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감동으로 복고 열풍을 다시 이끌고 있는 <응답하라 1988>은 역시 달랐다. 개인을 넘어 가족의 정과 사랑을 품고 있는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단어 속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감동은 1, 2회를 잠식했다.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랑이라는 단어. 그 지독할 정도로 애절한 가족이라는 이름은 감동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다.
좁은 골목길에 대한 추억;
성동일과 박보검 엄마라는 존재가, 단순한 과거 추억을 넘어선 감동 응답하라 시리즈 완결판
아주 어렸던 시절 중앙시장 근처 골목에서 살던 기억이 이 드라마를 보면 새록새록 쏟아난다. 좁은 골목에서 동네 친구들과 함께 놀던 기억. 동네 만화방과 골목 한 귀퉁이에 있던 달구나 장수. 한 집에 많은 가족들이 함께 살던 시절이었지만 부족해서 모두가 행복했다. 경계도 없고 서로를 아끼며 나누던 시절. 가난했지만 서로를 챙겨주던 그 시절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다시 살려내고 있다.
계단을 걸어올라 이어지는 골목 그 어딘가에서 살던 아이가 생각나는 감정은 한 둘이 아닐 듯하다. 공간이 서울이든 어디이던 80년대를 살아왔던 이들에게 그 공간이 주는 가치와 추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낡고 보잘 것 없었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값지고 사랑스러웠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감정은 결국 현실에 대한 불만이 가져 온 결과일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 제작진들이 영특한 이유는 세 번째 시리즈에서 그들의 선택 때문이다. 과거를 추억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것은 사람과 문화가 아닌 골목이라는 공간이 주는 가치였다. 골목으로 통하는 그 시대의 문화는 곧 80년대를 대표하는 우리의 정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골목은 곧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관계가 곧 <응답하라 1988>이 담고 싶고자 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환경을 가진 집안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금은방 골목의 정서는 이제는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가치로 다가온다.
덕선이 너무나 좋아하는 할머니의 잛은 방문. 그리고 이어진 갑작스러운 죽음. 항상 티격 대며 싸우기만 하던 언니 보라는 차분하게 어린 두 동생을 데리고 할머니의 집으로 향한다.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어린 동생들을 다독이며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당황한다.
할머니의 집이 아닌 거 같다며 당황하는 아이들에게 다가온 풍경은 그들이 상상했던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숙하고 애도하며 눈물이 가득할 것으로 여겨졌던 상가집이 아니라 왁자지껄한 시장통 같은 그곳에는 할머니의 죽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아빠 걱정을 많이 했던 덕선 역시 너무 해맑게 웃으며 손님을 맞고 있는 모습이 낯설게 다가올 정도였다. 자식들을 불러 친척 어른들에게 자랑하기에 바쁜 아빠. 그렇게 손님을 맞이하는 낯선 모습을 보면서 덕선이 느끼는 괴리감을 클 수밖에 없었다. 마치 사이보그처럼 웃기만 하는 아빠의 모습이 배신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보고 싶은 할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셨는데 이렇게 웃고 떠들고 하는 아빠를 상상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날을 세우고 그렇게 할머니를 지키던 아버지의 진짜 모습은 마지막 날 미국에서 힘들게 온 큰 아빠의 등장에서였다. 장남인 형이 오지 않은 상가집에서 애써 슬픔을 참아가며 상주 역할을 해야만 했던 아빠와 고모들. 그렇게 그들은 어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자신이 슬퍼하면 안 되는 현실 속에서 찾아주는 이들까지 상주들이 아파하지 않도록 열심히 자리를 지켜주는 문화를 덕선은 알 수 없었다. 믿었던 아빠에게 배신감까지 가졌던 덕선은 뒤늦게 온 형을 붙들고 하염없이 우는 아빠와 고모들을 보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그들은 사이보그가 아니라 애써 눈물과 아픔을 참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슬퍼도 슬퍼할 수 없는 어른들의 마음은 덕선은 미처 알지 못했다. 장례 문화마저 낯선 동일네 아이들에게 할머니의 장례식은 그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음을 그렇게 배워나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립기만 하던 동일은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술과 멀어지기 어려웠다.
