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작정하고 만든 드라마 ‘파친코’가 3월 25일 서비스되었습니다. 애플 TV의 1회 편성을 깬 파격적인 방식으로 첫 주 3화까지 공개되며 매주 금요일 한편씩 공개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미 서비스 전 이 작품을 본 해외 유명 평론가들은 호평을 쏟아냈습니다.
수많은 언론에서 ‘파친코’에 대한 호평에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접했지만 시작과 함께 공감을 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김민진 작가의 원작이 워낙 걸작으로 호평을 받은 상황에서 유려한 영상까지 더해지며, 상상이 현실이 되는 듯한 환상을 맛보게 했습니다.
영상미 역시 뛰어났고, 배우들의 조합이나 연기 역시 최상이었습니다. 예고편이 워낙 좋아 오히려 불안했지만, 예고편이 전부인 작품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완벽한 예고편을 매회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니 말이죠.
예고편의 감각적인 부분들이 보다 세밀하고 섬세하게 그려지며 극에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애플 TV에서는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제작비 천억이라는 언급이 이해가 될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이야기는 선자가 태어나기 전인 1910년도 어머니의 이야기로 시작해, 1989년 미국에 있던 선자의 손자인 솔로몬이 인종차별에 분노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골칫거리인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일본으로 오며 할머니가 된 선자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어머니 없이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힘겹게 살던 선자 엄마 양진은 불구인 남자에게 팔려가듯 시집을 갔습니다. 몸은 불구이지만 착한 남편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첫 아이가 사망한 후 절망에 빠진 양진은 아이를 갖기 위해 무당을 찾았죠.
무당 때문은 아니겠지만 양진은 딸 선자를 낳았고, 부부는 딸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배운 것 없지만 딸을 위한 부부의 사랑은 지극정성이었죠. 특히 아빠는 딸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희생할 준비가 된 딸바보였습니다.
어린 선자가 물질을 배운다며 바다에 나가 홀로 바다로 잠수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밖에서 함께 호흡을 멈추는 장면은 울컥함으로 다가왔죠. 자신이 더는 참을 수 없어 숨을 내뱉어도 나오지 않는 딸을 위해 선자를 외치며 바다로 들어가는 아버지와 그제 서야 나오며 "아빠 나 잡았어"라고 웃는 선자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왜놈들의 약탈과 폭압적인 지배에 맞서야 하는 삶은 척박할 수밖에 없었죠. 그럼에도 선자 가족은 작은 행복에 충실했습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양진은 하숙을 쳤고, 그렇게 부자는 아니어도 선자를 강하게 키울 수 있었죠.
아빠는 선자를 학교에 보내려 했지만, 엄마는 여자는 공부할 필요 없다며 학교보다는 집안일하기 원했죠. 영특한 선자로서는 아쉽지만 절망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죠.
비록 글을 깨우치지는 못했지만 영특했던 어린 선자는 하숙하는 아재의 거래도 돕고, 술을 마시며 조국을 빼앗긴 이의 울분을 토해내는 아재의 모습은 당시를 잘 그려냈습니다. 문제는 그런 발언들마저 일본 순사들의 처벌 대상이라는 점은 엄마의 불안을 키웠죠.
불안해하는 엄마를 위해 아재에게 은밀하게 떠나 달라 요청한 어린 선자는 일본 순사들까지 집을 찾아 불안했습니다. 도망쳤던 아재가 일 순사들에게 붙잡혀 끌려가다 어린 선자와 눈이 마주치자, 뱃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억압받던 시대를 가슴 아프게 담은 장면이었습니다.
아재 거래 도와주고 돈을 받았다고 혼나는 어린 선자에게 돈이 아니라 정이라며, 세상에 정이란 게 있음을 알아야 강하게 큰다는 아버지는 현자였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피를 토하며 마지막으로 “선자야”라고 어린 딸을 부르며 눈을 감는 장면으로 선자 집안의 연대기는 성장한 선자의 시대로 이어집니다.
드라마는 교차편집으로 일제강점기 선자의 모습과 1989년 할머니가 된 선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을 취합니다. 편의상 10대 선자와 80대 선자를 나눠 정리해보면, 아버지 죽음 후 9년이 흘러 여전히 똑 부러진 선자가 한수와 만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어시장에서는 볼 수가 없었던 성공한 젊은 남성이자, 뛰어난 외모에 거친 그의 모습은 선자에게도 묘한 감정으로 다가오게 했습니다. 한수에게 선자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 눈에 띄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일본 순사들에 머리를 조아렸지만, 선자는 당당했기 때문이죠.
하숙집 먹거리를 사 오는 선자는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들러야 했고, 그곳에서 일하는 한수와 마주할 수밖에 없었죠. 이들을 극적으로 가깝게 만든 것은 왜놈들에 끌려가 못된 짓을 당하려던 선자를 한수가 구하면서였습니다.
피 묻은 와이셔츠를 빨아주겠다는 선자의 말에 빨래터에서 만나며 한수는 자신 역시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건너가 성공한 한수와 대화하며 글을 깨우치지 못한 선자는 자격지심을 가지기도 했죠.
