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줘"라는 말의 힘
폭 30cm에 깊이가 100m는 되는 듯한 꼼짝도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 "도와줘"라는 말 한마디에 갑자기 폭이 1m는 넘게 넓어진 느낌이라는 동만은 행복했습니다. 자신과 은아가 느끼던 '알수없음'이 바로 도와달라는 신호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오랜 시간 알 수 없어 답답했던 그들은 그 신호의 명징함을 확인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동만은 처음 은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도와달라는 말의 가치를 확인했지만 그건 정작 은아만이 아니라 자신을 지옥과 같은 구렁텅이에서 건져냈습니다. 일상의 평범한 반복도 그 '도와줘'라는 말 하나에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말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기도 합니다.

동만의 꿈은 '늙어죽기'라고 합니다. 감독 데뷔를 하거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살아내고 늙어서 그렇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소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합니다. 그 어떤 가치와 상관없이,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동만과 은아가 '알수없음'이 떴던 이유도 비슷했습니다. 동만은 "형 때문에" 그랬고, 은아는 "엄마 때문에" 워치에 '알수없음'이 떴었습니다. 형이 진짜 대관령에 갔다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신기한 묘기를 부리고 퇴근했습니다. 그렇게 은아와 만난 동만은 길거리에 나온 귤을 보며 다시 '안온'을 언급합니다.
추운 겨울이 '안온'한 이유는 뭘까?라는 동만의 의문에 은아는 따뜻한 곳을 찾게 되니까라는 말로 정의했습니다. 이들의 사랑과 그리고 모두의 가치 있는 행위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핍은 곧 성장의 발판이 되는 것은 부족함을 알기에 노력하기 때문이죠. 그건 일도 사랑도 인간관계도 모두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바닥까지 추락해 본 이라면, 그리고 그곳에서 힘겹게 벗어나며 다시 올라서려 노력하는 이들은 동만이 던진 이 감정선을 이해할 겁니다. 최악에서 빠져나오면 느껴지는 감정은 세상 모든 게 하찮게 보이도록 한다는 겁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버텨내면 일상의 모든 것이 하찮게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고통의 근원이 엄마라는 은아는 날 낳은 여자는 참 나약했다며, 그래서 자신은 강해지고 싶다고 했습니다. 내가 누군지, 남편이 어떤 사람이든 강해지겠다는 은아에게 수줍게 '많이 부끄러운 사람'이라는 고백에 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조금 부끄럽고, 많이 사랑스러워요. 감독님은"이 말이 던지는 의미는 명확하죠. 둘 사이의 감정선이 단순한 것을 넘어 함께 늙어 죽어도 좋은 관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동만의 사랑가는 감동이었습니다. 은아를 사랑하는 동만은 자신을 마음껏 쓰라며, 그리고 버리고 떠나더라도 언제라도 올 수 있도록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기다리다 가끔 다른 여자를 만나더라도 언제든 부르면 가겠다고 합니다. 아니 은아가 원한다면 평생 혼자 살겠다고 합니다. 오라면 달려가는 '노예', 쭉 혼자 살아도 되는 '평생 대기조'가 되겠다는 동만의 사랑가는 애절했습니다.
칭찬에 춤추는 경세, 그리고 계급질
자의식이 넘치는 초딩 경세는 공동작가를 거부하다 첫 번째로 면접을 온 박정민에게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온갖 진상을 부리며 초딩스러운 행동을 하는데, 이걸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너무 재미있다며 최고라는 정민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공동작가는 죽어도 하지 않겠다던 경세는 칭찬 한마디에 이미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아지트에 등장한 오정희를 바라보는 동만의 시선은 은아와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만으로서는 막내로 영화 현장에 있던 시절 정희가 누군가를 시키지 않고 직접 커피를 뽑아 마시는 장면에 반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친구의 솔직한 발언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시선을 즐기는 오정희의 행동일 뿐이라는 것을 동만은 알지 못했습니다.

