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28. 10:05

JTBC 뉴스룸-우병우 조윤선 엇갈린 판결, 박정희 박근혜 부녀와 일본

청와대와 국정원이 나서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는 철저하게 졸속으로 이뤄진 합의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일 위안부 TF 조사 발표'는 많은 국민들이 이미 예견했듯 이면 합의가 있었다. 피해자 중심, 국민 중심이 아닌 정부 중심으로 이뤄진 이 합의는 당장 폐기가 답이다. 

박정희 박근혜의 일본;
우병우 구속적부심 기각 조윤선 재구속 실패, 졸속 합의 이끈 한심한 박씨 일가



'한일 위안부 TF 조사 발표'는 충격이었다.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이 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강행 지시로 일본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인 '한일 위안부 합의'는 철저하게 일본을 위한 합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박근혜는 왜 그토록 일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왔는지 명확하지 않다. 친일과 친북의 역사를 써온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은 역시 변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자질이 안 되는 자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한일 관계와 관련한 외부의 압박은 한미일 군사 동맹을 통해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 대항하는 구상에서 나온 결과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의 요구는 한국과 일본이 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는 서둘러 합의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전승절 축하를 하러 나섰던 박근혜는 이후 미국과 일본의 군사 동맹에 적극 합류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였다. 갈지자 행보는 결과적으로 외교 모두를 엉망으로 만드는 이유로 다가온다. 그 과정에서 무슨 판단을 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일본군이 되고 싶어 영혼까지 팔았던 박정희. 이후 친북 활동을 하다,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후에는 남과 북이 동일한 독재의 길을 함께 걸었던 기이한 자들의 영혼은 박근혜를 통해 이식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 대사 출신인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이 나서 합의를 시작했다. 이후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이병기가 모두 맡아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박근혜의 요구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 '한일 위안부 합의'라는 것은 명확하다. 당사자인 위안부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하지도 않은 채 오직 자신의 판단으로 위안부 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한 박근혜는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물론 그런 인지 능력도 없다는 점이 문제이기는 하다. 


'성노예'라는 표현도 사용하지 말고, 평화의 소녀상은 철거하고 해외 건립에 한국 정부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굴욕적인 합의를 한 박근헤 정권. 일본이 내놓은 10억엔 역시 그 어떤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 금액이다. 거지에게 동냥하듯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10억엔을 주고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갔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런 자들이 대한민국의 최종 결정권자였다. 그리고 그들과 한 몸이었던 자유한국당은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자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주창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즉각 폐기되어야 하고 새로운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수된 금품의 뇌물성 등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수사 및 별건 재판의 진행 결과 등에 비춰 도망 및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구속된 우병우는 자신이 부당하게 구속되었다며 구속 적부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이후 조윤선에 대한 재구속 심사는 기각되었다. '기각요정'으로 불리는 오민석 판사가 맡으며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우병우부터 주요 범죄자에 대해 모두 구속 기각을 해왔던 오 판사는 그렇게 조윤선을 구속시킬 수 없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주장을 우병우가 자신의 구속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오 판사는 동일한 이유를 들어 조윤선에게 구속시킬 수 없다고 했다. 판사들은 동일한 문구를 카피하듯 사용하며 이를 근거로 구속과 불구속을 결정하고 있다. 동일한 이유를 들어 엇갈리는 판단으로 인해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어가고 있다.  


김관진이 '총선 작전'을 통해 직접 총선에 개입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런 김관진을 사법부는 풀어줬다. 앞선 이유 때문이다.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 식의 주장이라면 대한민국 범죄자 중 구속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 자는 없다. 모두가 자기 주장이 존재하니 말이다. 이런 판사들의 정치적인 판단으로 보이는 행동들은 결국 사법부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1964년의 초여름. 저는 제가 살던 서울 필동의 대한극장 앞 네거리에 서있었습니다. 우리 나이로 아홉 살. 제 앞에서 벌어진 풍경은 연기 자욱한 최루탄과 돌팔매질을 하던 대학생들, 그해 6월 3일을 기점으로 일어난 6·3 항쟁의 시작이었지요. 아시는 것처럼 6·3은 당시 정부의 굴욕적인 한일 기본조약 체결에 반대한 운동이었습니다"