고향을 떠날 이유가 없다는 선자와 보다 넓은 세상이 있음을 언급하는 한수는 달랐습니다. 그런 한수의 오사카와 미국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선자는 일본이 큰 나라인지 알았는데 작다며, 겁낼 필요 없겠다고 합니다. 그런 당돌하기까지 한 선자가 한수는 좋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빨래터에서 사랑을 맺게 되고, 그 강렬한 첫사랑은 임신이라는 선물로 다가왔습니다. 문제는 선자는 임신과 함께 결혼을 생각했지만, 한수에게는 오사카에 아내와 세 딸이 있었습니다.
전혀 몰랐던 선자의 불행은 첫사랑과 함께 시작되었죠. 선자와 결혼할 수는 없지만, 좋은 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겠다 합니다. 하지만 선자는 이를 거절했고,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불구였던 아버지까지 조롱하며 선자를 몰아붙인 한수의 행동은 그래서 더 끔찍하게 다가왔습니다.
임신 사실을 한수에게 알리던 날 하숙집을 찾은 이삭은 어쩌면 운명이었는지 모릅니다. 폐병으로 죽을 거라는 약방 아재의 말에도 엄마 양진은 정성껏 간호해서 살려냈습니다. 남편을 잃었던 양진은 비슷한 병을 가진 낯선 이를 그대로 보낼 수 없었죠.
이런 양진의 행동이 위기의 선자를 구원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엄마에게 임신 사실을 밝히고, 아이 아빠가 누군지 말하지 않는 선자에게 오열하는 엄마는 아빠 없는 아이 키울 딸이 더 걱정이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이삭은 우연히 모녀의 이야기를 들었고, 전보를 치러가려는 이삭에게 양진은 딸 선자에게 함께 가라 합니다. 그렇게 우동집에 들른 이삭은 입양을 언급하지만, 선자는 단호했습니다.
불구의 몸으로 결혼도 못할 거라는 아버지가 결혼했고, 자신을 낳았다며, 손가락질 받아도 아이는 자신이 키운다고 말이죠. 그런 선자의 모습을 보고 이삭은 확신한 모습으로 잊고 다른 사람 생각해줄 수 있냐고 묻습니다.
이삭이 선자에게 하는 청혼이었죠. 오사카에 사는 형과 형수를 찾아가는 이삭은 그렇게 임신한 선자와 결혼해 떠나게 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89년 인종차별을 받으며 승진 누락당한 솔로몬은 개발지역에서 유일하게 집을 팔지 않는 이가 재일교포란 사실을 알고 자청합니다.
남편 보내고 홀로 그 집을 지키고 살아가는 금자는 솔로몬이 같은 교포란 사실에 마음을 열지만, 땅을 팔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할머니 선자가 극진하게 보살피던 큰할머니 경희가 사망하며 다시 오사카 집을 찾은 솔로몬은 할머니에게 도와 달라 합니다.
손자를 위해 도쿄로 함께 간 선자는 금자의 집을 찾았죠. 마침 식사하려 했다며 같이 먹자는 금자는 외로웠습니다. 뒤늦게 학교 다니고 있다며 자신과 비슷한 선자에게 자랑하기 시작했고, 비슷한 삶을 살았던 그들은 쉽게 친해질 수 있었죠.
선자는 금자가 차린 밥을 한입 먹자 뭔지 모를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땅에서 키운 쌀맛을 아는 선자는 지독한 그리움이 몰려올 수밖에 없었죠. 이삭을 따라 일본에 온 후 모진 고통 속에서 버텨야 했던 선자는 한 번도 고향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선자의 눈물에 당황한 솔로몬에게 금자는, “할머니 눈물 창피하게 생각 말아라, 울 자격 있다”합니다. 모진 삶을 살아낸 이들만 공감할 수 있는 눈물이었기 때문이죠. 기회 되면 고향에 간다는 금자는 돌아가는 순간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게 느껴진다 합니다.
솔로몬과는 전혀 다른 세대인 그들은 평행선일 수밖에 없었죠. 선자는 금자가 그곳에서 죽고 싶은 거라며, 언제까지 자식들에게 희생하며 살아야 하냐고 솔로몬을 타박하는 할머니 선자는 손자와 같은 처지의 금자 모두 안쓰럽게 다가왔습니다.
선자로 인해 금자는 집을 팔기로 했고, 선자는 금자와 만난 후 파친코 주인인 아들을 찾아가 큰어머니 경희는 고향에 묻어줘야 한다며 돌아가겠다 합니다. 고향을 떠난 지 수십 년이 되어 다시 돌아가려는 선자의 모습은 이제 오사카로 간 어린 선자와 모습과 교차해 전개될 예정입니다.
방대한 이야기의 시작은 당시를 완벽하게 재현하며 구현되었습니다. 참혹했던 부산 영도와 버블 경제가 폭발하던 시절의 일본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흥미로웠습니다. 이를 통해 4대째 이어진 선자 가족의 연대기를 촘촘하고 흥미롭게 풀어낸 ‘파친코’는 수많은 평론가들의 호평처럼 최고의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서양인들은 몰랐던 일본의 추악한 민낯과 이민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의 모습을 통해, 전 세계 이민자 가족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특별합니다. 전쟁이 발발하고, 여전히 이민자 가족에 대한 핍박과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은 시대 ‘파친코’는 더욱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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