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3. 09:14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이기거나 죽거나 막무가내 선거 유세

경남FC 경기장에 난입한 자유한국당의 유세로 논란이 뜨거웠다. 하지만 선관위는 대수롭지 않다고 했고, 프로축구연맹은 겨우 2000만 원 벌금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내년 총선 수많은 입후보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경기장을 유세장으로 만들 가능성만 열어 놓게 되었다.

 

4.3 보궐선거가 이렇게 뜨거운 이유는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 중간고사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선점 효과와 함께 이를 통해 총선 분위기를 이끌고자 하는 정당 간의 치열한 경쟁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혼탁함은 총선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씁쓸하기만 하다.

"1938년 제3회 프랑스월드컵에 나간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은 경기 직전에 무솔리니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습니다. "이기거나, 죽거나!" 분명 농담은 아니었을 터이니 아니 농담이었다 하더라도… 한줄기 식은땀이 흘렀을 것 같습니다. 선수들은 경기 전 관중을 향해서 파시스트식 경례를 했고 거친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상대편의 선제골이 나오자 무솔리니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니 그라운드에 있던 이탈리아 선수들의 심정은 정말 죽을 지경이었겠지요. "월드컵의 최종 목적은 파시스트 스포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 - 조르조 바카로, 당시 이탈리아추국협회장

스포츠와 정치를 떼어놓을 수 있는가… 사실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2일 자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무솔리니의 사례를 통해 자한당의 축구장 난입 논란을 비꼬았다. 죽음이 거리에 내걸렸던 독재자 무솔리니. 그가 집권하던 시절 이탈리아의 모습은 참혹했다. 독일 나치와 유사하게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기에 여념이 없기도 했다.

 

월드컵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선수들에게 이기지 못하면 죽으라고 요구하는 이 독재자의 서슬 퍼런 행동에 선수들은 관중을 향해 파시스트식 경례를 했다. 죽지 않기 위해 거친 플레이를 해야 했던 이탈리아 축구. "월드컵의 최종 목적은 파시스트 스포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던 무솔리니 시대의 스포츠가 지난 주말에 재현되었다.

 

"정치적 선전의 본질이란, 가능한 많은 대중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서 그 메시지에 동의하게 한 다음에 그에 따른 정치적 이익을 얻는 것. 거칠게 표현하면 이 정도가 아닐까… 사람을 한꺼번에 많이 모으기로 스포츠 경기만 한 것이 드물기에…

스포츠는 늘 정치의 무대에 있어서 매혹적인 존재였습니다"

 

"이른바 스테이트 아마추어리즘은 그런 면에서 늘 도마 위에 올랐고, 5공 시절의 프로야구는 탄생의 배경으로 늘 정치가 운위 되기도 했습니다. 그곳 역시 사람이 많이 모인 축구장이었습니다. "경남FC가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길 바란다" - 자유한국당"

 

스포츠를 활용해 권력을 강화하고 체제를 선전한다는 스테이트 아마추어리즘(스포츠 국가주의)은 여전하다. 축구의 경우 국가 대항전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스포츠를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사용한 독재자가 있었다.

 

전두환의 3S 정책은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후 그가 취한 방식이었다. SPORT, SCREEN, SEX를 앞세운 전두환과 그 무리들의 행태가 무솔리니와 크게 다를 수 없다. 정치인들에게 스포츠 무대는 탐나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 말이다.

 

축구 경기장을 정쟁의 장으로 만든 자한당은 경남FC가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길 원한다고 했다. 실제 경남FC는 최고 수위의 징계가 아닌 벌금 2000만 원을 내는 것으로 징계가 끝났다. 프로축구연맹이 정치권 눈치보기를 했다는 의미다. 벌점 삭감도 없이 유야무야 끝나버린 논란은 그래서 내년 총선을 두렵게 만든다.

"그 축구장을 비집고 들어간 정치 때문에 축구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풍경… 다행히 그때와 차이가 있다면 오늘의 스포츠는 권력의 소유물이 아니라 시민의 소유물이라는 것. 어찌 보면 요즘 말로 소확행이나마 찾을 수 있는 곳이 축구장이요, 야구장이요, 배구장인데… 그 소확행마저 빼앗겼다는 분위기랄까…"

 

"주말을 관통해 오늘까지도 계속된 축구장의 논란은 달라진 세상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기거나 죽거나' 1938년 이탈리아 대표팀은 결국 우승했지만 그들에겐 박수 대신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그걸 보면, 80여 년 전의 프랑스 월드컵 관중이나 오늘의 관중이나 다를 것은 없습니다. 모두는 다만… 축구를 즐기고 싶다는 것…"

 

평범한 시민들의 작은 행복마저 짓밟으며 자신들의 권위주의만 앞세운 정치꾼들의 행태는 무엇을 위함인지 되묻게 된다. 국민을 앞세우지만 그들은 금배지를 다는 순간 국민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이기를 원하는 그들은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들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좀처럼 발전하지 못하는 정치. 그 정치꾼들은 다시 내년 금배지를 달기 위해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일 것이다. 한 차례 고개만 숙이면 모든 권력을 다 가질 수 있는 기괴한 이 판에서 그들은 다시 한번 국민들을 기만할 생각만 하고 있다. 결국 정치판을 바꾸는 것도 국민의 몫이라는 사실을 우린 알고 있다. 이제 실천할 때이다. 제대로 된 일꾼을 뽑는 것 역시 주인의 몫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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