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열의 눈에만 보이는 강우. 그런 강우를 떠나보내지 않으면 결코 그 죽음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재열은 해수의 사랑으로 인해 그 지독한 허상 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한 회를 남긴 <괜찮아, 사랑이야>는 사랑이란 우리에게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었습니다.
강우에게서 자신을 바라본 재열;
재범의 오해, 재열의 아픔 모든 것들 이제는 괜찮아, 사랑이야
여전히 강우를 보는 재열은 면회를 온 엄마에게 퇴원을 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아들을 누구보다 끔찍하게 생각하는 엄마로서는 결코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습니다. 치료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퇴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둘이지만 그렇게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열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해수가 자신으로 인해 병원에서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이지만 밤마다 자신의 병실 앞에서 바라보다 가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산책하던 자신을 멀리서 훔쳐보던 해수를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해수의 그런 행동은 정신과의사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이는 결국 그녀의 직업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해수를 사랑하는 재열은 엄마에게 부탁합니다. 해수가 자신 때문에 징계를 당했고, 가난한 집에서 아픈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야 하는 해수의 꿈은 대학 교수다. 그런 그녀를 위해서라도 자신은 병원을 떠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자신의 고통보다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재열의 이런 모습이 바로 사랑일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거대한 힘은 그를 지배하고 있고, 그런 그의 행동은 곧 사랑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었습니다.
입원한 자신을 찾아온 형 재범에게 용서를 빌던 재열. 그리고 그런 재열을 때리며 분노하던 재범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불안함에 시달리던 재열 역시 재범의 면회 후 홀가분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따라다니던 속죄의식을 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재범 역시 재열을 만나고 난 후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들 가족은 지독한 과거의 고통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재열이 산책을 나간 사이 엄마를 독점하고 싶었던 재범은 등목을 해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등목을 해주던 엄마는 왜 자신이 그렇게 쓸고 닦고 하는 일에 집착하느냐는 재범의 타박에 과거 이야기를 합니다. 재열이 시골 변소에 빠졌던 이야기는 해수는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의붓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다 도망친 엄마가 숨은 곳도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재열도 도망치다 발견한 그곳으로 찾아들어갔고, 상습적으로 폭행에 시달리던 모자는 시골 변소 안에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황당하고 어이없는 현실 속에서 재열은 엄마를 위해 그저 웃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분노하고 울어버렸으면 시원했겠지만, 착한 재열은 엄마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개울가에서 그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던 모자는 재열의 웃음으로 물놀이로 변해갔고, 이를 다리 위에서 목격한 어린 재범은 분노로 각인되었습니다. 자신을 싫어하면서 재열만 좋아하는 엄마가 싫었고,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재열이 증오스러웠습니다. 왜 그들이 그곳에 그렇게 있어야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던 재범의 분노는 그렇게 스스로 만든 것들이었습니다.
엄마의 이런 고백을 듣고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으로 스스로를 책망하고 가족을 미워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모르고 있었던 지독한 고통에 노출되어 살아왔던 그들에게 분노하고 화풀이를 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기 시작한 재범도 사랑이라는 거대한 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머리 안에서 검은 머리가 자라기 시작하듯 재범의 분노 역시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그날 웃지 않고 울었다면 재열이 현재처럼 아프지 않았을 것이라는 엄마의 타박은 그래서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엄마와 어린 재열이 물장구를 치며 그 지독한 현실을 잊으려했던 개울가에 동민과 수광이 찾아왔습니다. 지독한 고통을 억지로 씻어냈던 그 장소에 현재의 자신을 지탱하게 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은 재열에게는 행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재열을 마지막까지 믿는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재열은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속 강우. 재열에게는 강우가 왜 허상이라고 하는지 좀처럼 알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허상이라고 하니 애써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항상 자신의 곁에 있는 강우를 재열은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 재열에게 해수는 전화를 합니다. 그리고 그저 그렇게 시작된 해수의 전화는 하나의 치료로 이어집니다.
사랑해서 멀어진 그래서 더욱 가까워지고 싶은 이들의 통화는 일방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친밀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신의 존재만 알리는 해수의 전화. 그런 전화의 반복 뒤에 해수는 재열 앞에 있는 강우를 제대로 바라보라 합니다. 전화를 끊는 순간 등장할 강우를 제대로 바라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순을 찾으라고 합니다. 환시에는 항상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말입니다.
