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놀란 것이오? 당신이 구하고자 하는 조선은 누가 사는 것이오?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9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이 되어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유진이 내뱉은 이 발언은 <미스터 션샤인>의 핵심이다. 위태로운 조선을 구하겠다고 나섰지만 그렇게 구한 나라는 어떤 모습일지 정체성을 알기 어려운 애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니 말이다.
가베 같은 헛된 희망;
뮤직박스와 총, 그리고 애신을 둘러싼 세 남자의 변화 불꽃이 되어간다
불꽃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애신. 위태로운 조선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던진 애신은 그렇게 '불꽃'이 되고 싶었다. 조선 사대부 여성들이 꽃을 수놓으며 살던 것처럼 자신은 '불꽃'이라 말하는 애신은 단호했다. 양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면 우린 모두 의병이라는 애신의 말은 수많은 얼굴 없는 투사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죽는 것은 두려우나 자신은 선택했다며 화려하게 타오르다 죽겠다는 애신의 다짐에 유진도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두려움도 없이 열강들과 맞서고 있다. 조선과 멀어지고 싶었던 유진은 운명처럼 찾은 조선 땅에서 그렇게 증오했던 조선을 구하기 위해 나서게 되었다.
약방 창고에서 첫 포옹을 한 유진과 애신은 남장을 한 채 인력거를 타고 둘 만의 데이트를 했다. 글로리 호텔 방에서 뮤직박스를 들으며 애틋함을 나누던 두 사람의 사랑은 시작이지만 끝은 알 수 없게 한다. 그들에게 사랑은 최우선 순위가 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랑과 함께 조선을 구하는 일에 뛰어들 준비를 마친 유진에 이어 일 자객이 되어 조선으로 돌아온 백정의 아들 구동매도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백정의 아들이라며 비하하던 이완익과 선을 그어버린 동매는 의병을 만나며 충격을 받았다.
망하기를 원했던 조선. 이는 유진이나 동매에게는 동일한 희망이었다. 노비와 백정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서글픈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조선은 망해도 상관없는 그런 곳일 뿐이었다. 그런 조선을 살리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낱 지게꾼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 당황했다. 남의 목숨을 빼앗으며 살아가는 동매에게 의병의 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닌 그 일에 왜 목숨마저 내던지는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지게꾼을 구했다.
동매는 궁금했다. 조선 최고 사대부 영애씨가 남자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 채 의병 일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평생 고귀하게 살아갈 수도 있는 삶을 포기한 애신을 동매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구해준 애신.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못한 채 어린 백정의 아들 동매처럼 거칠기만 한 그는 그게 궁금했다.
눈매만 봐도 알아볼 수 있었던 애신. 다리를 쏜 동매는 힘들었다. 갑작스럽게 변할 수 없는 그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애신의 정혼자인 희성도 변하기 시작했다. 다른 두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았던 희성도 두 사람과 전혀 다르지만 같은 이유로 조선을 떠나 있었다.
지독할 정도로 수탈에만 집착했던 할아버지와 그에 동조하며 살아간 아버지. 그런 집안을 피해 스스로 룸펜이 되었단 희성을 변하기 만든 것도 애신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찾은 정혼자가 애신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왜 10년 동안 자신은 그렇게 룸펜으로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혼자와 결혼을 하고 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애신은 달랐다. 정혼을 깨자는 말만 하는 애신은 자신이 만난 그 어떤 여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꽃을 주고 다양한 방식으로 애신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하려 노력했지만, 정혼을 깨자는 이야기만 하는 그녀가 이상했다.
좀체 알 수가 없는 애신이 누구인지 궁금하던 희성은 양복점에서 그 힌트를 얻게 되었다. 정혼자가 자신을 위해 양복을 맞췄다고 하지만 자신의 체형보다 너무 작다. 애신에게는 조금 크지만 희성에게는 작은 그 양복의 정체가 수상했다. 그리고 정혼을 깨겠다고 호텔을 찾아온 그녀와 포켓볼을 치다 다리를 저는 모습도 이상했다.
