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13. 10:56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궁중족발 젠틀리피케이션 기간이 아닌 관점의 문제다

백년가게가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이제는 모두가 안다. 건물주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을 하고 의지가 있어도 절대 대한민국에서는 백년가게가 나올 수 없다. 신보다 위에 있다는 '건물주'는 흡혈귀나 마찬가지다. 모든 건물주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건물주는 탐욕스럽다.


젠틀리피케이션 관점 문제;

백년가게를 위한 제도적 변화 늦었지만 절실하다



건물주가 되는 것이 꿈인 이들이 많다. 그럴 듯한 직업이나 가치는 상관없다. 그저 건물주가 되어 편하게 세나 받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방송에서도 공공연하게 건물주가 되고 싶다 토로하는 연예인들도 많다. 그만큼 돈을 숭배하는 세상에서 건물주는 절대적 위치에 올라섰다는 의미가 된다.


재벌은 태어나는 순간 정해진다. 재벌가 피가 아니면 재벌은 될 수 없다. 그렇다고 기업을 일궈서 스스로 회장이 되는 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다. 대기업은 기본적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다. 게임 분야가 약진하며 준재벌급으로 성장한 것은 재벌가들이 게임 산업에 무지했기 때문일 뿐이다.


모든 것이 막힌 이들에게 막연한 꿈은 건물 하나 사서 편안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런 욕망을 탓할 수는 없다. 인간의 삶이란 그러니 말이다. 문제는 그렇게 건물주가 되면 그는 탐욕스러운 괴물이 되는 것일까?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괴물이 건물주가 되어 탐욕을 마음껏 부리는 경우는 너무 쉽게 본다.


서울에서 시작된 새로운 도시 재건 프로젝트에서 실제 이득을 본 것은 메뚜기 건물주들이다. 그들이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많은 건물들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를 수백 채 가진 자가 대단한 능력자처럼 보이지만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결과물일 뿐이다. 


아파트 한 채를 은행 담보 잡아 구매한 후 이를 무한 반복해서 늘리는 방식을 택한다. 그렇게 하면 50채가 되고 100채가 되는 것이 결코 꿈은 아니다. 오직 이 방법으로 아파트 수를 늘리고 전세 혹은 월세를 받아 은행 이자를 충당하며 버티기에 들어가 집값이 오르는 것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투기 목적으로 다주택자가 된 자들이 현 정부들어 몰락 위기까지 처했다. 정부 정책으로 다주택자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은행 이자 상승하며 더는 확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재미를 봤던 자들은 이미 상가를 동일한 방식으로 구매하며 돈을 벌고 있다. 


이자 놀이에만 집착한 시중 은행들은 도시 재건 프로젝트에 맞춰 건물주 만들기 계획까지 짠듯하다. 궁중족발 사태를 보면 더욱 명료해진다. 건물주는 40억이 넘는 건물을 사며 90% 이상을 은행에서 빌려 샀다. 기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불법이 아니라 강변한다.


고객들을 속여 이자를 더 받고 그렇게 부당한 방식으로 매년 엄청난 이익으로 자축을 하는 은행들이 나서서 건물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신들은 건물을 구매하도록 돕고 그 엄청난 이자를 받아 실속만 챙기만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게 감당이 안 되는 빚으로 건물을 산 자는 그에 상응하는 임대료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궁중족발 사태도 그런 메뚜기 건물주의 갑질이 낳은 결과다. 297만원이던 월세가 갑자기 1200만원으로 400% 인상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가야 한다. 하지만 시설 투자 등 들인 비용이 막대하고 찾아주는 단골들이 많은 상황에서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삶의 터전을 한순간 내줘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건물주는 강제 집행을 12번이나 감행했다. 그 과정에서 손가락이 절단 직전까지 이르는 부상까지 입었다. 하지만 법은 건물주의 편에 서 있었다. 5년 동안 한 곳에서 장사를 했으니 건물주가 아무런 조건 없이 내보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서촌은 갑자기 떴다. 서울의 다양한 동네들이 뜨고 있듯 서촌도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원래 있던 이들은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메뚜기 건물주들이 늘어나면서 월세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그렇게 감당 가능한 이들이 그곳을 채운다.


원래 마을을 지키던 원주민들과 오랜 세월 장사를 하던 이들은 그렇게 삶의 터전을 내줘야만 한다. 그런 일들의 반복이 서울에서만 매년 엄청난 수로 이어지고 있다. 열심히 일해 유명해지면 그래서 쫓겨나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에는 백년가게들이 즐비하다. 대를 이어 가게를 이어가는 일본의 모습을 보며 우리도 백년가게를 만들자는 이야기들도 나온다. 그저 자식들이 대를 이어지기만 하면 백년가게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는 듯하다. 본질적으로 100년 동안 그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보다 더 특별한 존재라는 건물주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100년 전 일본 역시 현재의 한국처럼 건물주의 횡포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당시 일본 신문 내용을 보면 현재 우리가 사악한 건물주들에게 느끼는 감정과 동일하다. 인간은 시간이 흐른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고 나라가 다르다고 달라지지도 않는다.


건물주 횡포가 심하던 일본이 변한 것은 우리의 건물임대차계약이 새롭게 만들어지며 사라졌다고 한다. 일본의 상가법의 핵심은 건물주라는 이유로 함부로 임차인들을 내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내보내야 한다면 건물주가 합리적 이유를 밝히고 증명해야 한다.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사태를 풀어가는 방법의 핵심은 기간보다는 관점이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5년으로 기간을 늘렸지만 그건 답이 아니다. 궁중족발의 경우만 봐도 명확하다.


건물주는 은행을 업고 건물을 샀다. 그 건물을 산 기간이 바로 임차인 계약이 끝나는 시점이었다. 이는 임차인들을 마음대로 쫓아내도 좋기 때문이다. 목적은 명확하다. 단기간에 엄청난 돈을 버는 것 외에는 없다. 건물 투기를 통해 큰 돈을 벌고 싶은 욕망 외에는 없다는 의미다.   


기간을 10년으로 늘린다고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다. 10년 동안 한 곳에서 장사를 하게 되면 그 애착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쉽게 나가기 어려워지는 이유들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기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관점의 문제다. 일본은 이를 을은 임차인이 아닌 갑인 건물주에게 무게 중심을 뒀다.


건물주가 을인 임차인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저 임대료 올리기 위해 임차인을 내보내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건물주는 함부로 임차인을 내보낼 수 없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한 '궁중족발'과 같은 사태는 무한 반복하듯 일어날 수밖에 없다. 우린 공멸과 공생의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다. 


이제 정치인들이 풀어야 한다. 건물주의 편에 서 그들의 배만 불리는 정책이 아니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자 장사에만 집착하는 은행 역시 변해야 한다. 몸은 비대 해졌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건물주'를 신 이상으로 만들고 있는 은행의 대출 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돈을 숭배하는 탐욕의 시대 우리는 어떤 길을 모색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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