"일본의 침략 사실 인정과 가해 사실에 대한 진정한 사죄가 선행되지 않았고, 청구권 문제 등에서 한국 측의 지나친 양보가 국내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지만, 박정희 정부는 국가 재건에 필요한 돈을 일본으로부터 하루 속히 받아낸다는 명분으로 한일 협정을 밀어붙였습니다"


"사실 이 한일 기본조약의 태동은 그보다 2년 전인 1962년, 그러니까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킨 다음 해, 즉, 공화당 정권이 탄생하기도 전에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일본 외상 간에 밀실 협의에서 나온 이른바 김종필-오히라 메모.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의 얼개가 그곳에 이미 들어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과거사와 관련된 한일 관계의 모든 불협화음은 바로 그 메모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러나 당시 한일 협정은 언론에 의해 정당화 되었고, 김종필-오히라 메모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영웅담처럼 미화되고는 했습니다"


""36세의 김종필이 만난 청구권 협상 상대는 일본 외상 오히라 마사요시. 52세의 노련한 정치인. JP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처럼 두견새를 함께 달래서 울려보자"고 했다. 오히라는 "그 고사를 어떻게 아느냐"고 감탄했다…" (2015년 5월 1일 중앙일보/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결국 김종필은 이렇게 결심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완용이 되겠다" 지금부터는 그로부터 반세기도 훨씬 더 넘겨서 나타난 데자뷰입니다. 대통령은 아버지에서 딸로 바뀌었고, 협상의 주인공은 역시 정보기관장인 이병기 국정원장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 성노예 표현 불가, 소녀상 철거에 협조, 10억 엔의 위로금, 그리고 결국 위안부 문제의 불가역적 해결… 밀실 협상의 결과였습니다"


"53년 전 자신의 집을 찾아온 김종필을 맞이하기 위해 기모노 바람으로 뛰어 나왔다는 자민당 부총재를 흉내 낼 필요도 없이 일본은 조급증에 젖은 한국 외교를 상대로 또 한 번 승리를 거둔 것일까…그 옛날 6·3항쟁의 최루탄과 돌팔매 시위의 한 가운데에 멋 모르고 서있었던 아홉 살의 소년이 어느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50여 년 후에도 그럽니까, 거기는?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으면 뭔가 많이 변했겠죠?" 오늘(27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사족입니다. 저는 2008년에 일본의 방위대신이었던 이시바 시게루와 인터뷰한 바 있습니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일본이 자신을 정당화 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 내내 저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그래서일까…. 저는, 그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은 박정희와 박근혜의 이야기다. 독재자인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순간 이미 예고된 참사는 어김없이 발생했다.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자가 부당한 방법으로 대통령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은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손석희 앵커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한일 합의'의 평행이론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보고 자란 것이 박정희가 전부인 박근혜에게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박근혜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 역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스스로 밝힌 변이기도 했다. 그런 박근혜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박근혜 망령을 불러들이고, 이를 부추긴 이명박과 잔당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범죄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는 같은 당이 권력을 이어가야만 했다. 그렇게 국정원과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선거 개입을 했다. 부당한 방식으로 대통령이 된 박근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렇게 국정 농단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이어지고 있는 적폐 청산을 통해 드러난 사실들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국민의 최소한 절반 이상은 이런 상황들을 의심해왔다. 그리고 그게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6.3 한일 기본조약은 박정희가 쿠테타로 권력을 잡은 직후 시작되었고, 김종필이 모든 것을 주도했다. 


굴욕의 역사는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를 통해 다시 한 번 재현되었다. 그 아버지의 그 딸이라는 참혹한 현실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52년 전 김종필을 대신해 이병기가 그 역할을 한 '한일 위안부 합의'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굴욕적인 합의로 귀결되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일본은 노골적으로 협박을 하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을 얼마나 우습게 알면 엉망인 합의에 대해 협박을 하는 일본의 작태만 봐도 이 합의가 얼마나 졸속으로 이뤄졌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박씨 일가는 국가를 위한다고 하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안위를 위해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자들이 다시는 이 땅에 나오지 않도록 적폐 청산은 철저하고 꼼꼼하게 이뤄져야만 한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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