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기억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김철희는 자신의 딸인 현정을 보자마자 해맑게 웃으며 "현정이다"라고 외칩니다. 마치 기억이 다시 돌아온 듯한 모습이었지만, 유명 아나운서였던 현정에 대한 단순한 반응이라는 사실은 작가의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느끼게 하는 과정 중 하나였습니다. 조금씩 드러나는 실체들 사이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하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점점 흥미롭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돌이가 불러올 파장;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등장인물들과 교묘하고 절묘하게 엮어내는 이야기의 힘
방송국에서 우연하게 마주한 김철희와 김현정. 두 부녀 사이의 운명적인 재회는 의문과 궁금증만 증폭시켰습니다. 현정은 보는 순간 이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일 수도 있음을 직감합니다. 모란이 우연하게 길에서 철희를 보는 순간 느꼈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딸이라는 점에서 현정은 더욱 세밀하게 철희를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현정이 우연하게 아버지를 만나게 되며 혼란스러워하는 것과 달리, 집에서는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교묘하게 현정의 감정을 역으로 받아 행복한 모습에 어쩔 줄 모르는 순옥과 모란의 장면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절묘했습니다. 이불 호청을 개는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으며 힘자랑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제는 친자매라고 해도 나쁘지 않을 정도로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김철희의 등장과 현정이 그를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묘한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너무나 행복하고 밝은 순옥과 모란의 관계는 결국 더욱 큰 고통을 낳을 수밖에 없는 복선이라는 점에서 이후 이야기를 기대하게 합니다. 기차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철희. 그리고 그곳에 함께 있었던 모란 사이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니 말입니다.
마리를 사랑하는 두 남자 루오와 두진은 배다른 형제라는 사실이 오늘 방송에서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어머니에 반기를 들고 집을 나와 혼자 사는 루오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두진은 여전히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어머니에서 태어났지만 친형제처럼 잘 지내는 이들 형제에게 걸림돌은 마리였습니다. 운명의 장난처럼 두 형제가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되어버린 현실은 끔찍함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 총무의 실체를 알게 된 종미의 활약도 기대해 볼만 합니다. 이미 시청자들은 알고 있었지만 등장인물들은 미처 눈치 채지 못한 박 총무의 이중성을 술에 취한 종미는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이득을 위해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박 총무는 이미 순옥의 레시피를 훔치다 모란에게 들키기도 했었습니다.
조금씩 자신의 정체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도 불안한데 수제자라는 자신의 지위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던 현숙이 그 자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가기 어려운 순옥의 요리솜씨를 딸인 현숙은 타고난 것처럼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불안요소들은 어느 순간 폭발할 수밖에 없고 그 상황이 과연 언제 등장할지도 궁금해집니다.
전반적으로 불안과 초조가 지배했던 11회에서는 순옥의 요리를 배우기 위해 처음으로 찾은 나말련의 등장으로 더욱 강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자리가 빈다는 사실을 알고 순옥에게 부탁해 요리 수업에 들어가게 된 모란은 우연하게 말련이 그 수업에 참여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하필 이 상황에 현숙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말련에게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불어로 상황을 모면하는 모란은 고민만 커집니다.
순옥의 요리 수업을 둘러싼 긴장감은 모란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두진의 어머니가 첫 수업을 한다는 소식에 인사를 하러 바쁘게 움직이던 현숙의 상황은 더욱 긴박함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문학과 두진은 현숙을 경멸하고 모멸했던 교사가 나말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녀가 순옥의 요리 교실에 갔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에 현숙을 붙잡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백방으로 노력을 해도 현숙을 막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집으로 들어선 그녀를 막은 것은 바로 종미였습니다. 전날 술에 취해 박 총무의 실체에 대해 의심을 품었던 종미는 사우나에서 상처 입은 팔뚝을 보고는 분노해서 집을 찾았습니다. 분노한 종미로 인해 엄마의 요리 교실이 엉망이 될 것이 두려운 현숙은 절친을 잡아끌고 집밖으로 데려갔고, 그렇게 충격적인 만남은 빗겨가게 되었습니다.
현숙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한 번 봤던 순옥과 말련 역시 서로 익숙한 얼굴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현숙과 관련된 만남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과거와 연결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단순한 과정이지만 어떻게 묘사를 하느냐에 따라 긴박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음을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잘 보여주었습니다. 현숙과 말련의 만남을 예고하고 빗겨가게 하는 과정이 이렇게 손에 땀을 쥐게 할 수도 있음이 반갑게 다가왔습니다.
기술적이며 작가의 기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현숙의 흩날리는 머릿결을 보면서 구민은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빠져듭니다. 현숙과 단둘이 과외를 하던 그 무덥던 어느날 졸던 현숙의 머리가 선풍기 바람에 날려 청년 구민을 자극했습니다. 졸려 버티던 팔이 구민의 팔과 닿는 순간 놀라는 장면은 사랑이었습니다.,
선풍기 바람에 날리는 현숙의 머리칼은 천천히 움직였고, 팔이 닿던 순간은 섬광이 터지듯 구민을 자극했습니다. 그 선풍기는 마치 탱크 소리를 내듯 움직이고 있었고, 모든 미세한 움직임들까지 모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해진 구민의 감정을 완벽하게 담아낸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시간과 시각, 그리고 사운드까지 왜곡된 장면은 영화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장면화였지만, 드라마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미장센이었다는 점에서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보는 순간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했던 현정은 점점 그 생각이 확신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개를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현돌이"라고 부르는 미남은 분명 자신의 아버지였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이 키우던 개. 그리고 그 개집을 지어주면서 이름을 지어주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현'자 돌림을 강아지에게도 전하며 '현돌'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동치미 냉면'을 좋아한다는 말에 현정은 엄마가 직접 만든 '동치미 냉면'을 미남이 할아버지에게 맛보게 합니다. 유명한 냉면집에서도 타박만 한 채 먹지 않던 미남이 할아버지는 현정이 가져 온 '동치미 냉면'을 먹으며 너무나 행복해 했습니다. 자신이 찾던 것이라며 말입니다. 안국동과 이제는 사라진 방앗간, 그리고 엄마가 잘 해주던 동치미 냉면, 그리고 가족들만 알고 있던 강아지 이름 현돌이. 이 모든 것이 한 남자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확신을 가지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죽은 아버지가 살아 돌아왔음에도 현정은 마지막으로 DNA 검사를 의뢰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청한 이 검사에서도 미남이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필 그 검사 결과가 나온 날 이문학 대표가 집을 방문한 날이었고, 아버지를 찾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밝히지 못한 채 식사자리에서 오열을 하는 현정으로 인해 상황은 묘하게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현정이 미남이 할아버지가 죽었다고 알고 있던 아버지 철희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세컨드라는 의미를 안국동에서 두 번째로 예쁘다는 의미라고 말하는 순옥. 그렇게 집안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상황에서 다시 아버지가 그 안에 들어서며 벌어질 파장을 현정은 우려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조금씩 감춰져 있던 실체들이 드러나고 이로 인해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게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마리가 녹음했던 내용이 자신이 아니라 우연하게 목격한 두진과 마리의 모습을 보고 곡해하는 루오의 모습도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배다른 형제가 한 여자를 두고 싸울 수도 있는 상황은 서글플 수밖에는 없으니 말입니다. 정교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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