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남류가 아닌 어남택이 되었다. 다른 시리즈와 달리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가 낮기는 했지만 시청자들에게 남편 찾기는 분명 흥미로운 요소였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 드라마는 '가족'을 위한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까지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덕선과 택이의 사랑;
보라와 선우는 동성동본, 동일의 은퇴와 미란의 폐경 인생 2막을 시작하다
기자와 국회의원들까지 스포일러의 주범으로 이끌었던 <응답하라 1988>의 덕선 남편은 최택으로 결정되었다. 결정이 난 후 돌아보면 누구라도 그럴 듯하게 여겨진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이상할 것은 없다. 이런 다채로운 선택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아닌 쪽을 보면 의구심을 품을 수 있는 아쉬움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응답하라 1988>은 다른 시리즈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점은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가족'에 집중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남녀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보다 가족 전체에 대한 이야기가 핵심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덕선 남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보너스처럼 다가왔다. 물론 제작진들이 준비한 보너스가 정품을 넘어서는 가치로 변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정환이 덕선의 남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았지만 오늘 방송을 보면서 결국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늘어놓고 그 중 하나를 취하는 제작진 특유의 방식은 이번에도 누가되든 크게 다르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정환의 후회와 반성이 새로운 도전이 아닌 완벽한 포기라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을 뿐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출연하는 모든 이들은 너무 착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뭔가를 만들 수는 없으니 말이다.
꿈이라고 생각했던 택이 방에서의 키스는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택이는 몰랐던 사실을 6년이나 지나서 솔직하게 고백한 덕선. 그런 덕선에게 다시 다가가 키스를 하는 택이의 모습에서 이들의 운명은 결혼 외에는 없음을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현재 시점에서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도 그들의 첫 키스를 1989년과 1994년으로 엇갈린 이유는 꿈과 같았던 첫 키스와 베이징 호텔에서의 키스의 차이일 뿐이니 말이다.
누가 되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택이가 아닌 정환이기를 원했던 이유는 흐름 전체가 그를 향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극 후반으로 가면서 택이에게 더 무게 중심이 넘어가기는 했지만 이는 마지막 반전을 위한 균형 맞추기 정도로 보였다. 그런 그들이 갑작스럽게 6년 전 꿈이 실제 키스였음을 아는 순간 더는 친구가 아닌 연인이 되는 과정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라는 마음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지만 드라마는 다른 방식일 수밖에 없다. 하나의 만들어진 이야기 속에서 어떤 식으로 표현되어지느냐에 따라 시청자들과의 소통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무리 떡밥이라고는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과하게 상황을 몰아갔다. 전편들과 다른 결말에 대한 집착이 강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위성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큰 것은 사실이다.
택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역설적으로 정환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타이밍과 간절함의 차이가 곧 결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마지막 기회마저도 장난스러운 고백으로 치부한 정환에게는 더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단 의미다. 그렇게 자신의 첫사랑은 가슴에 묻는 방식으로 정리해버린 <응답하라 1988>의 덕선 남편 찾기는 의외로 허무하게 마무리 된 셈이다.
덕선 남편찾기 보다 더욱 의미가 크게 다가온 것은 부모님들의 인생 2막이었다. 평생을 다니던 은행에서 명퇴를 당한 성동일과 여자로서 가장 괴롭다는 폐경기를 맞이하는 라미란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상고를 나와 은행에 취직했던 동일은 열심히 일했다. 물론 진급을 위해 보다 노력하지 못한 것은 그의 한계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동일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쓸데없는 물건을 마구 사들이고 친구를 믿었다 반지하 살이로 평생을 살아야 했던 동일에게 만년 과장은 숙명이었다. 그런 그는 시대의 흐름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명퇴를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이들 결혼시키기 전에는 무조건 은행에 붙어있으라는 부인의 말을 듣기 위해 철야 근무까지 하며 버텨냈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그렇게 명퇴를 당한 날 동일은 차마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동네 평상에 정신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누구보다 남편을 이해하는 부인 일화는 힘겨워하는 동일 곁에서 그를 위로해준다.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일화는 아이들에게 "아빠 이제 은행에서 졸업했다"는 표현으로 마지막을 알렸다. 명퇴나 잘렸다는 단어가 아닌 '졸업'이라는 표현을 통해 남편의 길고 힘든 시간을 위로하는 일화만의 방식은 참 보기 좋았다. 애써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기에 여념이 없던 동일. 그런 동일이 퇴임식을 하는 날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리며 꽃다발을 전해주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쌍문동 동네 사람들은 그저 이웃이 아닌 말 그대로 이웃사촌이었다. 이제는 많이 큰 진주가 꽃다발을 전하고, 간발의 차이로 늦은 성균은 큰아들을 타박하며 동일의 퇴임을 축하해주었다. 동네 사람들의 퇴임 축하보다 못한 은행에서의 행동이 안타까웠던 아이들은 자신들에게는 영웅인 아버지를 위해 감사패를 만든다.