중국에서 다시 우승을 하고 돌아온 택이에게 술친구를 해달라며 먹먹한 마음을 달래던 동일은 같은 처지인 택이에게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언제냐?"라고 묻는다. 어른의 시각에서 동질감을 얻기 위한 동일의 질문에 택은 "엄마는.. 매일요"라는 답변은 다시 울컥하게 만들었다. 친구들과 달리 어른스럽기만 했던 택이지만 그 역시 크게 다를 것 없는 18살 어린 소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감동을 가득 담았던 오늘 이야기에서도 재미 역시 놓치지 않았다. 대학생 언니의 옷이 탐난 동생 덕선은 토요일 언니가 늦게 온다는 사실을 알고 청재킷을 입고 학교에 간다. 하지만 그 불안한 기운은 언제나 현실이 되고는 한다. 평소와 달리 일찍 집으로 돌아온 보라가 옷을 찾기 시작했고, 급기야 덕선이 입고가 청재킷을 찾는 순간 숨이 가파르고 상황을 대처하는 엄마의 움직임은 빨라졌다.
올림픽 100m 결승과 함께 이어지는 이들의 긴박한 상황은 하나의 몽타쥬로 완성되었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자매와 기센 누나들로 인해 주눅든 어린 동생. 그런 딸들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은 이상할 것도 없는 우리네 모습 그 자체다. 죽일 듯이 싸우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가족이 되어 든든하게 지켜주던 그 모습 말이다.
공부를 잘하는 선우나 정환도 놀기 좋아하는 동룡이도 사춘기는 다르지 않다. 미성년자 관람불가인 영화를 보기 위해 군복까지 입고 입성한 이들이 결국은 학년주임 선생에게 걸려 혼나는 장면은 이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다. 이 과정에서 항상 문제였던 선배가 선우가 가장 아끼는 아버지 유품을 건들고 이에 분노해 폭발한 정환의 모습 역시 친구이기에 가능했던 용기였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해주던 골목 친구들의 우정은 그래서 더 정겹게 다가온다. 이제는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진정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다. 언제나 자신만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 믿고 편하게 잠들지도 못하고 아들을 기다리다 졸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선우는 아직 먹지 않은 도시락을 조용하게 먹기 시작한다. 동네 사람 모두가 음식 맛없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런 엄마의 요리마저 맛있게 먹는 아들 선우의 모습에서 울컥해지는 것은 어쩌면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덕선의 남편은 누구일까? <응답하라 시리즈>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다. 과거를 회상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재미있는 추리를 하나의 전통으로 만들고 있는 그들에게 이번이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2015년 현재의 덕선과 남편은 존재하지만 1988년 그들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누가 과연 덕선의 남편이 누구인지 궁금하게 한다.
초콜릿을 전해준 이가 덕선의 남편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성균이 찍던 캠코더에 덕선의 행동이 담겨져 있었다. 그 상황만 보면 선우가 덕선의 남편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상황을 더욱 비틀어 놓는 현재 시점의 인터뷰가 존재하지만 말이다.
<응답하라 1988 2회 : 당신이 나에 대해 착각하는 한 가지> 소제목에서 오늘 방송의 핵심은 명료하다. 자식들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은 낡아서 버린 동일네 꽃병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가 나고 더는 사용 가치가 없어 버려진 꽃병은 어머니 집에서도 꽃병으로 사용되었다. 그저 동일의 어머니가 낡은 것도 버리지 못하는 취향이 아니라 그 꽃병에 세겨진 아들의 이름 때문이었다.
아들 회사인 은행에서 준 아들의 이름이 새겨진 꽃병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노모에게 그 낡은 꽃병은 아들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점에서 장례식 장에 당당하게 서 있던 꽃병은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쌍문동 골목에 이사 온 어린 택이.
말 수 없고 조용하기만 하던 택이는 장난꾸러기 친구들로 인해 팔도 부러지는 등 힘든 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이 택이에게는 전부였다. 팔이 부러진 자신을 위해 가방을 들어주고 어린 시절에는 자신의 전부이기도 했던 딱지를 한 웅큼 건넨 친구들. 그것도 모자라 업어 주겠다고 덤비는 덕선까지 낯선 곳에 이사온 수줍은 택이는 그렇게 친구가 되어갔다.
단순하게 과거의 그 시대만을 추억하게 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장례식 장에서 뒤늦게 도착한 형을 보고 오열하는 성동일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딸을 위로하기만 하던 아빠가 형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는 과정에서 표정이 변화는 과정은 성동일이기에 가능했던 감정 연기였다.
성인 연기자만이 아니라 동네 말썽꾸러기 친구들까지 누구랄 것 없이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섬세한 연기력과 작은 소품 하나에 감정과 시대를 담아낸 <응답하라 1988>은 앞선 시리즈를 이어 모든 것을 완성하는 종결자와 같은 가치를 품고 있다. 이미 우리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1988년에 흠뻑 빠져버렸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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