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가 세모녀가 모두 포토 라인에 섰다. 통상 포토 라인에 서는 사람들은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범죄를 짓고 고개를 숙인 채 변호사들이 주문한 답변만 앵무새처럼 되뇌게 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한 가족의 세 모녀가 차례대로 서는 것은 기이한 일일 수밖에 없다.
돈이 많아서 돈이 없어서;
칼레의 시민과 칼의 사람들, 한진과 송파 세모녀의 삶을 통해 바라본 우리 사회의 민낯
폭언과 폭행 논란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부인 이명희는 두 번 연속 조사를 받았다. 이럴 경우 구속 영장 청구를 위한 행위로 읽히고는 한다. 이명희의 경우 처벌을 원하는 피해자가 11명이나 된다는 점에서 구속영장 청구 신청은 할 것으로 보인다.
조씨 일가의 만행은 연일 보도되며 이제는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다. 태어나보니 재벌가 사람이었던 그들에게 세상은 만만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것을 쉽게 얻으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자들. 그들에게 세상은 자신들을 위한 것일 뿐이었다.
물컵 갑질로 시작된 한진가 몰락은 갑작스럽지 않다. 예고된 재앙이 그렇게 적당한 시기에 터져 나왔을 뿐이다. 임계점에 다다르기 전까지 물은 그저 고요할 뿐이다. 하지만 임계점을 지나는 순간 끓어오르는 물은 쉽게 식지 않는다. 모든 것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에서 던져 진 물컵은 움츠렸던 '을'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조 에밀리 리와 조현아가 포토 라인에 섰다. 그리고 경악스러운 고음의 소유자인 그들의 어머니 이명희까지 기자들 앞에 서서 준비한 사과만 반복하는 모습은 기괴한 풍경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대중들의 눈만 피하면 그만이라는 그들의 행태는 꿩을 닮았다. 위기 순간 머리만 숨기면 그만인 꿩처럼 자신의 눈만 가리면 평온을 찾으니 말이다.
2014년 2월 송파에서 안타까운 죽음이 발견되었다. 두 딸은 병이 있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 딸들을 위해 어머니가 일을 해왔지만 부상으로 그나마 하던 일도 할 수 없게 되며 지독한 가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사망 3년 전 구청에 생활 보호 복지를 문의했지만, 두 딸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 당했다.
사회가 자신들을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들이 느꼈을 고통은 컸을 것이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 그런 딸들을 보며 움직이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어머니. 그들의 선택은 극단적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신들의 전재산 70만 원을 봉투에 넣고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글로 유서를 대신했다.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을 집주인에게 남긴 채 사망한 송파 세 모녀는 그렇게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세 모녀 법'이 국회에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에서 숨지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복지는 포퓰리즘이고 국민들을 나약하게 만든다며 반대만 하는 보수라고 자청하는 정당들의 행태는 수많은 '송파 세 모녀'들을 만들어왔다. 체계적이고 섬세한 복지 정책이 준비되고 실행되지 않으면 우리는 수많은 '송파 세 모녀'들을 볼 수밖에 없다. 부산에서 반복되던 '고독사' 사건들이 이어지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 복지 사각 지대가 너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너무 많이 가져서 주체하지 못하는 세 모녀와 너무 없어 세상과 마지막 작별을 해야 했던 세 모녀. 우린 그 극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중간이 사라진 채 마치 자석의 S극과 N극만 존재하는 듯한 사회다. 그 사라진 중간 지대를 만들고 보다 안정적인 사회를 만드는 역할은 결국 정부 당국과 정치를 한다는 국회의원들의 몫이다.
정치꾼들도 사법부도 정부기관도 모두가 방기한 사회. 재벌과 가난한 세 모녀는 모두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일 뿐이다. 재벌들의 방종을 제대로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이를 실행하는 이들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복지 정책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었다면 '송파 세 모녀'와 같은 희생도 없었을 것이다.
<JTBC 뉴스룸> 앵커 브리핑은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통해 한진 세 모녀를 위시한 재벌 총수 일가 이야기를 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중 영국 공격을 오랜 시간 버텨낸 칼레 시민들은 끝내 항복을 선언했다. 하지만 영국 국왕은 그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항복의 징표로 시민대표 6명을 뽑아 처형대 앞에 내놓으라 요구했다.
여기서 로댕이 '칼레의 시민'을 조각한 이유가 등장한다. 이때 스스로 끈을 묶은 채 나선 사람들은 칼레의 가장 부자와 시장, 법률가, 귀족이 차례로 지원을 했다고 한다. 요행히 타인보다 무언가를 많이 갖게 된 자들의 의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때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널리 쓰였다고 한다.
칼레 시청사 앞에 있는 '칼레의 시민' 동상은 그렇게 지나는 이들과 어깨라도 스칠 듯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재벌이나 사회 지도층들에게 이런 대단한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자신들의 위치에서 상식적인 행동이라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칼의 로열 패밀리들은 최소한의 역할도 방기한 채 태어나자마자 주어진 부를 악용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국토부 차관의 딸로 태어나 이해관계가 있던 대한항공으로 시집온 이명희. 그렇게 갑작스럽게 성장한 대한항공은 재벌이 되었다. 많은 것을 가졌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선민의식만 팽배해진 그들에게 세상은 오만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법마저 무시한 채 무소불위 행동을 하던 그들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을'들의 반란은 당연한 것이다. '촛불 혁명' 후 시민들은 깨어났다. 임계점을 넘긴 시민들은 더는 사회적 부조리를 더는 방치하지 않는다. 여전히 사법부는 가진 자들의 편에 서 있다.
그런 사법부 역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으로 불거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강력한 '사법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사법부 만이 아닌 국회와 다른 곳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사회는 시민들의 분노와 함께 조금씩 진화하는 중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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