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29. 13:50

송곳 11회-알에서 깨어난 이수인의 한 마디, 분노는 세상을 지배한다

분노할 수밖에 없는 세상. 그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들이 필요하다. 철저하게 현실에 묻어 자신을 투명인간화 하거나 적극적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물론 그 중간 어디에서 적당하게 시류에 편승해 이리저리 휩쓸리는 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분노하지 않는 삶은 결코 그 무엇도 얻을 수 없음을 우리는 역사로 알고 있다. 

 

알에서 깨어난 이수인;

분노하라고 외쳤던 스테판 에셀, 그는 떠났지만 세상은 분노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95세로 스테판 에셀은 2013년 2월 27일 숨졌다.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그는 노년의 나이에도 젊은이들에게 분노하라고 했다. 분노하지 않는 것은 유죄일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분노하지 않고 침묵하는 동안 괴물들은 더욱 거대하고 강력한 괴물이 될 수밖에 없음을 말이다. 

 

 

푸르미 마트에서 벌어진 노동자의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가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경악스럽다. 여당 대표라는 자가 노조만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벌써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라는 막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 것이 바로 2015년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차기 대선을 노리는 자가 노조의 부당함을 외치고 노동악법을 통해 노동자를 사지로 몰아넣는 이 한심한 현실은 <송곳>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고 있다. 그가 지적한 선진국은 모두가 노조원이라는 사실을 설마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노사 관계는 그저 꾸며낸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웹툰은 그저 손쉽게 보는 만화라는 인식을 바꿔놓았다.

 

<미생>과 함께 우리의 삶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는 <송곳>은 제목처럼 날카롭기만 하다. 노조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이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는 노조에 가입하면서 역할과 책임을 배워가며 느끼는 힘겨운 투쟁의 역사는 곧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조는 부당한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권력들과 언론들은 정신없이 노조를 부당하다고 몰아붙인다. 노조는 조폭보다 더 나쁜 존재로 인식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노조는 죽창을 들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세상을 지탱하는 공권력을 파괴하는 공공의 적 정도로 취급하기 일쑤다.

 

드라마 <송곳>은 노조란 그런 무서운 존재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본점 사무국장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답답하면서도 뭉클하게 다가왔다. 이 지독한 현실에서 가장 마지막에 의지하고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노동조합이었다고 말이다.

 

남편을 잃고 힘겹게 살아가야만 했던 그녀는 자격증으로 인해 마트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녀는 악착같이 일을 했다. 조금만 잘못해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도 그들은 그곳에서 사라져야만 했다. 아무런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그 노동자들은 그렇게 일자리에서 떠나야만 했다.

 

 

자신도 그곳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그녀는 큰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점심 역시 화장실에서 빵으로 급하게 때우며 일에만 집중했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배신 외에는 없었다. 그런 그녀를 지켜준 마지막은 결국 노조였다.

 

남편도 없는 그녀에게 노조는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 희망을 위해 그녀는 노력했지만 여전히 현실은 팍팍하고 힘들기만 하다. 그렇게 버텨왔지만 본점은 임금협상에서 겨우 1% 인상안을 내놓고도 무너졌다. 사측은 그런 노조의 요구도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파업을 조장하고 이를 통해 파업에 나선 모든 이들을 붕괴시키면 간단하게 노조를 파괴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조차 부당하다고 여기는 사측의 행동은 결국 그들이 노동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노조는 사측을 붕괴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다. 모두 각자의 권리가 있듯 노동자 역시 자신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받아야 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 받아야 한다.

 

경제가 위축되고 힘들다고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재벌들은 엄청난 자산 축적에 여념이 없다. 경제는 어렵지만 재벌들의 주머니는 모두 채워낼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생은 뒷전이고 위정자들이 나서서 재벌들의 앞잡이가 되어 노동자들을 사측이 원하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 주는 현실은 두렵기까지 하다. 그들에게 국민들은 그저 투표소에서 자신들을 찍어주는 무능하고 한심한 존재이자 재벌들의 일터에서 뼈 빠지게 일하며 터무니없는 임금으로 노비처럼 취급하는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파업을 준비하며 이수인은 구고신이 아닌 좀 더 강경하고 체계적인 주 소장을 찾는다. 구 소장과는 전혀 다른 주 소장은 철저하게 파업을 위한 파업에 집중한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고 큰 흐름 속에서 푸르미 마트 일동점도 그 안에 존재한다고 믿는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한 노조를 움직이는 존재로 다가온다.

