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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Broadcast 방송

그것이 알고 싶다-김기춘 역사의 법정에 선 적폐의 핵심, 청산 되어야만 한다

by 자이미 2017.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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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꾸라지라는 별명을 가진 김기춘. 그의 삶은 굴곡의 대한민국 역사 그 자체다. 유신 헌법에 참여하고 간첩단 조작 사건을 이끈 자가 바로 김기춘이다. 법무부장관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불법 선거를 진두지휘하고,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까지 깊숙하게 관여한 김기춘은 곧 박정희 박근혜 정치와 샴 쌍둥이와 같은 존재였다. 


박씨 부녀와 김기춘;

인성이 존재하지 않는 법 전문가의 국가 농단, 김기춘의 삶 자체가 괴물 그 자체였다



지난주 <그것이 알고 싶다>는 우병우의 삶을 다뤘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우병우가 어쩌면 롤 모델로 삼고 살아왔을 법한 김기춘의 삶이었다. 김기춘은 영화 <자백>을 보신 분들이라면 최소한 어떤 존재인지는 알고 있을 듯하다. 박정희의 총애를 받았고, 박근혜가 믿었던 남자. 대한민국 최초로 부녀 대통령을 모신 김기춘은 그들과는 한 몸과 같다. 


박정희 시절 검사가 된 김기춘은 권력 지향적인 인간일 뿐이었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모두가 좋은 일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최근 많이 무너졌을 것이다. 소년 장원을 해 어린 영감으로 살아왔던 우병우가 공부는 잘했다고 생각되지만 과연 검사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했느냐에 대해서는 절대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그저 공부 기계였고, 탐욕스러운 괴물일 뿐이니 말이다. 


김기춘이 독재자 박정희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문세광을 심문하면서부터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피살 사건이 벌어진 후 현장에서 체포된 문세광의 입을 열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젊은 검사 김기춘이었다. 문세광의 입을 열게 한 김기춘은 박정희에게 "김똘똘"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고 한다. 


유신 헌법에 가장 어린 나이로 참여하고, 3기수나 앞서 출세 가도를 달린 김기춘에게 걸림돌은 없었다. 독재자 박정희가 챙기는 김기춘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권력이었다. 어린 나이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었던 김기춘은 대단했다고 한다. 


자신보다 2, 30살 많은 수사관에게도 함부로 대할 정도로 그 위세는 대단했다고 한다. 박정희의 사랑을 받는 김기춘은 기고만장 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 권력의 비호를 받는 김기춘은 그렇게 권력에 충성하는 악랄한 개가 되었다. 그의 삶은 곧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역사로 점철되어 있음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조작의 대가라는 명칭이 가장 적합한 자가 바로 김기춘이다. 그 똑똑한 두뇌를 가지고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면 분명 세상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김기춘은 자신의 영특함을 국가가 아닌 권력을 가진 인물에 충성을 했을 뿐이다. 그는 권력이 바뀌는 상황에서도 국가보다는 권력에 충성을 다했다. 그렇게 그는 50년이 넘는 공직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었다. 


박상옥 대법관이 임명되는 과정 역시 김기춘의 작품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박상옥은 바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 은폐하는데 동조한 인물이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숨졌다"는 말도 안 되는 고문치사 사건에 깊숙하게 관여 된 사실은 명확하다. 자신처럼 고문치사를 자행한 자를 대법관에 임명한 것은 김기춘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와 청와대의 사법권 장악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고,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법관들은 징계를 일삼은 박 정권은 삼권분립이 엄격하게 부여된 대한민국의 근간을 완벽하게 흔들었다. 헌법 자체를 부정하고 무시한 박 정권은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권력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자기 스스로 능력의 7, 80%는 사용한다며 그 이상을 쓰면 권력 남용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존재였다. 언론을 통해 자신은 대단한 존재이고 철저하게 자신을 다스리며 살아왔던 정직한 공직자라 포장하기에 바빴지만 그가 행한 행동은 스스로 언급했던 '권력 남용'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1975년 11월 22일 간첩단 사건은 경악스럽다. 재일교포 유학생 21명을 간첩으로 일망타진했다고 언론에 발표한 사건은 김기춘이 어떤 존재인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자 모든 의문을 풀어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다. 한국어가 서툰 재일교포 유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 고문을 일삼은 이 사건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무죄 판결이 나기 시작했다. 


간첩단을 조작하고 이를 통해 박정희 독재 정권을 유지하게 하려는 김기춘의 전략은 그렇게 수많은 이들을 절망으로 이끌었다. 재일교포이지만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잊지 않기 위해 모국으로 유학을 온 유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간 이 사건은 김기춘이 최소한 인간은 아니었음이 명확하게 드러난 사건이기도 하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그들을 사형수로 만든 김기춘. 20대 청춘인 그들을 한국 정치에 밝지 못하고 한국어도 서툰 그들을 간첩으로 몰아 박정희 권력을 비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김기춘이 인간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40년이 지나 사형수는 간첩죄가 무죄가 되는 현실 속에서도 김기춘은 '모른다'만 외칠 뿐이었다. 


