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5. 09:20

VR 휴먼다큐-용균이를 만났다, 여전히 부끄러운 현실 변할 수 있을까?

김용균은 행복했다. 비록 원하던 일자리는 아니었지만, 부모님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하기만 했다. 첫 출근을 앞두고 새로 산 양복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부리던 용균이는 그렇게 행복할 줄 알았다.

 

참혹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비록 힘겨운 일이지만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렇지만 그 행복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기본적인 원칙도 어기며 노동자들을 피만 빨던 한국서부발전 태안 화력 발전소는 그렇게 젊은 노동자를 집어삼켰다.

용균이가 가고 난 후에도 유사한 사고로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들 화력 발전소에 미치는 영향은 전무했다. 사업주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그렇다고 발전소가 멈추거나 엄청난 벌금을 무는 일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대체 노동자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사양길에 접어들어야 할 화력 발전소. 이를 이명박 시대 재벌들에게 문을 열어 국비까지 들여 지원했다. 저탄소 시대를 역행하는 이 말도 안 되는 행동들로 인해 비난이 쏟아지지만 모르는 이들은 현 정부가 저탄소에 역행한다고 지적한다.

 

기술의 힘으로 무언가를 치유할 수 있을까? 젊은 노동자가 원한 것은 그저 일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 일을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김용균이 사고가 난 후 가장 먼저 그를 발견한 동료 이인구 씨는 그날 이후 투사가 되었다. 용균의 어머니처럼 말이다.

 

아들 나이또래의 김용균을 보낸 후 극심한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이인구는 아내가 불안해할 정도였다. 누구를 만나든 용균이 이야기를 하고 한없이 우는 그는 그럼에도 투사의 길을 선택했다. 누구도 봐주지 않지만 용균이를 위한 작은 박물관이 조성되고 재단까지 만들었다.

 

용균이 엄마는 아들을 허망하게 보내고 투사가 되어야만 했다. 평생 살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들을 먼저 보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면 받아들일 수는 있다. 하지만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은 남겨진 이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남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여전히 힘겹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과연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 야당은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조롱하기만 한다. 그런 자들이 여전히 금배지를 달고 말장난을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힘겹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더는 김용균과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모두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는 누더기가 되어 통과되었다. 없는 것보다는 좋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정치꾼들의 가족이 이런 황당한 죽음을 맞았다면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삶에 지쳐 미쳐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에 큰 관심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 VR로 생전의 용균이를 만났다. 20대 청년이 보낸 그 짧은 삶으로 들어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누구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과 마주한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니 말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화력 발전소. 2인 1조가 기본이지만, 이를 지키지 않고 홀로 그 발전소에서 일을 하던 청년 김용균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보통의 청춘들처럼 그의 휴대폰 속에는 그가 살아왔던 삶이 저장되어 있었다.

 

다른 청년도 가고 싶었던 회사에 대한 정보도 담겨 있었고, 20대 청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일상이 그 안에는 존재했다. 그저 잊혀가는 화력 발전소 노동자가 아닌 우리의 모습이 그 안에는 담겨 있었다.

 

평범하게 공부하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다정한 부모님과 살가운 아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그런 그가 맞닥트린 첫 세상은 참혹함이었다. 용균이 자신도 이렇게 참혹한 작업 현장이라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포기보다는 그래도 열심히 일해 지금보다 좋은 미래를 꿈꾸던 그 청년은 허망하게 그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작별을 해야 했다. 아무런 말도 남기지 못하고, 가버린 그를 기리는 이들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 

미처 먹지도 못한 사발면 하나만 남기도 구의역에서 사망한 19살 노동자 김 군은 이제 오는 5월이면 5주기가 된다. 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는 한국의 지하철. 그리고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스크린도어.

 

이를 수리하는 노동자는 스크린도어 뒷편에서 사망했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지만 막지 못했다. 죽음의 외주화는 결국 누군가에게는 행복을 줄지 모르지만, 그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가능한 결과다. 누군가를 희생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이는 전면 재조정되어야 한다. 왜 힘없는 노동자가 희생되어야 하는가.

 

급격한 진보가 힘겨운 것은 안다. 검찰 조직과 극우세력들의 조직적인 저항을 우리는 지금도 보고 있다. 사법부 전체의 개혁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쉽지 않다. 사회 곳곳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과정과 결과 모두 쉽지 않다.

 

단기간에 이 모든 것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닌 곧 나와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혹은 나의 가족이 아니니 그 젊은 노동자들의 죽음마저 외면한다면 그다음은 곧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희생되어야 한다.

 

우린 모두 노동자다.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라는 의미다. 기술의 발전으로 하늘로 먼저 간 노동자와 마주한 그 시간. 힘겹지만 우리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우리의 문제다. 외면하는 순간 위정자들은 또다른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을 뿐이다. 변화는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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