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roadcast 방송이야기/Variety 버라이어티

알쓸신잡2 4회-조선시대 유배 1번지에서 본 강진 청자에서 정약용까지

by 자이미 2017. 11. 18.
반응형

남해 여행을 하던 아재들은 해남과 강진 여행을 이어갔다. 해남 땅끝 마을과 강진 청자가 존재하는 그곳에 대한 여행 정보는 그렇게 많지 않다. 스터디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처음 시작한 해남과 당진은 그렇게 많은 것들을 품고 있는 명품 여행지였다. 


봉수대와 인류의 진화;

도자기로 바라본 세계사, 조선시대 다빈치 정약용과 윤선도가 만든 천국 보길도



3년 반이 넘게 침묵과 아픔의 공간으로 남겨져 버린 진도. 그 진도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가득 담았던 유시민 작가의 마음은 참 곱다. 팽목항은 추모의 공간이 되었다. 국가가 침몰하는 배를 방치하는 순간에도 그곳의 어부들은 선단을 이뤄 구조를 하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초기 제대로 구조 작업이 이어졌다면 그 많은 희생자는 나올 수 없었다. 국가는 침몰하는 배의 사진만 요구했고, 현장에 있던 어부들은 아이들을 구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남겨진 그들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너무 큰 슬픔을 품고 사는 유가족들을 보며 진도 사람들은 함께 울어야 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풍성하지 못한 그 지역에서 관광은 중요한 사업이다. 하지만 지난 3년 반 동안 진도는 침묵의 도시가 되었다. 남도의 풍성한 음식과 진도의 다양한 볼거리는 차마 찾을 수 없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기다. 유 작가가 이야기를 했듯, 이제는 일상 속에서 추모하고 함께 기억하는 방법을 새롭게 찾아야 할 시점이다.


1박 2일 여행이 된 그들의 다음 행선지는 땅끝 마을이 있는 해남과 강진이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시작이기도 한 이 곳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저 땅끝 마을만 기억하던 이들에게는 풍성하고 행복한 여행기가 되었을 듯하다. 


여행은 많은 것들의 종합이다. 그 중 먹는 것에 대한 갈망은 어쩔 수 없는 필수다. 아재들의 여행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그 지역의 먹거리다. 해남에서 유명하다는 통닭집을 향한 아재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통닭'의 개념을 파괴한 '닭 한 마리' 요리는 풍성함 그 자체였다. 해남이 아니라면 맛 볼 수 없는 맛깔스러움 역시 여행의 별미였다. 


각자 여행이 익숙해진 <알쓸신잡2> 멤버들은 해남과 강진으로 나뉘어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각자 여행을 하고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여행을 이야기 하는 방식은 하나의 틀이 되었다. 청자에 담긴 맛깔스런 남도 음식들은 그 자체가 진수성찬이었다. 


고려청자와 강진청자. 강진이 청자로 유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흙과 숲으로 언급되었다. 도자기는 흙이 관건이다. 좋은 흙이 곧 좋은 청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여기에 1700도가 넘는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나무들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 청자 이야기는 다양한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서양의 생각 자체를 바꾼 것은 도자기 속 그림이었다는 유현준 교수의 풀이는 흥미로웠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는 유럽에 수출이 되었다. 당시에는 유럽에서 도자기를 만들 수 없었다고 한다. 도자기를 구울 흙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문물인 도자기를 선호하던 그들은 도자기에 그려진 정원에 매료되었다. 


3인칭 시점에서 조성되던 유럽의 조경 문화는 도자기로 인해 1인칭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도자기 수입이 어려워지자 일본에서 도자기를 수입하게 되었고, 포장지에 그려진 그림은 고흐와 모네 등 당시 최고의 화가들을 매료시켰고, 그림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일본이 아닌 조선이 도자기 수출의 1번지가 될 수 있었는데 그게 아쉽기도 하다. 


