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알고 있는 아재들의 여행은 흥미롭다. 각자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이들이 모여서 여행을 하게 되면 일반적인 여행과는 다른 그 무언가를 얻게 된다. <알쓸신잡>이 제작된 의도가 여기에 있다. 여행이라는 큰 틀에서 <알쓸신잡>만의 특징은 바로 이런 수많은 지식들이다.
단종에서 큐브까지;
조선시대 힙합 김삿갓과 탄광에 얽힌 삶, 그리고 단종과 세조의 차이
첫 여행지인 안동을 시작으로 <알쓸신잡>은 두 번째 여행지로 영월을 선택했다. 영월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 하는 이들도 많다. 특별해 보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영월에는 수많은 의미를 품은 장소가 존재했다. 전국 방방곡곡 그런 사연 없는 곳이 없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영월에 김삿갓 기념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방송을 보고 처음 안 이들도 많았을 듯하다. 김삿갓은 알아도 그를 기리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도 많은게 사실이니 말이다. 김삿갓에 대해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이들이 이 방송은 많은 것을 확실하게 알려준 듯하다.
힙합이 대세인 시대, 김삿갓은 이미 오래 전부터 힙합이 내세운 가치를 모두 담고 있었으니 말이다. 1800년대 초반 사람인 김삿갓이 남긴 수많은 글들을 유시민 작가는 최고라 칭송했다. 황교익은 말장난 같다고 폄하했지만, 그런 언어적 유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했다. 대가만이 할 수 있는 장난이 가득하다는 유 작가의 말처럼 김삿갓의 시는 흥미롭다.
운율을 적극 활용하고, 그대로 읽으면 욕이 되고 한글의 뜻을 보면 전혀 다른 글이 되는 김삿갓의 유희는 많은 이들에게 큰 행복이었을 듯하다. 양반으로 태어나 방랑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이미 소설로도 등장했지만, 충분히 영화로 제작이 되어도 좋을 정도로 흥미롭기도 하다.
영월은 아니지만 근처에 있던 동원 탄좌를 찾은 유시민 작가에게 그 공간은 특별해 보였을 듯하다. 유 작가와 함께 했던 유희열에게도 그 공간이 주는 감동은 특별했다. 영업이 끝난 그 시점 모든 것이 멈춰버린 장소. 탄광은 한때 대한민국을 이끌던 핵심 산업이었다.
석유가 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석탄은 모든 경제가 가능하도록 만든 힘이었다. 연탄으로 제작되어 국민의 삶을 책임졌다. 화력발전소 원료로 전기를 만들고, 그렇게 공장을 돌렸다. 70년대 대한민국 경제를 이끈 핵심이었던 탄광은 그래서 특별할 수밖에 없다. 유가 하락과 시대 변화로 인해 탄광은 문을 닫았고, 이제 3곳의 탄광만 남겨진 상태다.
장동선 박사가 꺼낸 큐브에 대한 시각은 이런 세대간 갈등의 원인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정육면체 큐브이지만 사람이 볼 수 있는 최대의 면은 3개다. 한꺼번에 여섯 면을 모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큐브도 이런데 보다 복잡한 인간을 단순화시켜버리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는 너무 당연하다.
알고 보면 이해할 수 있지만, 보지도 않고 편견을 가진 채 살아가게 되면 모든 것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판단하게 만든다. 우리 시대 세대간 갈등 역시 그런 소통의 부재가 낳은 결과라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소통을 강조하는 문화는 많이 발전하고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한 소통은 결국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재의 신용카드 같았던 인감증에 얽힌 이야기는 탄광이 성행하던 시절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사북 사태는 전두환의 신군부에게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낮은 임금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정당한 요구를 하는 상황을 침소봉대해 자신의 권력을 고착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광주민주화항쟁 역시 동일한 의미였다는 점에서 신군부의 만행은 참 악랄했다.
"단종의 모든 유배지, 단종이 거쳐간 길 등 단종의 이야기가 있는 장소들이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세조가 움직인 곳에 대해 남은 것은 없다. 사람들이 단종을 기억하고 세조를 잊어버린 것은 정당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옳지 못한 방법을 선택한 것에 대한 단죄다"
"나쁜 방법의 희생양이라서 그 사람을 추모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단종의 길이 기억되고 있다는 것, 사람들이 오늘날도 찾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세조처럼 살면 안 된다는 것 같다"
오늘 방송에서 많은 이들이 특별하다고 여긴 부분은 유시민 작가의 단종과 세조에 대한 정의였다. 단종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버지인 문종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12살이던 어린 아이는 단종이 되었다. 하지만 왕이 되고 싶었던 수양대군에 의해 유배를 가야만 했다.
그 유배지가 바로 영월에 있다. 배를 타지 않고는 들고 날 수 없는 천연 감옥에 갇힌 어린 단종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자명하다. 많은 이들이 단종을 기리는 이유는 그렇게 억울하게 왕위에서 끌어 내려져야 했고, 아버지처럼 짧은 생을 살고 마감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후에 세조가 된 수양대군 입장에서는 어린 왕을 조종하려는 무리들에게서 그를 보호하고 조선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다. 실제 그가 이룬 업적을 생각해보면 대단하다. 하지만 그런 위대한 업적을 세웠음에도 세조는 후대에 그 어떤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이 잘못되어도 괜찮은가의 질문이 제기된다" 근원적인 철학적 질문이 이 상황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목적이 정당하다면 옳지 않은 수단을 써도 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라 했다. 세조가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지고 일을 했다 해고 옳지 않은 수단이었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도 그렇지 않은가? 박정희 신화에는 수많은 거품들이 존재한다. 거짓말과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비리를 애써 감춘 채 박정희가 근대화를 이끈 절대자라 칭송하는 자들이 많으니 말이다. 세조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가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나쁜 수단은 역시 많은 이들에게 분노로 다가온다.
지난 겨울 촛불이 그 큰 광장을 가득 채운 것 역시 잘못된 수단으로 목적을 정당화하려는 자들에 대한 분노였다. 그런 점에서 유시민 작가의 단종과 세조에 대한 분석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알쓸신잡>은 여전히 흥미롭고 재미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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