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15. 13:06

뿌리깊은 나무 21회-신세경과 장혁 죽음 암시? 반쪽짜리 해피엔딩?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백성들을 종속시키려는 이들과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는 이들의 대결은 흥미로울 수밖에는 없습니다. 더욱 그 가치의 충돌들이 바로 현재 우리의 모습들과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역병 같은 글자, 역병 같은 사랑이 바로 우리를 바꾸는 열정




역병 같은 글자를 막으려는 정기준과, 그런 역병 같은 글자를 퍼트리려는 세종의 대결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의지를 내보이기 위해 광평대군마저 시해했던 정기준으로서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승부라는 판단을 했고 세종 역시 여기에서 주춤거리면 한글은 사장되는 문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의 승부는 벼랑 끝에서 생사를 건 승부가 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반포를 막기 위한 밀본의 움직임이 급박해진 상황에서 궁 밖으로 한글을 전파하기 위한 전략 전술에 골몰하던 세종은 밀본이 상상하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을 강구해냅니다. 반포와 유포를 동시해 진행하는 양동작전은 적들의 눈을 돌리기 위해 조말생을 전면에 내세우고 궁녀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궁 밖으로 보내는 방법을 실행합니다. 조말생이라는 인물에 속아 세종의 작전대로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거지패와 아이들에게 한글 노래를 부르게 하고 무당이 되어 백성들에게 한글을 익히도록 하려는 궁녀들의 모습은 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소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윤평이 아니었다면 정기준은 궁녀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이번 세종의 반격은 그를 위기로 몰아넣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정기준으로서는 무조건 궁녀들을 찾아내고 한글 해례본을 찾아 폐기하는 것만이 지상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급박하게 움직이는 동안에도 세종의 양면 작전은 더욱 긴밀하게 움직이며 밀본 자체를 궁지로 몰아넣기 시작했습니다.

밀본을 인정하고 그들을 정당한 분당으로 인정하겠다는 발언은 밀본 내부의 균열을 이끌어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대신들을 모아놓고 세종은 자신이 몇몇 학자들과 함께 한글을 만든 것에 대해 사죄를 하며 분위기를 이끌고는 곧바로 한글은 분명 반포될 것이라는 선언을 합니다. 뒤이어 밀본을 인정하고 그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겠다고 밝힙니다.

학자들을 죽이고 광평대군까지 시해한 것은 밀본이 아니라 정기준과 윤평일 뿐이라며, 그들을 살인죄로 처벌하겠지만 밀본 자체를 비판하고 탄압할 이유는 없다는 세종의 발언은 효과적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로 뜻을 모아 일을 해나갈 수가 없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밀본을 흔들 수 있는 이 발언은 정기준을 고립시키고 밀본을 지상으로 끄집어 올림으로서 공론화시켜버려 더 이상 두려움의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세종대왕이 위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신들 앞에 자신이 행한 잘못을 시인하고 머리를 숙여 사죄를 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존재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신분이 명확한 사회에서 아랫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은 대단한 파격이 아닐 수 없으니 말입니다.

밀본이라 의심되는 이신적과 심종수를 흔들기 시작합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많은 이신적에게는 영의정 자리를 건네고, 심종수에게는 직접적으로 밀본이 아니냐는 직언을 하며 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밀본 원들을 흔들어 놓기 시작합니다. 세종의 전략은 완벽하게 들어맞아 정기준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신적과 심종수마저 서로를 의심하게 되면서 밀본은 뿌리 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심종수는 자신이 직접 밀본의 본원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품고 직접 궁녀들을 찾아 나섰고 이런 그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정기준과 대립할 수밖에 없도록 합니다. 심종수의 속마음을 알게 된 이신적은 태평관에 도움을 청해 창위가 움직이도록 만듭니다. 한글 해례본을 찾기 위한 무리들의 움직임은 본격적으로 이어지고 그들의 관심은 궁녀들로 향합니다.

한글 반포가 끝나는 날 소이를 데리고 떠나도 좋다는 세종의 명을 받고 행복하기만 한 채윤은 행복하기만 합니다.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삶이 마침내 눈앞에 다가왔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한글 반포가 특별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억울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채윤이 자신의 분노를 삭이고 왕에 대한 복수를 접을 수 있었던 것도 자신과 같은 백성을 위한 왕의 본심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무지를 깨우치게 해서 스스로 양반들과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세종의 의지는 당연하게도 채윤의 사명이 되었고 여기에 소이와의 행복한 삶까지 덤으로 주어진다니 그에게는 이보다 신명나는 일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소이 역시 어린 시절부터 따르던 오빠가 죽은 줄 알았지만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오빠와 재회를 하면서 닫혔던 말문이 열렸고 그런 오빠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하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쉽게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 없었던 소이에게는 멈출 수 없는 일이 존재했습니다. 세종의 최측근으로 한글을 만드는 전 과정을 함께 했던 그녀로서는 세종 못지않은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평생 꿈꾸어왔던 채윤과의 행복한 삶마저 버려야 할 정도로 그녀가 한글 반포에 사명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세종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억울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백성들이 자신의 글을 가지게 되면서 스스로 진화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양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 억울하게 죽어갈 이유가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녀에게 한글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가치였습니다.

탁월한 기억력으로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소이. 그런 소이는 가장 위급한 순간 한글 해례본을 통 채로 외웠습니다. 해례본만 찾아 없애면 한글은 세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적들이 해례본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것은 그 해례본이 바로 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함께 한 나인들과 한글 창제에 참여한 이들을 제외하면 알 수 없는 사실은 얼마남지 않은 <뿌리깊은 나무>를 흥미롭게 만듭니다.

한글 해례본이 소이가 있는 창암골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곳으로 향하는 창위 견적희와 심종수, 그들을 은밀히 지켜보던 윤평과 뒤늦게 한글 해례본이 소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향해 가는 채윤까지 마지막을 향해가는 '뿌나'는 모든 이들이 소이 곁으로 모이게 되면서 격렬한 최후를 엿보게 합니다.

심종수와 윤평, 윤평과 견적희, 견적희와 심종수, 그리고 채윤의 복잡한 대립각과 스승 이방지를 죽인 개파이와의 숙명적인 대결 등 그들의 마지막 숙명적인 승부는 이제 시작하려합니다. 한글을 막고자 하는 이들과 한글을 통해 기득권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대립은 결과적으로 해례본 자체인 소이에게 집중될 수밖에는 없고 이런 상황은 긴박한 상황을 연출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한글이 반포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기에 소이가 중간에 죽을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대립 속에서 채윤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은 그들의 행복이 너무 일찍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행복함이 전면에 깔리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미래가 엿보이는 순간 다가온 불행은 항상 슬픈 결말로 이어지고는 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채윤과 소이가 임무를 완수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될지 아니면 채윤을 잃은 소이가 슬픔에 눈물을 흘리며 마무리가 될지 마지막 순간까지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뿌리깊은 나무>는 역시 명품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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