폐경이라는 것을 감지한 미란은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갑작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는 변수들에 대한 대비였다. 호르몬 분비가 달라지며 감정기복이 심해지는 그 시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미란이었지만 실은 누구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미 1년 전 그 경험을 했던 일화는 두 딸들이 열심히 챙겨주며 힘든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힘들었다는 일화에 비하면 미란은 홀로 그 감정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딸은 없지만 미란에게는 언제나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남편 성균이 있고, 말 잘 듣는 두 아들이 있었다.
미란의 생일날 특별한 기억을 남기게 해주려던 정환은 우연한 기회를 살린다. 결혼식 피로연이 취소가 되면서 모든 것이 남겨졌다는 동룡의 말이 정환은 반가웠다. 가족들과 찍은 사진들마저 돌려놓을 정도로 자신이 살아왔던 삶에 대해 힘겨워하는 엄마.
힘들게 살아왔던 그분을 위한 정환의 선택은 결혼식이었다. 사진 속 두 분은 정식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합성한 사진으로 대신했다. 가장 힘들게 버티며 살아왔던 두 사람은 정봉이의 복권 하나로 전혀 다른 세상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달라진 삶이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열심히 살았고, 주변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에 가장 큰 기쁨을 느끼던 이들이었다.
너무 사랑스러운 그들을 위해 정환은 주변사람들과 짜고 동룡의 식당에서 작은 결혼식을 치러준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평생 그런 기분 한 번 느껴보지 못했던 아빠 성균과 엄마 미란을 위한 아들의 작은 이벤트는 감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 과한 감정과잉이라는 느낌도 들었지만 폐경을 맞아 힘겨워하는 엄마를 위한 아들의 선물로서는 최고였다.
젊은 날 승승장구하던 동룡의 엄마 역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손주들을 보며 스스로 늙어가고 있음에 힘겨워하던 그녀는 누구의 엄마가 아닌 자신의 이름 조수영으로 살아가고 싶어 했다. 마음과 현실의 괴리감으로 인해 힘겨워진 그녀는 가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다시 밝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가족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뚝뚝해 보이고 실없어 보이기도 했던 학주 재명은 속이 깊은 남편이었다. 마음이 편해질 수 있도록 모른 척 그녀의 가출을 받아주고 손주 보는 일을 자신이 떠맡아주는 배려는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 힘으로 다가왔다. 누구나 힘겨운 시간들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누구에게나 위기는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가장 큰 힘은 역시 가족이다.
보라와 선우가 연애 중이라는 사실은 그들이 함께 하고 있던 커플반지로 인해 알려지게 된다. 선남선녀에 법조인에 의사라는 직업의 만남이라는 점에서도 모두에게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두 가족이 반대하는 이유는 동성동본이 가장 크게 다가온다. 여기에 보라의 강한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선영의 마음은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밖에 없다. 무성과 함께 살기는 하지만 법적인 가족으로 합하지 못한 그들이 최씨 성을 가진 무성의 가족이 되면 동성동본 문제도 가볍게 해결되니 말이다.
덕선의 남편 찾기의 혼선보다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온 동일과 미란의 인생 2막. <응답하라 1988>은 그저 젊은 주인공들의 사랑보다는 가족 전체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절망을 안긴 어남택이 되기는 했지만 그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전편에 이어져온 가족에 대한 사랑이 뜨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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