"간첩은 머리, 두뇌로 잡는 것이지 몽둥이로 잡는 것이 아니다. 제가 수사한 사건으로써 무슨 뭐 과거사 진상규명이나 인권 의문사나 이런 리스트에 오른 게 없습니다"


"저는 정말 내가 그런 것이 권력을 남용해서 인권을 유린하고 고문하고 이랬으면 오늘날 김기춘이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요. 그 점을 제가 자부합니다. 그 점이 다른 사람보다 어떻게 보면 훌륭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기춘이 자신의 죄가 드러나기 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경악스럽다. 사건을 모두 조작하고 고문을 지시하고 감시한 자가 김기춘이라는 사실은 증거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뻔뻔하게 자신은 인권 유린하지 않은 존재라고 자부한다. 


간첩을 많이 잡았다고 '5.16 민족상'까지 받았던 인물이 바로 김기춘이다. 재심이 시작되기 전 나온 이 인터뷰는 김기춘이라는 자가 어떤 존재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은폐 조작과 고문을 자행한 자가 자신은 당당하고 다른 이들보다 훌륭한 이유라고 자부하는 행위는 경악을 넘어설 정도로 충격적이다. 


김경진 의원이 김기춘을 법을 잘 알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며 선악을 안 가리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사용해 이해관계와 권력의 정점을 얻는 것은 당연한 전리품이라는 정의는 중요하게 다가온다.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가 만든 <자백>은 김기춘이 어떤 자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역시 철저하게 조작된 것이었다. 노태우 정권이 붕괴 직전까지 이르던 상황에서 분신 자살이 이어진 상황이었다. 이런 위급 상황에서 나온 것이 바로 유서 대필 사건이다. 변절의 아이콘인 김지하나 정치 언론인 박홍과 같은 자들의 음모론에 유서 대필 사건을 만들어 국면 전환을 이끈 것 역시 김기춘이었다. 


무너지던 권력을 일으켜 세운 자가 바로 김기춘이라는 점에서 그는 부도덕한 권력자들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박정희 정권이 절실하게 원했던 간첩들을 만들어내고, 이를 매개로 공포 정치를 일삼을 수 있었다. 노태우 군사 정권이 몰락하는 상황에서는 자신들을 공격하는 이들의 도덕성을 문제 삼아 위기 탈출을 한 김기춘의 전략은 박근혜 정권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1992년 '초원 복집 사건'은 김기춘 인생 가장 치욕스러운 한 순간이었다. 부산 기관장들을 모아 놓고 선거 조작을 지시하는 모든 과정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김기춘이 생각해낸 것은 불법 도청이었다. 사건의 본질은 사라지고 그 행위만 남은 상황은 여론을 호도하고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한다. "우리가 남이가"는 그렇게 김기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잊어서는 안 된다. 


박 정권의 '정윤회 문건 파동' 역시 동일한 방식을 사용했다. 정윤회 문건 속 최순실의 존재와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진실이 중요했지만, 김기춘은 다시 한 번 문건이 아닌 유출된 과정을 문제 삼아 여론을 호도했다. 그리고 이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서는 '태블릿 PC'를 문제 삼아 다시 한 번 여론을 뒤집으려는 행동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수십 년 동안 김기춘이 일관되게 사용해 왔던 본질 흐리기의 핵심이다. 


김기춘과 함께 터진 거대한 사건들은 모두 조작 사건들로 판명이 났다. 모든 조작 사건의 정점에 거론되는 김기춘의 이름은 철저하게 국가가 아닌 한 사람의 권력을 위한 행위일 뿐이었다. 물론 자신 역시 부귀영화를 누리는 하나의 선택이기도 했다. 


거짓말과 자기 합리화가 체화된 김기춘은 자신이 법 지식을 통해 오직 자신을 위해 살아왔다. 선악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 유리한 자의 편에 서서 권력을 행사해온 김기춘은 역사적 죄인이다. 여전히 자신이 죄의 대가를 받지 않기 위해 온갖 발악을 하는 김기춘은 그렇게 권력을 추종해 온 벌레와 같은 존재일 뿐이다.   

   

"억울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이상하게 잘 안 들더라고요. 나는 내가 잘 버텼다. 잘 견뎠다 하는 위로하고 싶은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내 조국이 가장 어둡고 힘들고 괴로웠던 시기에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받칠 수 있었다면 행복이 아니냐"


24살에 간첩 조작 사건으로 들어가 37살에 풀려난 강종헌의 이 말은 참 아프게 다가온다. 서울대 의대생이었던 그는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40년이 지나 무죄 판결을 받은 그가 한 이 발언은 김기춘과 극단적인 비교가 된다. 


다른 사건 피해자들 역시 자신들을 사형수로 몬 국가를 부정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과거를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다만 아쉬운 것은 좀 더 싸우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진정한 애국자였다. 김기춘이 서 있는 곳은 '역사의 법정'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거짓이나 변명이 통하지 않는 곳이 역사의 법정입니다"라는 강종헌의 말은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한다. 수많은 범죄 사실 앞에서도 모른다만 외치고 있는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 뉘우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범죄의 중심에 서 있는 김기춘은 반성은 외면한 채 오직 자신의 안위만 걱정할 뿐이다. 


우병우로 시작해 김기춘을 지나 이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조윤선을 향해 간다. 우리 사회 엘리트 집단들의 부도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들에 집중하는 것은 그 안에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나라에서 살 것인지 규정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정확하게 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것에서 시작해 모든 적폐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우린 다시 그 모든 악습들을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거스를 수 없는 책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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