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4. 06:22

3할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만든건 8할이 가족이었다

MBC 스페셜에서는 화려하고 풍성했던 한 시즌을 보낸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시아인 최초로 20-20 클럽이라는 대단한 성과를 거둔 추신수. 미국으로 건너간지 10년만에 일궈낸 이 대단한 성공 스토리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MBC 스페셜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눈물젖은 빵

야구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마이너리그가 얼마나 혹독한 시련을 요구하는지 알고 있을 듯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를 통해서 많이 회자되었던 눈물젖은 빵은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은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에게는 고통스러운 통과의례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부산고시절 최고의 투수로 활약했던 추신수. 대한민구을 대표하는 초고교급 투수 추신수가 미국에 입성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듯 합니다. 하지만 투수가 아닌 타자가 되었단 소식에 많은 팬들은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었지요.

그렇게 그는 시애틀에 둥지를 틀고 마이너 생활을 6년이나 해냅니다. 시애틀의 마이너가 있는 애리조나는 40도가 넘는 혹서의 도시라고 하지요. 그저 밖에 나오기도 힘든 그 곳에서 땡볕아래에서 시합을 하고 그늘도 없는 곳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시련을 그는 견뎌냈습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프지 않은 부모님들은 없었겠지요. 어머니의 인터뷰처럼 롯데로 가자는 말은 진심이었을 듯 합니다. 호텔방에서 나오자마자 숨이 턱 막히게 하는 애리조나의 살인적인 더위에 그대로 방치된채 운동을 해야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본인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겠지요.

그렇게 오랜 시간 마이너 유망주였던 그가 메이저리거가 되기 힘들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번트안타라고 비하되기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매년 200안타 이상을 때려내는 일본인 이치로가 그와 같은 포지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최고의 스타가 같은 소속팀에 있는 상황에서 유망주가 기회를 얻기란 거의 제로에 가까웠지요.

그렇게 그는 메이저의 꿈을 키워갔던 시애틀에서 벗어나 클리블랜드로 가게됩니다. 이를 두고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자로 인식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에게는 기회가 필요했었고, 클리블랜드는 그런 추신수에게는 가장 적합한 팀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젊은 팀에서 기회를 잡은 추신수는 최선을 다했고, 그가 메이저리거로 처음 출전한 경기가 원소속팀이었던 시애틀이였다는 것. 그리고 그경기가 1-0으로 클리블랜드가 승리했는데 그 1점이 추신수의 솔로 홈런이었다는 것은 참 영화같은 상황이 아닐 수없었습니다.

욕심이 과해 팔부상이 커지고 이로 인해 거의 1년을 재활에 메달려야 했던 추신수. 그에게는 마이너 시절의 눈물젖은 빵을 먹던것 보다도 더욱 힘든 시기였던 듯 합니다. 자신의 목표였던 메이저리거가 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팔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그는 한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한국으로 돌아가는 문제로 고민을 했다고 하니 얼마나 심적인 고통이 심했는지 알 수있었을 듯 합니다.

그렇게 힘겨운 재활을 넘기고 그는 마침내 화려한 2009 시즌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안으로서도 유일하게 20-20을 세운 추신수. 더불어 3할타율까지 세우며 클리블랜드의 최고 스타로 자리잡는 추신수는 꾸준한 노력과 불굴의 투지로 만들어낸 그만의 몫이었습니다.

그를 키운건 8할이 가족

추신수는 어쩌면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진 선수였을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선수로 키우고자 했던 아버지로 인해 어찌보면 '아동학대'를 생각할 수도 있을 법한 혹독한 훈련을 하게된 추신수. 자신이 그걸 견디지 못하고 운동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면 할 수없었겠지요. 그러나 현재 자신의 아들 무신이에게도 강한 남자가 될 수있도록 조금은 거칠게 사랑을 표현하듯 그도 아버지에게서 그런 사랑을 받았었습니다.

몸에 좋은 것이라면 뭐든지 해먹이는 부모님의 노력과 항상 최선을 다하는 추신수의 근면함이 그를 최고의 선수로 만들었던 원동력이었을 것입니다. 더불어 추신수도 그의 부모들도 인정하듯 부산고 시절 감독이었던 조성옥 감독은 현재의 그를 만들어준 스승이었습니다.

너무 혹독한 훈련으로 런닝을 하면서 토할 정도였다는 그의 회상속에 애틋함과 이상한 그리움이 묻어나 있었습니다.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소원을 성취한 그는 커다란 환영속에 고국을 찾았지만 마냥 웃고 기뻐할 수만은 없었지요. 자신의 은사였던 故 조성옥 감독의 영정을 찾아 오열하는 그의 모습에는 강한 남자의 모습과는 다른 속깊은 정을 옅볼 수있었습니다.

추신수의 인생에서 어린시절 부모님과 故 조성옥 감독이 자리하고 있었다면 성인이 된 지금 그를 지탱해주는 것은 부인과 아이들이었습니다. 가장 힘들었을때 만나게된 부인과 추신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는 부인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올라설 수있었다는 추신수의 아내 사랑은 대단해 보였습니다.

동갑내기 부부로서 머나먼 타지에서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낸 그들에게는 부부이상의 그 무언가가 있는 듯 했습니다. 배고픈 마이너시절 방값이 모자라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살아야했던 시절에도 혼자 애를 낳고 길러야 했을때도 부인은 언제나 추신수에게는 든든한 동지였고 사랑이었습니다.

운동선수인 추신수를 위해 스포츠 마사지를 배워 매일 시합이 끝나면 손수 마사지를 해준다는 그녀의 내조가 없었다면 어쩌면 현재의 추신수라는 선수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추선수도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했듯 "어렸을때는 나자신의 명예를 위해 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가족을 위해 운동을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가족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자신의 꿈이었던 메이저리거로 당당히 올라선 추신수. 올 해보다는 내년이 더욱 기대되는 추신수. 그를 키운건 8할이 가족의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도 가족을 위해 8할이 되어주고자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추신수의 모든 것을 보고 이야기하기에는 많은 부분 아쉬운 MBC 스페셜이었지만, 구도 부산이 낳은 세계적 선수 추신수의 몰랐던 부분과 그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많은 것들을 시사해주었습니다. 더불어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추신수 선수가 올해보다도 내년 더욱 좋은 성과를 올려 그를 응원하는 많은 팬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전해주기를 바랍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열정을 다바쳐 사랑을 하고, 감사할 줄 아는 그는 정말 사나이였습니다. 조성옥 감독이 사망하던날 시합에서 그는 2개의 홈런과 4개의 안타, 7타점이라는 선수생활중 최고의 활약을 보냈지만 인터뷰도 사양하고 웃을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을 잊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진한 남자의 모습을 옅볼 수있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혼자 흐느껴 울면서도 흔들림없이 달려온 부산 사나이 추신수를 보며 나태하기 그지없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과연 나는 꿈을 위해서 어느정도나 노력을 했는지 반성하게 만드는 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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