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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NEWS 뉴스읽기

손석희의 앵커브리핑-눈이 부시게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

by 자이미 2019.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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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라는 배우가 왜 위대한지 보여준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12회로 종영되었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 이 드라마에 대한 뉴스룸 앵커브리핑은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다. 70대 후반 노배우의 모든 것을 담은 연기는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울림으로 다가온다.


온갖 찬사를 보내도 아깝지 않았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다시 곱씹어 생각해도 좋은 드라마다. 사회가 바라보는 나이든 이들에 대한 편견을 씻어내 준 그 따뜻한 시선이 너무 좋았다. 누구나 다 늙는다. 이를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도 없다. 우린 모두 늙을 수밖에 없는 운명일 뿐이다.


노동을 앞세운 시대 나라의 명운을 걸고 일을 해야 했던 시절 노인은 무의미한 존재였다. 힘을 쓸 수 없는 노동자들은 그저 '잉여인간' 정도로 취급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교육 받았다. 노동력이 절실한 사회에서 소외 받은 노인의 삶은 그렇게 사회에 각인되었다. 늙어 간다는 것을 추하게 만든 그 사회적 시선에 반기를 든 <눈이 부시게>는 그래서 소중하다.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저의 마지막 챕터일지도 모르는데 잘 여미게 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70대 후반의 노배우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오래전 무하마드 알리가 서울에 와서 방송사를 방문했을 때 모두가 그를 반겼으나 혼자 시큰둥해서 오히려 찬사를 받았던 사람… "저 사람이 알리구나…그냥 툇마루에 앉아 있었죠 뭐…"- 김혜자 배우, 2014년 12월 18일 JTBC '뉴스룸'그 일화에 대해 훗날 '그이가 누군지 잘 몰랐을 뿐이었다' 라는 시크한 대답을 돌려줬던 사람…"


"오래된 농촌 드라마를 통해 요즘은 흔하게 붙는 '국민 엄마'라는 애칭을 아마도 가장 처음으로 들었던 사람… 그리고 어느 날 시계를 잘못 돌려 칠십대 노인이 되어버린 스물다섯 살의 그… 사람들은, 나이든 혜자가 자글자글한 주름과, 삐걱이는 관절 대신 반짝이는 청춘의 일상을 되찾게 되기를 기대하고 기다렸지요. 그러나…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


"그 모든 베일이 벗겨지면서 사람들은 늙음에 대해, 주어진 시간에 대해, 알츠하이머라는 질병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됐습니다. 물론 그 보다 전에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사람으로 인해 그 병은 회자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나의 늙음이 죄가 아니라고 했던 또 다른 영화 속 대사처럼 늙음을 마치 형벌과도 같이 여기며 뒤로 내쳐버리고자 했던 세상… 그러나 모두에게는 언젠가 눈부신 젊음이 존재했으며 설사 그 반짝임을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오늘의 삶은… 늘 눈이 부신 시간이라는 잠언적인 메시지는 주름진 배우의 아름다운 연기를 통해 스미듯 먹먹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모든 고민과 함께 절망하던 이들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배우의 마지막 위안을 다시 한 번 전해드립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


"때로는 드라마 한 편이 백 번 천 번의 뉴스보다 사람들을 더 많이, 깊이 생각하게 해주고 그것이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가게 한다는 말에 동의하며… 배우 한지민 씨가 했던 표현을 빌리자면… 오늘의 앵커브리핑은 배우 김혜자 씨에 대한 헌사로 드립니다"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전문이다. 방송이 끝나기는 했지만 자사 프로그램에 대해 언급한다는 점이 못마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눈이 부시게> 정도라면 얼마든지 언급해도 나쁘지 않다. 아니 우리 사회가 이제 다시 눈이 부시게 그들의 삶을 돌아보고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80을 앞두고 있는 노배우가 밝힌 마지막 연기일 수도 있다는 그 다짐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알리에 대해서도 시큰둥했던 배우. 그저 몰랐기 때문이라는 그 솔직함은 시크함으로 다가온다. 애써 남들의 관심을 따라가려 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던 배우.


<전원일기>라는 장수 드라마를 통해 '국민 엄마'라는 별칭이 붙었던 김혜자. 그녀의 색다름을 보게 해준 것은 봉준호 감독의 <마더>였다. 기괴한 춤으로 해외에서도 호평이 이어졌던 김혜자의 연기는 단순히 매력적이다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강렬했다.


아들을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극단적 방식으로 그렸던 <마더>는 김혜자라는 배우가 얼마나 확장성이 좋은지 알 수 있게 했다. 어떤 배역이든 김혜자가 맡게 되면 달라질 수 있음을, 그리고 그 배우라는 이의 카리스마가 왜 중요한지 잘 보여주었다.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 이 대사는 모두를 각성시켰다. 단순한 타임워프 이야기라 치부한 모두를 부끄럽게 만드는 반전이었다. 25살 혜자로 다시 돌아가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동안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쫓은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한 방을 던진 반전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작가는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를 통해 시청자들을 홀렸다. 매력적인 배우들을 앞세워 마치 '피리부는 사나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지듯, TV 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집중하게 만들더니 '치매'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 단어로 소통하기 위해 그 긴 이야기를 풀어냈던 것이다.


눈이 부신 것은 젊음 만은 아니다. 평범한 일상을 반복적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순간 순간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시간들은 존재한다. 그걸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다른 이와의 비교로 그 반짝임을 놓치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애써 노인의 삶을 외면해왔던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주제는 그래서 <눈이 부시게>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 


어느 사회나 중심은 청춘이다. 노동력이 우선인 시대는 지났다. 힘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노동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노인이 청년을 압도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눈이 부시게>가 던진 화두는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가 잊고 있었고, 혹은 자각조차 하지 못한 우리의 미래이자 부모 세대의 현재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배우가 만들어낸 특별한 이야기가 이제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 차례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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