동만의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직선적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라면 뭐든 한다는 겁니다.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 자신에게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도 합니다. 오정희가 있는 룸에 들어가 자신이 영화 현장에서 처음 보며 느낀 감정들을 언급하며, 배우가 쓴 '육박'이라는 단어를 특별한 가치로 여기고 살고 있다는 말에 정희도 호기심을 느낍니다.
더욱 동만과 은아가 회오리바람을 보며 행복해하는 장면은 오정희 회사의 대표가 목격했습니다. 은아를 지켜보고 있던 대표는 동만을 귓속말로 정희에게 소개했습니다. 은아가 만나는 남자라는 말에 카메라는 동만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봅니다. 정희가 상대를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동만이 입봉도 하지 못한 존재이고, 그가 그만둔 이유가 세트장에 있던 화장실을 사용한 탓이란 너무 솔직한 고백에 진저리를 칩니다. 오정희에게 절대 다가오게 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 동만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 간의 계급을 나누는 행태는 최필름의 최 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 대표는 고 대표에게 돈 되는 영화를 만들라며 타박을 줍니다. 영화가 무슨 고상한 것이라고, 아마추어들은 돈 안 되는 영화를 하려 한다며, 이제는 프로가 되라고 합니다. 최 대표는 자신의 성공을 기준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자들은 한심하다고 여깁니다. 자신은 프로지만, 그렇지 못한 아마추어들을 비꼬고 조롱하는 재미로 사는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이 고졸인 은아의 능력이 아니꼽고 불쾌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은아를 멀리하려 하고 면박 주는 것을 재미로 생각하는 인간입니다. 고 대표는 최 대표가 간 후 술 한잔을 들이켜고는 '계급질'을 하고 있다며 분노합니다.
오정희가 동만을 바라보는 시선과 최 대표와 고 대표를 대하는 관계 속에는 명확한 '계급'이 있었습니다. 이 분류가 결말에서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그 과정을 이끄는 동력이 될 것인지 지켜보면 흥미로울 겁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고 고백들
동만은 아지트에 와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은아를 보고 술만 들이켜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보낸 시나리오 수정본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죠. 하지만 은아는 업무가 끝난 후 마치 중요한 의식을 치르듯 경건한 마음으로 동만의 수정본을 열독했습니다.
그가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던 것은 아지트에서 의도하지 않게 엄마와 마주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어머니이지만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는 아니 부르고 싶지 않은 상대를 본 후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동만이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홀로 술에 취한 동만의 우려에 은아는 "울었어요" 너무 좋아서. 그리고 안아주고 싶어서 왔는데 왜 그러냐며 반색합니다.

새로운 작품으로 인해 아지트에 모인 그들 중에는 미란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술자리를 하게 된 상황에서 미란은 은아에게 "사람을 착륙하게 하는 힘이 있다"라고 합니다. 예쁜 것을 알면서도 왜 옷을 그렇게 함부로 입냐는 타박에는 경계심이 존재했습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엄마인 정희의 방식대로라면 계급적으로 상대하지 말아야 할 존재지만 아우라는 특별했던 은아에 대한 미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착륙'은 정희의 '육박'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2차를 가자는 미란의 말에 OTT 피디는 슬그머니 피하려 하고, 이를 너무 익숙하게 봐온 경세는 도망치는 거라며 피디 차를 타고 이동하자고 이끕니다. 그리고 술에 취한 큰형 영수까지 끌고 2차를 간 그들은 한술 더 떠 바다까지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경세는 바닷가에선 '그리스인 조르바'지라고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춥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춤추는 장면을 함께 한 것이지만, 그 안에는 내용의 맥이 그들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OTT 피디가 툭 던진 말과도 이어지죠. "누가 누구 좋아하는 거예요"라며 화를 내는 피디는 이 나이 들어 2차를 가고 바닷가까지 달려오는 것은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럽게 침묵이 흐르는 상황에 미란은 대뜸 자신이 동만을 좋아한다고 고백합니다. 이 상황에 당황한 동만은 워치를 보여줍니다. '난감'이라는 단어가 뜬 워치를 보고 이게 뭐냐는 미란에게 동만은 자신은 은아를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힙니다. 이 상황이 주는 연결성과 관계성은 흥미롭습니다.