술집에서 만난 동매와 유진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정혼자 애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혼란스럽기만 했던 그녀의 정체를 두 사람의 대화로 확인하게 되었다. 애신이 의병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희성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기력하게 삶을 포기하며 살았던 자신과 달리, 얼굴도 몰랐던 정혼자는 여성의 몸으로 나라를 구하겠다고 총을 잡았다. 애신이 왜 그토록 자신을 경멸하며 멀리하려 하는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스스로 의병의 삶을 선택한 애신에게 룸펜인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진과 동매는 알고 있다. 애신이 의병이고, 그런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의 선문답 같은 이야기 속에 명확한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다리를 저는 남자를 봤다며 이완익이라고 이야기하는 유진과 그와는 끝냈다는 동매의 말을 듣고 다리를 절며 나가는 희성의 모습은 처참해 보였다.
"다리 저는 놈은 이완익이어야지. 그렇게 결론이 나야지. 우리 둘다. 아니 우리 셋다"
유진이 동매에게 한 발언은 명확하다. 애신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공공의 적은 의병이 아닌 친일 매국노인 이완익이어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이다. 미국인 조선인, 일본인 조선인 잘생긴 조선인이라며 실없는 농담을 내던지고, 먼저 나서는 희성 역시 이미 한 패가 되어버렸다.
'보고싶었소'라는 글을 써서 영어로 뭐냐고 묻는 애신. 한글을 전혀 모르는 유진은 들켰다. 한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애신은 그저 그게 재미있었다. 들킨 후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유진은 그게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두 사람의 사랑은 그렇게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커가고 있었다.
외부대신 이세훈을 제거하자고 장 포수에게 제안하는 유진. 개인적 복수가 앞섰다. 하지만 매국노로 살아가는 이세훈은 제거할 이유와 명분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복수이지만 의병이나 대한제국 모두에게도 필요한 일이었다. 저잣거리에서 이세훈을 공격하는 유진. 피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 미치기 시작한 이세훈은 피할 수도 없는 덫에 빠져 있었다.
하야시 일본공사의 눈밖에 난 후 이완익에게 맞은 이세훈은 역관들에게도 외면 받았다. 그렇게 이완익에게 인사를 하러 간 이세훈은 자신과 함께 사는 후처를 선물로 건넨다. 그런 이세훈에게 무릎을 끓으라는 이완익. 조선을 팔고 싶어 안달이 난 이완익조차 증오하는 인물인 이세훈이다.
이완익 집에 고종이 찾는 문서를 넣어 역모죄로 처단한 유진은 의병의 삶이 무엇인지 조금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 복수만이 아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역적들을 처단하는 일에 대한 갈증은 그렇게 이세훈을 처단한 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유진의 삶은 고비를 맞이하게 된다.
자신이 노비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애신을 봤기 때문이다. 노비는 그저 양반의 물건이라는 말에 놀란 것인지 아니면 신분에 놀란 것이냐고 묻는 유진. 그런 유진의 말에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놀란 애신의 모습은 넘어서야 할 가장 큰 산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그저 열강들에 의해 수탈당하는 조국을 찾기 위해 의병이 되었지만, 정작 그렇게 되찾은 나라는 누구를 위한 나라냐는 유진의 질문에 애신은 즉답을 하지 못했다. 글로리 호텔 쿠도 히나가 애신에게 가베를 건네며 "나라를 팔아 부자가 되겠다는 불손한 희망. 애를 쓰면 나라가 안 팔리겠다는 안쓰런 희망. 정혼을 깰 수 있다는 나약한 희망"이라는 말이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처음에는 쓰지만 이후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한다는 가베. 심장을 뛰게 해서 잠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가베의 헛된 희망을 적절하게 인용하는 쿠도 히나는 그렇게 상대를 확인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을 돕는 쿠도 히나. 매국노 아비를 증오하는 딸이자 유진을 짝사랑하는 그녀가 본능적으로 알게 된 애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경계까지 더해졌다.
애신은 근본적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노비의 아들이다. 조선을 살리겠다고 의병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몸에 배인 신분제도마저 타파하자고 나서지는 않았다. 어쩌면 가장 버리기 힘든 습성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사실에 애신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애신의 수족이 되어 함께 의병 생활을 하는 행랑아범과 함안댁이 보여주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은 희성이 보여주는 농익은 모습은 <미스터 션샤인>을 더욱 탐스럽게 만들고 있다. 애신을 통해 변하게 된 세 남자. 유진으로 인해 근본적인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 애신. 총을 든 의병은 과연 희망가를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뮤직박스의 구슬픈 음악과 같아질까?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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