도자기 등을 수입하던 동인도 회사에 다니던 하멜은 배가 침몰하며 제주에 표류 되었다. 그렇게 13년이란 긴 시간 동안 조선에 머물러야 했던 하멜 일행. 그리고 앞서 자리를 잡은 네덜란드인 박연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하멜 표류기'는 조선 여행기가 아니라, 동인도 회사에서 못 받은 임금을 받기 위한 서류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언어를 몰라도 사람은 살 수 있다. '거울뉴런'을 통해 표정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시초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박연이나 하멜만이 아니라, 신라 출신의 승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방랑자의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한다. 수많은 나라를 직접 다니며 얻은 지식들을 담은 이 책을 보면 당시 이방인이자 방랑자인 이들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시각을 엿볼 수 있게 하니 말이다. 


조선 시대 가장 잘 놀았다고 이야기하는 윤선도의 모든 것이 담긴 보길도는 흥미로웠다. 엄청난 부잣집 아들이었던 윤선도의 삶은 귀향이었다. 성균관 유생 시절부터 유배를 다니기 시작했던 윤선도는 인조 아들의 선생이라는 이유로 궁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귀향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삼전도 사건'은 윤선도의 삶도 바뀌게 만들었다. 탁월한 문인이었던 윤선도는 그렇게 제주로 향하다 발견한 보길도를 자신의 천국으로 만들었다. 온돌까지 있는 세연정이 있는 녹우당, 그리고 '어부사시사'와 '오유가'가 보여준 진짜 가치는 당시만 해도 귀족들은 꺼렸던 한글로 쓴 명시들이었으니 말이다. 


유 작가에 의해 '조선의 다빈치'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며 조선시대 최고의 천재라고 칭하는 정약용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천재였을 듯하다. '배다리'를 만들어 왕에게 한강을 건널 수 있는 자유를 주었고, '거중기'를 통해 수원화성을 세웠다. 


왕과 사대부의 합의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뒤주에 갇혀 숨진 아버지를 둔 왕 정조는 무시를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신들은 사대부와 힘 겨루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던 정조에게 정약용은 최고의 인재였다.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에 모시고, 그곳을 찾기 위해서 건너야만 하는 한강. 왕의 위엄까지 잃지 않으며 사대부에게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보이도록 한 것이 바로 '배다리'였다.


지금은 군대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작업이지만, 배를 붙이고 그 위에 편편한 나무를 만들어 왕이 편하게 강을 건널 수 있도록 한 정약용의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정조의 사망 후 천주교를 이유로 유배를 가야만 했던 정약용은 '단산초당'에서 제자들과 함께 수많은 책들을 만들어냈다. 


아이들을 위한 한자 공부 책부터 시작해 그 유명한 '일표이서'는 지금도 많이 읽히는 책들이다. 경세유표, 목민심서와 흠흠신서로 조선시대를 제대로 혁신하기 위한 책을 썼던 정약용이었지만, 유배 당한 그의 책이 국가의 지표로 삼을 수는 없었다. 


땅끝 마을에 만들어진 봉화대를 통해 최초의 텔레커뮤니케이션 도구라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장 박사는 봉화를 신경세포라고 표현했다. 로마는 물을 모았고, 파리는 하수도를 뉴욕은 엘리베이터와 전화기를 만들어 대도시를 만들었다는 정리도 재미있었다. 대도시가 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은 그렇게 발전해왔으니 말이다. 


대도시 성장 과정이 생명체 진화와 유사하다는 유 교수의 이야기 역시 재미있었다. 21세기 도시 단계는 중추신경으로 발전하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생명체의 진화와 도시 발전을 흥미롭게 이끄는 <알쓸신잡2>는 역시 흥미롭다. 뉴런과 디지털은 모두 0과1로 이뤄져 있다. 


봉수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인류 전체의 모습으로 확장되는 지적 만찬은 그래서 유쾌하다. 보다 입체롭고 다양한 시각들이 표현되는 <알쓸신잡2>는 여전히 유쾌하고 흥겨운 여행기이다. 조선시대 유배 1번지인 그곳은 그래서 수많은 천재들의 도시가 되었다. 그들이 남긴 그 유물은 그렇게 가장 오지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많은 제보들이 들어오고 있는데 일부 유튜버들이 블로거들의 글을 무단으로 사용해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블로거 분들은 이 점 유의하시고 경고를 해주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시정 되지 않으면 제보가 들어온 사이트 공개하겠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