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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binet 묵은 기억들

델마-검은 새를 입에서 토해낸 소녀, 그 기괴함에 담긴 의미

by 자이미 2018.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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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버지는 어린 딸의 머리에 총을 겨눴을까? 지독한 추위를 가진 북유럽 겨울 꽁꽁 언 강을 건너 사슴을 사냥총으로 겨누던 아버지는 이내 총구는 어린 딸로 돌렸다. 아이는 아버지가 앞에 있는 사슴을 쏠 거라 기대하며 바라보고 있다. 기묘하고 섬뜩하게 시작된 이 영화는 매력적이다.(스포일러 포함)


창 사이에 낀 머리카락;

기독교의 가치를 파괴하는 감독의 사고가 델마를 통해 발현되었다



북유럽은 영화를 많이 만들지 않는다. 한 해 만들어지는 영화의 편수는 극히 적다. 그만큼 영화 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가끔 세계적인 감독이 나오고 매력적인 작품들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재미있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신성이고 주목 받는 감독이다. 그가 만든 <델마>를 보면 이를 부정할 수 없다.


델마(엘리 하르보에)는 대학생이 되어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대학 생활을 하는 델마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물론 부모님이 매일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 일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일상이 된 삶 속에서 혼자 생활하게 된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평화롭고 행복한 대학 생활을 하던 델마는 도서관에서 갑자기 쓰러진다. 전조는 창밖의 새들이 기현상을 보이며 일부는 창문에 달려들어 죽는 현상이 일어나고 부터다. 뇌전증 증세와 동일한 모습으로 쓰러진 델마는 이후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친구인 아냐(카야 윌킨스)를 만나게 된다.


수영장에서 홀로 수영을 하던 델마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아냐. 뇌전증으로 쓰러진 모습을 봤다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아냐와는 이후부터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냐는 멋진 남자 친구와 다른 친구들도 많다. 활발한 성격의 그녀 곁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든 것이 낯선 델마에게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관리를 받아왔던 델마는 친구도 없다. 그런 그녀에게 친구가 생겼다.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는 자신의 삶과는 너무 다른 아냐를 처음 보는 순간 델마는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처음 느껴본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델마는 아냐를 통해 그의 친구들과도 만나며 자신이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술도 마셔보고 담배를 대마로 착각하기도 하는 경험들 속에 자리한 것은 아냐를 향한 사랑이라는 감정이었다. 

결정적 순간은 아냐 엄마의 초대로 음악회를 찾은 날이었다. 쑥 들어온 아냐의 손길에 어쩔 줄 모르는 델마는 다시 뇌전증 증세가 찾아오는 듯해 급하게 공연장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 앞에서 다시 쓰러질 수 없던 델마. 그리고 따라 나온 아냐를 본 순간 격정적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은 사랑이었다. 


델마는 대마초라고 건넨 담배를 피운 후 꿈인지 환상인지 욕망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었다. 그 안에는 아냐가 있었고, 그녀와 격정적 사랑은 델마를 당혹스럽게 만들 정도였다.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갔던 날 잠든 아냐를 바라보며 느꼈던 그 기묘한 감정이 사랑임을 델마는 뒤늦게 깨달았다.


보여지는 상황은 뇌전증 증세이지만 '심인성 비뇌전증'이라는 의사의 판단. 아버지가 의사인 델마는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왜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했고, 그런 고통을 경험해야만 하는지 델마는 몰랐다.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었던 할머니가 살아 있다는 것을 의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요양원에서 독한 약에 취해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는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 없었다. 왜 할머니는 그렇게 방치되었는지 델마는 알 수 없었지만 뒤늦게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자신도 그렇게 아버지가 건네는 독한 약에 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델마는 누구도 할 수 없는 기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능력이 나온 것은 어린 시절이었다. 동생이 태어나 엄마의 모든 사랑과 관심은 갓난아이로 집중되었다. 소외 받은 듯한 느낌 속에서 어린 델마는 동생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마치 거짓말처럼 동생이 사라졌다. 울던 아이가 갑자기 사라지고, 엄마는 동생을 어디에 숨겼냐고 채근한다.


엄마의 채근에 소파 밑에서 아이를 찾게 된 상황. 어린 델마도 부모도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졌다. 어린 동생이 갑자기 집에서 사라졌고, 그 아이는 꽁꽁 언 호수 속에 있었다. 동생이 어디있냐는 질문에 말 없이 언 호수를 가리키는 어린 델마와 얼어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호수 속 아이를 보며 오열하는 아버지.


그 기괴한 상황에서 종교에 집착하게 되고, 델마는 철저하게 부모의 감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사건으로 어머니는 하반신 불구 상태가 되며 철저하게 델마의 기이한 능력은 잠시 사라진 듯 보였다. 하지만 홀로 도시에서 생활하며 만난 아냐를 통해 다시 능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 능력과 이를 막으려는 본능이 결국 '심인성 비뇌전증'을 불러왔다.


<델마>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담고 있다. 성서를 재해석하기도 했다. 대마초라 속아 피운 담배를 통해 아냐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뱀이 델마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뱀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중요한 기제다. 


검은 새는 기묘한 능력이 발현될 때 등장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사망한 사실을 알고 호수로 뛰어든 그녀는 겨우 나온 후 입 속에서 검은 새를 토해낸다. 그녀를 억압하던 모든 것을 토해 낸 델마는 그렇게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자신을 억압하던 모든 것에서 벗어난 델마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자신을 할머니처럼 무기력하게 만들려는 아버지에 저항하던 델마는 동생을 얼음 속에 가둔 것처럼 잠결에 호수로 나간 아버지를 자연발화시켜 버린다. 동생이 갇혀있던 얼음. 여름 그 호수에 아버지는 그렇게 발화 된 채 잠겨버렸다. 그리고 평생 걷지 못하던 어머니의 다리를 만지는 것으로 스스로 일어서 걸을 수 있게 만든 델마는 그게 부모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사랑하지만 그래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아냐를 어린 시절 동생을 사라지게 하듯 어딘가로 가둬버린 델마. 아냐의 기숙사 창문에 끼어버린 긴 머리카락은 섬뜩한 공포심을 느끼게 할 정도다. 창안과 밖에 걸쳐있는 머리카락은 기묘한 경계 속에 있는 델마를 상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극단적 종교적 가치, 그리고 이에 반하는 동성애, 그리고 다양한 기제들이 가득한 <델마>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걸작이다. 단순히 여성주의 영화라고 치부할 수 없는 우리 시대 종교와 세상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과 함의들을 풀어내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매력적인 영화다. 


뱀파이어 영화의 새로운 해석과 가치를 보여주었던 <렛미인>과 기괴한 메디컬 호러물인 <킹덤>이 던지는 충격은 북유럽 영화의 힘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궁금해지게 한다. 영화 초창기 영화사적 가치를 만들어냈던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은 그렇게 최근까지 이어져 오는 듯하다. 


장르 파괴를 넘어 현 사회의 도덕적 규범까지 넘어서는 극단적 영화까지 만들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의 영화들 속에서 <델마>는 가장 정제된 형태의 현대 사회에 대한 종교적 고찰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영화를 종교 영화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종교라는 힘과 현대 의학으로 갇혀 있던 델마의 능력은 금기시하는 동성애를 통해 다시 발현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가득했던 억압을 쏟아내고 자신을 강제하던 아버지를 제거한 후 델마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활성화된 능력과 이를 통제하며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한 델마. 곱씹어 봐도 좋을 영화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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