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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숙향 작가가 돌아왔다. <파스타> 이후 다시 주방 멜로로 돌아왔지만 상당히 다르다. <파스타>가 현실적인 주방 멜로를 보여주었다면 신작인 <기름진 멜로>는 전작인 <질투의 화신>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코믹을 기본 바탕으로 음식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 느끼하지만 전혀 기름지지 않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작가 위트가 돋보인 첫 회;
니체와 사채업자 그리고 재벌가 딸과 미슐랭 투 스타 셰프가 벌이는 유쾌한 이야기
간만에 단단한 작품이 지상파에 돌아왔다. 지상파에서 필력 좋은 작가들이 사라지며 드라마 역시 지리멸렬했던 것이 사실이다. 좀처럼 볼 드라마가 없어 아쉬워했던 시청자들에게 서숙향 작가의 신작 <기름진 멜로>는 충분히 갈증을 해갈 시켜줄 수 있어 보인다.
호텔 중식당 '화룡점정'을 미슐랭 투 스타로 이끈 서풍(준호)은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16년 동안 사귄 여자 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성형 외과 의사가 된 달희(차주영)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준비가 되어있다. 긴 시간의 연애를 끝내고 결혼식까지 치렀지만 뭔가 이상하다.
신보다 위라는 건물주이자 사채업자인 두칠성(장혁)은 자신의 건물 1층에 중국집을 차려 운영 중이다. 자신을 따르던 동생들과 함께 하는 중국집에 손님이 없다. 하필 그 중국집은 최고의 중식당인 '화룡점정'과 길 하나 건너서 마주 보고 있다. 1년 동안 열심히 짜장면을 먹는 칠성이지만 손님은 없다.
바로 사랑에 빠져버리는 칠성은 미용실에서 만난 단새우(정려원)에게 한 눈에 반해버렸다. 해맑은 미소로 아무렇지도 않게 조폭 머리 스타일을 언급하는 이 여자에게 첫 눈에 반해 버린 칠성은 운명이라 생각했다. 미용실에서 새우와 서풍도 만났다.
결혼식을 앞두고 신부가 될 달희를 기다리며 조급해 하는 서풍과 달리, 한 달 후 결혼을 앞두고 혼인신고부터 하고 온다는 약혼자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새우는 누구에게나 해맑다. 기다리던 달희가 오자마자 키스를 하는 서풍은 알고 있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성껏 만든 자신의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린 것을 본 후 달희가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한 달희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결혼식을 무사히 치러졌지만, 이는 이혼을 위한 결혼식일 뿐이었다.
서풍이 일하고 있는 '화룡점정'이 속한 호텔 사장인 용승룡(김사권)과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아내 달희가 바람이 났다. 결혼식 일주일을 앞둔 날. 서풍이 정성스럽게 음식을 해간 바로 그날. 회진을 돌던 달희와 환자였던 승룡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도발적으로 접근하는 승룡과 그가 가진 타이틀과 재산에 흔들린 달희는 그렇게 서풍을 버렸다. 마음에도 없던 서풍과의 결혼식은 바로 전 그의 진한 키스가 만든 환상일 뿐이었다. 중식당 요리사보다는 호텔 사장이 더 좋은 달희에게 그 결혼은 하지 말아야 했다.
미용실에서 만난 세 남녀. 웨딩 사진을 찍으려는 새우 커플과 결혼식 장으로 향하는 서풍 커플.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칠성의 모습과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은 영화 <졸업>의 OST였다. 영화 <졸업>을 보신 분들이라면 왜 이 순간 이 곡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로 널리 알려진 이 OST에 흐르는 음악들 중 <졸업>하면 떠오르는 곡은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The Sound Of Silence'일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확인한 후 식장에서 신부의 손을 잡고 도망치는 주인공. 그들이 버스에 올라타 행복하게 웃는 모습과 함께 흘러나오는 이 노래는 영화만큼 큰 인기를 얻은 불후의 명곡이다.
<기름진 멜로>에서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가 아닌 '미세스 로빈슨 Mrs. Robinson'을 선택한 것은 작가의 위트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벤이 사랑하는 일레인의 엄마 로빈슨 부인과 육체적 유혹에 빠지는 과정을 담은 노래다. 유쾌하지만 절대 유쾌할 수 없는 이 노래는 서풍과 새우 커플이 어떤 결론을 맺을지 암시하는 음악적 복선이었다.
이런 식의 위트 있는 재미는 현재 중국집을 하고 있는 사채업자 칠성과 동생들의 3년 전 이야기에서 다시 등장한다. 칠성을 제거하려는 상대편의 공격으로 최악의 순간에 접어드는 과정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노래가 다시 등장한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은 몰라도 영화 속 OST인 '왓 어 원더플 월드 What a Wonderful World'은 알고 있다.
사이공의 미군 DJ 애드리안은 철저하게 정해진 방송을 타파하고 자신 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틀고 멘트를 하며 큰 사랑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나온 이 음악은 영화는 몰라도 음악은 전 세계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명곡으로 남겨져 있다. 너무 아름다운 음악에 잔인한 베트남 전쟁이 하나가 된 이질적인 상황은 드라마 <기름진 멜로>에서 다시 차용되었다.
서숙향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이런 소소한 재미는 드라마를 더욱 흥미롭게 이끌 수밖에 없다. 사실 내용은 단순하다. 최고의 중식당 요리사가 아내도 직업도 빼앗긴 채 무너지고 만다. 저축은행을 소유한 아버지로 인해 어려움이란 모르고 자랐던 여자가 한 순간 거지가 되고 만다.
그렇게 바닥까지 추락한 두 남녀가 사채업자를 찾아가 돈을 요구한다. 그렇게 남자는 복수를 위해 중식당을 열고, 운명처럼 연결된 세 남녀 사이의 익숙한 삼각관계는 무르익어간다. 악의 축이 된 호텔 사장과 배신녀, 그리고 흥겨운 재미를 전해줄 임원희와 박지영의 러브 라인도 흥미롭게 이어질 예정이다.
선과 악을 구분하고 복수를 하는 과정 속에 사랑이 있고, 다양한 음식들이 존재한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는 시청자들에게 편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한다. 빠른 전개로 시작과 함께 분열을 보여준 것 역시 좋다. 명쾌한 복수극을 꿈꾸고 응원할 충분한 명분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는 서숙향 작가로 인해 보다 매끄럽고 흥미롭게 다듬어졌다.
니체를 사랑하는 사채업자. 인간의 본능이 선하고 도덕적이라는 자유주의 사상을 비웃었던 니체 그렇게 초인을 이야기하던 그를 사랑하는 칠성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흥미롭다. 이미숙이 연기하는 전혀 다른 두 인물 역시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미숙과 박지영이 전작인 <질투의 화신>에 이어 다시 등장하며 서숙향 작가의 페르소나 임을 증명했다. 이들이 펼쳐낼 재미의 힘은 <질투의 화신>을 생각하면 충분히 기대된다.
<파스타>와는 또 다른 음식을 다루는 멜로 드라마 <기름진 멜로>는 충분히 흥미롭다. 이질감 없는 준호, 장혁, 정려원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서숙향 작가가 보여준 이야기의 힘은 다시 한 번 작가가 드라마에서 왜 중요한지 설명해주고 있다. 즐겁게 볼 수 있는 멜로 드라마는 행복을 준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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