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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Shout/Alternative Radio 대안 라디오

2011 희망버스, 역사를 바꾼 프리덤 라이더스의 재현이다

by 자이미 2011.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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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에서 프리덤 라이드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현재의 미국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흑백갈등이 극대화되던 시절 차별을 없애기 위한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없었다면 현재의 미국은 결코 자유의 상징처럼 불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희망버스는 재벌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에 노동자들의 존재를 알리는 외침이다




재벌을 위한 국가 정책은 결과적으로 빈부의 격차를 극대화시켰습니다. 재벌을 살리면 부강한 대한민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현 정부의 어불성설은 재벌들에게 온갖 특혜를 주고 노동자를 탄압하는데 만 집중할 뿐이었습니다. 노동자를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아가는 국민으로 보지 않고 그저 단순히 자신들이 필요할 때 쓰는 도구로 밖에는 보지 않는 재벌들의 모습은 경악스럽기만 합니다.

 

재벌들에게는 온갖 특혜를 주면서도 노동자들의 권리는 제약하고 재벌들에 의해 노동자들을 쉽고 고용하고 버릴 수 있는 제도적 한계만을 준 정부에 의해 2011 대한민국은 재벌 공화국으로 자리 잡고 말았습니다. 이미 거대 재벌은 대한민국 전체를 움직이는 정도까지 되었고 어지럽게 얽혀있는 혼맥 관계를 통해 그들은 대한민국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수한 파행을 위해 집권 하자마자 언론을 지배해서 통제하며 비판적인 보도를 막아내던 현 정권은 수구 언론들에게 방송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서 언론 생태계를 교란시켜 올바른 비판 기능이 상실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만들어버렸습니다.

재벌과 소수의 권력을 가진 이들만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는 현 정권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언론인들마저 권력의 시녀를 자처하며 이미 언론인의 최소한의 가치마저 상실한 시대 노동자들은 그 어떤 권력에도 숨죽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당연하게도 85호 크레인에서 200일이 넘게 투쟁 중인 김진숙 민노당 지도위원 때문입니다. 한진중의 과거 명칭이었던 대한조선공사 노동자였습니다. 부당해고를 당하고 해고 철회를 위해 현재까지 투쟁 중인 엄연한 한진중 노동자이고 그녀가 그 높은 곳까지 올라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한진중의 부당해고에 기인하고 있음은 그녀의 투쟁의 정당성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부당해고는 하지 않겠다는 합의까지 했음에도 필리핀으로 공장을 옮기며 의도적으로 영도 조선소에 수주를 없애버리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해고한 그들의 모습은 이 정권 들어 쉽게 볼 수 있는 무소불위 재벌들의 일상입니다. 김진숙 위원의 고공 투쟁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논란이 확산되자 급하게 노노갈등을 부추기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뒤늦게 영도 조선소에 신규 수주를 유치하는 영악함을 보이는 그들은 여전히 사주가 해외에서 돌아오지 않는 몽니를 부리고 있습니다.

국회 청문회마저도 우습게 생각하고 해외를 떠도는 한진중 조남호 회장은 왜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요? 그가 진정 사업을 하는 기업인이 맞기는 한가요? 스스로 반문해 볼 일이지만 혼자만 잘 먹고 잘살겠다는 재벌들의 심보가 현재의 우리 사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역시 범죄자와 다름없음은 분명합니다.

두 번째 희망버스는 대중들에게 노동탄압의 현실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전에도 노동자를 폭행하고 탄압하는 현장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언론들은 들불처럼 일어난 전국의 1만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버스에 올라 영도로 향하는 모습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평화로운 행진마저도 불법으로 치부하며 물 대포와 화학약품을 뿌리며 잔인하게 진압하는 경찰들로 인해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부산 영도를 찾은 시민들은 경악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그들의 야만적 공격은 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마저도 침묵 혹은 철저한 왜곡으로 여론을 호도한 언론들의 실상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친일을 당연하게 여기고 친일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것조차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당당하게 여기는 방통위 위원. 여기에 더불어 친일을 묵인하고 자신의 권력욕을 채운 이승만에 대한 다큐가 여론에 밀려 방송 편성이 되지 않자 방송하지 않는다고 열을 내는 수구 언론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 시대 어떤 세력들이 어떤 방식으로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희망버스는 세 번째 영도를 찾았습니다. 지난 2차 때보다 늘어난 1만 5천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이 위대한 라이드에 동참했고 그들은 부산역 앞에서 즐거운 놀이를 하고 85 크레인에서 여전히 시위를 하고 있는 김진숙을 만나기 위해 영도다리를 건넜습니다.