동만과 은아, 미란만이 아니라 미묘하게 감정선이 옮겨가는 경세의 마음도 잘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집에 돌아가 가짜로 자는 잠을 아내에게 들킨 경세는 마음속에서 이미 바람이 난 상태였습니다. 이런 그들의 불안정한 감정선은 겨울 블랙아이스에 차가 흔들리며 겨우 벼랑 끝에서 멈추는 장면으로 잘 설명되었습니다.
'벼랑' 끝에 멈춘 상황에서도 여전히 홀로 잘 자는 큰형. 그리고 이런 상황에 동만은 자신의 꿈은 늙어 죽는 것이라고 읊조리는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이 안에 많은 것들을 담고 있으니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싸우던 동만과 경세가 함께 앉아가는 것도 신기하지만 장난을 치는 사이로 발전한 것도 보기 좋았습니다.
"끝까지 절대로, 친한 척하지 마세요"
은아가 진행하던 작품에서 최 대표는 빠지라고 지시합니다. 200억이 들어가는 작품을 네가 어떻게 하냐며 빠지라고 합니다. 은아는 바로 오정희가 시켰냐고 묻습니다. 최 대표는 내 회사인데 누가 시켜서 이런 줄 아냐고 하지만, 지시를 받은 것이 맞습니다. 바로 연락이 왔고, 그렇게 은아와 정희는 독대하게 되었습니다.
수수한 은아와 달리, 화려하게 장식하고 은밀한 장소에서 기다리는 정희의 모습은 극단적으로 달랐습니다. 딸을 버린 것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은 채, 이름도 바꾸고 다른 사람으로 살기로 했으면 애초에 이 판에 들어오지 말았어야지 무슨 짓이냐고 따져 묻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 엄마에게 은아는 아빠 판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대접받지 못한 곳이라, 얼마나 대단한지 보려고 왔는데 엘리트 의식만 가득한 고루한 곳이라고 쏘아붙였습니다. 부모 자식임이 분명한 것은 정희도 지지 않고 공격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그런 남자를 만나냐고 지적합니다.
세상 모두를 '경멸'의 대상으로 보는 엄마는 여전히 불만이냐고 분노합니다. 이런 상황을 정리한 것은 대표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엑셀 파일에 보호자 이름이 '가수자'라고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워낙 특이해 찾으려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이름이라며 그곳에서 나오라고 합니다.
변시온의 이름을 추적하면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신축 오피스텔과 현금이 든 카드를 건넵니다. 완전하게 관계를 숨기기로 했으니, 그렇게 하라는 것이 정희의 입장입니다. 물론 그 안에는 엄마라는 감정도 조금은 있을 겁니다. 성공한 자신의 딸이 이제는 좀 더 안락하게 살기 바라는 마음. 물론 그 이면에는 오정희의 이기심이 더 크지만 말이죠.
거처를 옮기라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냐는 은아의 말에 부끄럽다는 정희는 아버지와 살고 있다면 상관없지만 지금 상황은 다르다고 합니다. 그 말에도 진실은 어느 정도 존재하지만, 이 모든 사실이 드러났을 때 자신이 받을 피해가 너무 크다는 점이 더 중요하게 이런 결정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은아는 더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못난 자식을 버린 엄마보다 잘난 자식에 들러붙는 엄마가 더 싫다는 말로 은아는 엄마와 관계에 쐐기를 박습니다. 자웅동체 언급까지 나왔다면 그건 끝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할 수 있는 모든 분노를 한 문장으로 만들어 자신을 버리고도 뻔뻔한 엄마를 향해 쏟아낸 은아는 코피도 함께 흘렸습니다.
압권, 박해영 작가의 필력
아르바이트를 나와 쏟아지는 눈을 보고 행복한 동만. 그런 동만에게 문자가 옵니다. "도와줘요"라는 은아의 문자를 보자마자 어쩔 줄 몰라하던 동만은 안에 이야기를 하지도, 옷을 입지도 못하고 출장뷔페 차량을 타고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전화를 받지 않은 은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반사로 튀어가는 동만은 이전에 헌사한 사랑가처럼 움직였습니다.
역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박해영 작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하고 명쾌합니다. 설정된 관계 속에서 이야기 전개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능력입니다. 그리고 오늘 회차에서는 감독의 섬세한 연출도 재미로 다가왔습니다.

모두 술을 함께 마시는 과정에서 카메라는 흔들리고, 초점도 흐릿합니다. 마치 이 모두가 술에 취한 것처럼 말이죠. 이는 왕가위 감독이 자주 사용하던 '스텝프린팅'을 오마주하기도 했습니다. 'Focus Out'을 통해 각각의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거나, 상황을 보다 정밀하게 설명하는 과정도 보기 좋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의 압권은 역시 박 작가의 필력입니다. 술에 취한 은아는 동만에게 지금 이 상황이 현재라고 보냐고 엉뚱한 이야기를 던집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죽기 직전 회상 속 망상이라고 합니다. 양자역학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은아와 이런 그의 주장에 호응하는 동만의 모습도 재미있었습니다. 여기에 필명을 '영실이'라고 정한 은아의 행동도 복선으로 작동합니다. 그게 동만 형제에게 얼마나 큰 선물일지는 곧 드러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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