착각과 모순을 찾는 것은 의사나 약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것이라는 해수의 말처럼 재열은 자신 앞에 등장한 강우를 바라보며 그 착각과 모순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해수와 다시 만날 수 있는 조건은 강우가 허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해수는 강우가 보일 때 둘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바로 그 순간만이 진짜라는 해수의 말 속에는 재열의 고통을 사랑이라는 행복으로 치유하고 싶은 갈망이 가득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바라보라는 해수의 말을 따라 재열은 강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상처만 가득한 강우의 발을 바라보던 재열에게 그건 너무나 익숙했습니다. 그리고 강우는 단 한 번도 신발을 신고 자신에게 다가온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상처 난 맨발로 다니는 강우는 재열이 결코 잊을 수 없는 고통 속 자신이었습니다.
집중해서 강우를 바라보던 재열은 착각과 모순을 찾아냈습니다. 3년 전 처음 만난 강우는 그때나 지금이나 고등학교 2학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형 재범에게 공격을 당한 후 갑자기 등장했던 강우. 그렇게 하나가 된 그들은 3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함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강우는 여전히 고2 학생일 뿐이었습니다.
사랑만이 진짜라는 해수의 말처럼 재열을 지배하는 강우는 그저 환상일 뿐이었습니다. 16살 어린 자신이 의붓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리다 도망칠 때 맨발이었듯,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강우 역시 상처 난 맨발이었습니다. 16살 재열과 강우가 맨발로 자신의 앞으로 달려가는 장면은 재열은 처음으로 강우가 진짜 존재하는 인물이 아닌 자신의 자아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지독한 고통을 잊지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16살 강우는 바로 그 지독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힘겨웠던 재열의 어린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그 지독한 착각과 모순을 깨달은 재열은 미치도록 달려 해수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는 해수의 품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한 번도 손을 내밀지 않았던 재열은 해수에게 강우는 가짜라며 그는 바로 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 재열은 그렇게 지독한 스키조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입원을 선택한 재열에게 해수는 선물을 전합니다. 강우에게 전해달라는 해수의 선물은 다름 아닌 신발이었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강우. 하지만 스스로 강우는 이제 자신의 또 다른 자아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재열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의 병실 침대에 앉아 있는 강우를 위해 재열은 발을 씻어줍니다. 상처 난 발을 씻겨주는 재열의 세족식은 자신이 스스로 감추고 있었던 고통과 마주하는 행위였습니다.
자신의 찢어지고 상처 난 발을 씻어줌으로서 스스로 품고 살아야만 했던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재열은 그렇게 아픈 자신을 떠나보내고 있었습니다. 깨끗하게 강우의 발을 씻기고 재열은 해수가 선물한 양말과 신발을 강우에게 신깁니다.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한 강우의 상처 난 발에 신발을 신기는 재열과 그런 재열을 바라보며 우는 강우의 모습은 <괜찮아, 사랑이야>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작가님, 이제 나 오지 마요"라는 강우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우는 재열의 모습은 그 어떤 장면보다 강렬했습니다. 자신의 인생 모두를 지배하고 있던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재열의 이런 행동은 지독한 고통 속에서 이별을 고하는 가장 현명한 방식이었습니다.
재열은 그렇게 해수의 지독한 사랑으로 인해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않고 있던 지독한 트라우마와 작별을 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재범 역시 엄마에 대한 오해를 풀어내고 자신이 감옥에서 만든 밥장미를 선물하는 것으로 지독한 고통과 작별을 했습니다. 해수의 가족들이 여전히 반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열과 해수가 해피엔딩일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법은 이미 제시되었었습니다.
해수가 만약 재열의 어머니가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처럼 결혼을 반대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들의 사랑은 이미 정의되었습니다. 서로의 부모와 가족이 반대하면 듣는 척 하며 몰래 만나면 된다. 그러다 걸리면 다시 알았다고 하고 다시 몰래 만날 거라는 말 속에 이들의 사랑은 행복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노희경 작가가 만들어낸 가장 매력적인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듯합니다. 2년 전 발표했던 <빠담빠담>역시,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랑이라는 가치에 대한 고민을 색다른 방식으로 찾아가고 풀어낸 노희경 작가의 능력은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통해 확인 되었다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지독한 과거의 고통을 이겨내는 사랑의 힘은 여전히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이었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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