지난 두 번째 여정과 다른 점은 '어버이 엽합'이 그 여정을 함께 하며 스스로 자경단을 자처했다는 것이지요. 자신들이 각목을 들고 영도다리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시내버스를 멈추게 하고 시민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는 무법천지를 만들며 평화로운 행진을 막아서는 그들의 광기는 다시 한 번 '희망버스'가 이 시대 왜 필요한지만 명확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도 수수방관하거니 최소한의 제재만 하며 어버이 연합을 비호하는 공권력의 모습은 이 시대 권력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국가권력은 권력자들을 비호하기 위함이 아닌 국민들의 안위를 위해 존재하는 것임에도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사업자들이 고용한 용역들을 비호하는 권력은 더 이상의 권력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백색테러가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상황은 미국의 60년대 인권 운동 시절 그들을 탄압하던 무리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스스로 완장을 차고 재벌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는 그들의 폭언과 폭행은 어떤 의미일까요?

프리덤 라이드 운동은 1960년 봄 캘리포니아 그린즈버로 버스터미널의 한 식당에서 흑인 학생 4명이 버스 좌석의 흑백 분리 차별에 저항하며 시작된 운동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직후 백인 청년 학생 운동가들은 '프리덤 라이더스 Freedom Riders'라는 이름으로 흑인 차별이 극심했던 남부를 돌며 흑인 차별을 철폐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프리덤 라이드 운동에서 조그마한 교회의 목사였던 마틴 루터 킹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밥 딜런, 존 바이즈 같은 운동에 참여했던 진보적 가수들은 '빨갱이'로 낙인 찍혀 탄압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소련과 극단적 대립을 하던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빨갱이'와 '간첩'이었고 이런 논리는 지배계급의 공통적인 무기로 사용되던 시기였습니다.

이 운동의 하이라이트는 1963년 8월 노예해방 100주년을 맞이한 워싱턴 행진은 미국 역사를 바꾼 역사적인 날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워싱턴 광장을 가득 매운 20여만의 군중들 앞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그 유명한 연설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로 시작된 그의 연설은 20만의 군중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탄압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세기의 연설문으로 남겨졌습니다.



차별과 억압에 고통을 당하던 흑인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죽음과 맞서 차별 철패를 외치지 않았다면 결코 미국에서 흑백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그들을 바라보며 프리덤 라이더스 운동을 펼친 그들이 없었다면 미국은 자유를 상징하는 국가로 성장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시대 차별받고 탄압받는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세상에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많은 탄압을 받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탐욕을 위함이 아닌 우리 시대 노동자들의 인권과 일할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이기에 공감을 받을 수밖에 없고 관철될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 우리가 던지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임은 분명합니다.

권력을 가진 지배세력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공고하게 하기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려고만 합니다. 다수의 희생을 통해 소수의 안락을 추구하는 그들에 맞서 싸우려는 노력은 정당한 요구이자 인간으로서 누려야하는 기본적 인권의 시작일 뿐입니다.

많은 이들이 가슴에서 우러나 시작한 '희망버스'는 영도뿐 아니라 그 어느 곳이라도 달려갈 수 있습니다. 탄압받고 억압받는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느 곳이라도 달려갈 수 있는 '희망버스'는 1960년대 지옥 같은 미국을 자유의 상징으로 바꾼 '프리덤 라이더스'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사진은 트위터 현장 사진과 인터넷 자료, 한겨레 사진 등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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