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13. 11:25

뿌리깊은 나무 3회-세종은 왜 집현전을 선택했을까?

선왕인 태종과 세종의 대립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르며 더욱 흥미롭게 합니다. 강력한 힘으로 조선을 지켜야 한다는 태종과 군주 혼자만의 나라가 아니라 만백성과 함께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세종의 정치 이념의 충돌은 곧 <뿌리깊은 나무>를 단단하게 뿌리내리게 하는 일등공신이기도 합니다.

세종은 군권을 버리고 집현전을 선택했다





태종이 자신에게 보내온 빈 찬합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 자결하라는 의미로 보낸 선물을 받고 세종이 생각해낸 것은 자신의 통치이념의 확립이었습니다. 그동안 강력한 힘으로 왕권을 강화해왔던 태종.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숙부와 주변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그에게 아버지 태종은 두려움의 존재였습니다.

권력을 쟁취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도와 조선을 만든 이들도 제거의 대상이고 친 형제들도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이 세종에게는 강력한 트라우마로 남겨졌을 듯합니다. 최근 종영된 <공주의 남자>가 세종의 아들인 수양이 자신의 형이 병사하자 어린 조카와 형제들, 그리고 수많은 공신들마저 제거하며 왕위를 차지하는 것과 유사한 모습이 태종에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그들의 트라우마는 정치라는 제도의 끔찍함을 보여주는 듯도 합니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형제자매도 필요 없는 냉혹한 현실. 그 현실 정치의 무서움은 강한 권력에 대한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것입니다. 선대와 후대가 자행해온 그 잔인한 권력 암투에서 세종이 두드러지게 돋보이는 것은 바로 그들과 달리, 자신의 왕권 강화보다 백성들을 위한 삶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태종과 세종의 경계를 명확하게 해주는 상징적인 장면을 등장시켜 그들의 대립을 명확하게 하는 장면은 여전히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무기인 병권을 시위의 도구로 사용하는 태종과 자신이 그런 아비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세종. 그런 세종이 화살이 빗발치는 현장을 흐트러짐 없이 나아가 태종 앞에 서는 장면은 은유적으로 둘의 관계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명확하게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조선 건립 26년 여전히 강력한 왕권을 통한 뿌리 내리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태종과 살육을 통한 정치는 이제 그만두고 천년을 이어갈 진정한 조선을 세우기 위해서는 다른 정치가 필요하다는 세종의 대립각은 그래서 흥미롭고 유쾌하기만 합니다. 

군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태종 앞에 무릎 꿇은 세종은 모든 권한을 태종에게 넘기겠다고 고합니다. 대신 자신의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세종과 그런 세종에게 다가가는 태종. 가장 중요한 진정성이 없다고 질책하자 역시 아버님이라며 세종 자신은 태종과는 다른 정치를 하겠다고 공헌합니다.  

자신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는 태종을 몰아세우며 모든 권한을 태종에게 물리며 그가 선택한 것은 집현전이었습니다. 유학자들과 공부나 하면서 아버지를 모시겠다는 세종의 선택은 태종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병권을 차지하려 할 줄 알았지만 세종이 선택한 것은 학자들과 토론을 즐기며 학문을 익히는 공간이 전부라는 사실에 실망도 함께 합니다. 대안없는 현실에서 자신처럼 강력한 왕이 되기를 바라는 태종과는 달리, 아버지와는 다른 조선을 만들겠다는 아들 세종의 대립은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정도전의 동생 정도광의 아들인 정기준과 밀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이야기의 중심축은 급격하게 그들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의 기틀을 다진 학자 정도전은 고려 시대 이성계를 만나 그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조선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학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도전이 태조에게 병권을 가지고 있던 왕자들을 지방으로 내려 보내려 하자 태종 이방원이 난을 일으켜 정도전을 살해하면서 그들의 악연은 시작되었습니다.

태종은 정도전 뿐 아니라 자신의 형제들까지 모두 죽이며 태조에 이어 왕이 되었고 그런 왕의 자리는 언제나 불안함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 그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정도전이 기치를 내세웠던 '밀본'이었습니다. 자신을 몰아내고 사대부가 나라를 차지해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에 동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양립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피의 숙청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대범하고 태종에게 반기를 든 정도광의 아들 정기준에 대한 기억은 세종에게도 강력한 트라우마로 남겨져 있습니다. 피로 만든 권력 속에서 세종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이야기하던 정기준.

어린 시절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은 그 인물인 정기준에 대한 태종과 세종의 입장은 명확하게 갈려있었습니다. 태종은 죽여야 하는 존재이고 세종은 함께 해야만 하는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이런 대립은 자연스럽게 충돌을 야기하고 이런 충돌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반촌에 맡겨진 채윤은 역사적 사실의 중심에 내던져지게 되고 중요한 순간 모든 운명의 키를 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의도성이 짙게 드리운 채윤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죽음에 처할 수도 있었던 정도광을 살리는 역할을 하지만, 역으로 그의 20년 숙원인 '밀본지서'를 잃어버리는 당혹스러움을 경험하게도 합니다.

'꺾어버리면 그만인 꽃은 군주이고 그 중심은 뿌리인 재상에 있다. 군주의 권력은 잠시일 뿐 사대부가 조선을 지탱하고 있으니 나무를 위해 뿌리 중의 뿌리인 밀본이 되어 사대부가 조선의 권력을 가져야 한다'

태종 이방원이 그토록 정도광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왕의 권리를 위협하고 사대부들이 권력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밀본'을 태종이 옹호할 이유가 없고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이라면 언제든지 피의 복수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태종에게 마지막 남은 사명은 정도광과 정기준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밀본지서vs복주머니' 서로에게 너무 간절한 것들을 나눠가지게 된 정도광과 채윤.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반촌에 숨어 '밀본'의 힘으로 반란을 꿈꾸는 정기준의 존재감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뿌리깊은 나무>의 이야기를 이끌어갈 중요한 존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된 3회는 이후 이야기가 어떤 틀 속에서 무엇을 지향할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셈입니다.

태종과 세종. 세종과 채윤, 정도광과 채윤, 정기준과 채윤, 세종과 소이, 소이와 채윤 등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들 속에 흥미로운 사건들이 배치되고 이를 풀어가는 과정은 <뿌리깊은 나무>를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도록 유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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