라마의 역사

고대 그리스의 제의에서 시작해 오늘날 OTT까지,
드라마라는 예술이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해왔는지를 깊이 있게 추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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