 

푸르미 마트가 총파업을 앞둔 상황에서 논란은 더욱 심화된다. 뒤늦게 노조에 참여한 이들과 기존 노조원들 사이의 균열은 혼란을 이끌었다. 노노갈등은 당연하다. 그런 노노갈등은 당연하게도 사측이 노동자들을 붕괴시키는 방식 중 하나이다. 철저하게 그들을 파괴하는 확실한 방법은 서로가 싸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과 지위로 흔들고 그들이 서로 싸우고 적이 되는 것이 곧 성공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파괴하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노동자들을 파트너라 생각하지 않고 '종'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함부로 대해도 되는 종들이 함께 뭉쳐 자신들과 동등한 위치에 선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온갖 부당함으로 무장한 그들은 노조의 결성은 곧 자신들의 그 모든 부도덕함이 약점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건강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노가 있으면 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긴장하며 올바른 기업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노조는 당연한 결과다.

 

파업 첫날 대체 노동자로 채워 놓은 마트. 그리고 분노해 대체 노동자들에게 분노를 폭발하는 노조원들. 이를 막아보려 노력해보는 이수인이지만 역부족이다. 착해서는 결코 이 상황을 제대로 해쳐나갈 수 없다는 현실 속에서 이수인이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여 과장에게 귓속말로 욕을 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이수인은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까지 걱정하는 존재였다. 구고신보다 더 독하게 타인을 존중하던 이수인이 대립 속에서 여 과장에서 귓속말이기는 하지만 기겁할 정도로 욕을 쏟아내는 모습은 분명한 변화다. 그렇게 그는 변신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결코 그 진흙탕 싸움에서 이길 수 없음을 그도 느꼈기 때문이다.

 

군 시절 자신을 길들이려는 병사들과 싸우던 그는 착각을 했었다. 어느 순간 자신에게 찬사를 보내고 군내 문제도 모두 사라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너무 변한 모습에 이수인은 행복했다. 자신의 진심이 그렇게 통하게 되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이수인이 다른 부대로 옮겨가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사병 하나는 귓속말로 그에게 진실을 밝혔다. "군내 폭력이 모두 사라진 걸로 생각했죠. 밤마다 엄청 맞았어요" 라는 말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강경하게 나가면 숨죽이고 있지만 그 본질 자체가 변할 수 없음을 이수인은 군 시절 충분히 채득했었기 때문이다. 

 

준철을 괴롭히는 새로운 과장을 때려버린 강민은 즉시 해고당했다. 해고까지 당할 사유는 아니었지만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노골적인 행동의 결과는 일동점 지부장인 주 주임의 해고는 당연했다. 그를 구원하겠다는 상황을 극구 반대하는 주 주임의 생각은 간단하고 단순했다. 자신을 구하려는 순간 다른 이들이 사측에 의해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노갈등을 부추기고 노조원과 비조원 사이를 단절시키는 현장 속에서 이수인의 고민과 고통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비조원들도 노동자다. 그들이라고 다를 수는 없다. 이수인이 전에 이야기를 했듯 노조원과 비노조원 구분 없이 그들은 같은 노동자일 뿐이다.

 

노조에 가입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운 그들을 외면하고 비난하는 순간 그들은 더는 갈 곳이 없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결국 노조를 고립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들은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없어질 수밖에 없다.

 

노조에 가입하고 노조원으로서 자리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사측도 모자라 모든 권력을 짊어진 이들조차 노동자들을 탄압하기에 여념이 없는 현실은 처참하다. 웹툰에서도 마무리하지 못한 <송곳>은 12회 종영된다. 그리고 그 귀결점은 현재 진행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재 살아가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참여야 말로 평화롭게 저항하는 노하우다"

 

93세의 나이로 숨진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는 책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분노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2011년 경향신문은 프랑스 현지에서 그와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인터뷰에서 스테판 에셀은 시민들의 참여와 관련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가장 평화롭게 저항하는 노하우가 바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는 발언은 중요하게 다가온다. 대한민국이 민주화가 된 것은 바로 시민들이 거리에 나오면서부터였다.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민주화를 외치며 대한민국은 독재를 걷어내고 힘겹게 민주사회를 만들었다.

 

송곳 같은 인간들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송곳 같은 인간들이 곧 세상을 정상적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지금 이 시점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한 회 100분의 이야기만 남겨놓은 <송곳>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남길지 기대된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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