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현실이 되는 모든 상황들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노인의 삶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마지막은 죽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직전 가장 아프고 힘든 것은 암보다 치매다. 치매 환자가 힘든 것은 자신의 기억들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잊을 수밖에 없는 것보다 저주 받은 병은 존재할 수 없으니 말이다.
치매는 호접몽;
시간여행이 아닌 치매로 인한 기억 조작, 충격적인 이야기 속 가치
준하가 사라졌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겠다던 준하의 집은 엉망이었고, 가방도 그대로였다. 그대로 사라진 준하를 향한 혜자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다시 문을 연 효자원에 노인들이 모이고, 희원과 일당은 무서운 음모를 꾸몄다. 아주 경악스러운 음모 말이다.
혜자는 친구들과 우정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에 들뜬 혜자는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혜자와 가족들에게 바다는 행복이다. 가족 여행을 매년 가던 바다가는 그렇게 그들에게 즐거운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들과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우정 여행을 간다는 것 자체로 행복이었다.
영수는 자신은 떼어 놓고 여행을 가려는 현주가 미웠다. 짐을 실어준다며 몰래 트렁크에 숨은 영수는 그렇게 자신의 계획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생각했다. 몰래 함께 여행에 따라간 뒤 알고 난 후에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영수에게는 있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준하의 실종이었다. 그 일로 인해 여행은 취소되었다. 혜자가 찾은 효자원에는 노인들이 가득했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까지 있다. 효자원에 모인 이들은 하루를 그곳에서 자고 내일 야유회를 간다고 좋아한다. 하지만 그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 보험에 든 사람들이다.
기지를 발휘해 겨우 효자원을 나온 혜자는 야유회에 초대 받지 못한 노인들을 규합했다. 그리고 효자원에 갇힌 노인들과 준하를 구출하기 위한 계획을 짠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노인들을 위해 아침에 거사를 치르기로 한 그들은 '노벤져스'가 되었다.
잘 걷지 못하고, 눈이 안 보이고, 힘도 없는 노인들이 준하와 다른 노인들을 효자원에서 구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건장한 체격의 조폭들이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혜자의 진두지휘 하에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혜자를 좋아하는 말죽거리 애늙은이가 시선을 끄는 사이 지하로 잠입한 노벤져스는 탁월한 능력을 이용해 갇힌 사람들을 찾는다.
혜자가 그토록 원했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를 가진 휠체어 할아버지와 준하를 구하기는 했지만, 적들의 추격과 마주해야 했다. 잘 걷지 못하던 노인을 이를 무기로 상대의 발을 묶었다. 항상 바지 속에 뭔가를 넣기 바쁘던 할머니는 그곳에서 무기를 꺼내 탈출을 도왔다.
말만 가득해 보였던 말죽거리 애늙은이는 모두가 탈출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남아 조폭들과 싸우는 역할을 했다. 실제 말죽거리 애늙은이는 건장한 조폭들도 당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그렇게 위기일발의 탈출에 성공한 그들이 향한 곳은 바닷가였다.
노을이 지는 바닷가를 보며 추억에 잠기는 노인들은 자신의 청춘들을 돌아본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래서 모든 것이 추억이 되어버린 황금 노을을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은 뭉클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바다는 아름다웠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바다에서 혜자는 휠체어 할아버지가 손목에서 시계를 푸는 순간 모든 것이 리셋되었다. 순간적으로 혜자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함께 왔던 노인들은 모두 사라지고 자신의 부모들이 먼 발치에서 자신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며 달려오고 있다.
바다에 홀로 선 혜자는 25살 혜자와 마주했다. 상주가 되어 바다를 찾은 젊은 날의 자신을 바라보는 혜자는 그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혜자는 알츠하이머 환자였다. 그녀가 25살에서 70대 할머니로 갑자기 변했다는 것은 그 사이의 기억이 모두 사라졌다는 의미다.
준하는 요양병원 의사였다. 그리고 준하와 닮은 남자는 자신의 남편이기도 했다. 행복했던 시절을 함께 보낸 남편을 먼저 보내고 아들을 키운 혜자는 그렇게 나이가 들었고, 알츠하이머 환자가 되었다. 그녀는 현실을 부정하며 자신이 시간여행을 통해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간은 그저 알츠하이머로 인해 기억을 잃은 혜자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설마했던 것들이 현실이 되고 그렇게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의 힘은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흔한 타임 패러독스를 그래도 신선하게 변주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모두 깨버린 반전은 충격이다.
노인의 질병 중 최악일 수밖에 없는 치매를 이런 식으로 풀어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기존에 치매를 다루는 방식을 완전히 타파하고 유행하는 타임 패러독스 스타일로 치매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그래서 따뜻하고 놀랍다.
흔한 소재라 해도 어떻게 풀어 내느냐에 다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눈이 부시게>는 잘 보여주고 있다. 치매에 걸린 노인의 의식을 따라 이야기를 풀어내고 이를 타임 패러독스 스타일로 만들어낸 작가의 신선한 시각은 경이롭게 다가올 정도다.
준하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닌 사고사이고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감춘 것이 바로 휠체어 할아버지의 과거일 가능성이 높다. 기억의 혼란이 가득한 혜자는 남은 두 번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궁금해진다. 불행하다고 여긴 자신의 삶에 대한 혜자의 마지막 독백이 무엇일지 궁금하면서도 불안하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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