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5. 11:03

단막극 15 돌멩이-소심하지만 위대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거대한 세력에 맞서 싸우는 소시민들은 시작부터가 힘겨움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정의로운 사회 구현이라는 사 구호 속에서 사회는 최소한의 예의로 무너지며 가진 자들만을 위한 세상으로 재편되어갈 뿐입니다. 가지지 못하면 도태당하고 마는 가진 자들만을 위한 게임에서 소심한 그의 돌멩이는 커다란 힘으로 다가옵니다.

그 작은 돌멩이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28년간 근속한 용기가 없어 조용한 교사 수백(정한용)은 언제나 사람 좋은 웃음을 짓습니다. 아들을 의대에 보내기 위해 사채까지 끌어 써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는 지독히 위험하고 어려운 부탁을 받게 됩니다. 비리가 많은 재단 이사장의 비자금을 관리할 수 있는 통장을 만들라는 부탁이었지요.
사채까지 쓰며 힘겨운 생활을 하는 수백이 조용하고 쉽게 입을 놀려 고발을 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은 재단에서 그를 적합한 인물로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수백은 이런 그들의 제안을 거부하고 곧이어 터진 재단비리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시작합니다.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고 이사장의 비리와 관련된 모든 사안들이 문제로 불거지는 상황에서 담당 검사는 수백에게 증언을 요구합니다. 불법 비자금을 위한 통장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언해 달라는 검사와 협박을 통해 그에게 입을 다물기를 강요하는 이사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수백은 힘겹기만 합니다.

여기에 가진 것 없어 매번 같은 잘못을 해도 홀로 혼나기만 하는 민주는 걱정만 됩니다. 건물 청소를 하면서 어렵게 딸아이가 잘 되기만을 바라는 어머니가 쉬는 날 어렵게 싸온 도시락을 의도적으로 바닥에 팽개쳐버린 반 친구와 싸운 죄로 자퇴를 종용받습니다.

잘잘못을 떠나 학교 임원으로 활동하는 돈 많은 학부형은 어떤 상황에서든 당당해질 수 있고 '돈 없고 빽 없는' 이들은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민주를 힘겹게 만들 뿐입니다. 미용사가 꿈인 민주가 힘들어도 고등학교라도 졸업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수백은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자퇴만을 막으려 노력합니다.

절대 사과하고 싶지 않았던 민주 역시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울며 반성문을 쓰지만, 회의실까지 찾아온 학부형의 멱살잡이 끝에 민주는 자퇴 형식의 퇴학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떠나가는 제자를 붙잡고 희망을 잃지 말라고 하지만 실없어 보이는 말들의 성찬은 민주를 힘겹게 할 뿐입니다.

"노력하면 성공 한 다구요. 착하게 살면 보답 받고 돈 없어도 바르게 살면 되는 거고, 선생님들 그런 말 참 잘 한 다구요."
"내가 여기서 배운 건요. 돈 없으면 무시당한다는 거. 돈이 최고라는 거. 돈 있는 사람에게 기어야 한다는 거. 또 있네 누구도 믿으면 안 된다는 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교육의 현실이자 한계입니다. 돈 위에 사람 없고 돈 아래 사람 없다는 말은 그저 있는 사람들을 방어해주기 위한 말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돈 없이 바르게 살면 무시 받고, 노력해도 결코 성공을 할 수 없는 세상. 돈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공교육은 이제는 도덕이나 역사보다는 출세를 위한 학문만이 전부라고 가르칩니다.

공교육의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고 끝이 없는 무 존재감은 더욱 심화되어갈 뿐입니다. 학교가 있어야 할 이유가 의미마저 상실해가는 세상에서 <돌멩이>는 작지만 소중한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침묵만이 살아남는 법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던 선생 수백은 비리의 온상인 이사장처럼 되고 싶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기 시작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돈만 벌면 최고라는 이사장을 닮고 싶다는 아들의 말은 아무리 침묵이 금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그에게도 커다란 변화를 요구할 뿐이었습니다.

무능해보이고 나약하기만 한 아버지가 어떻게 어머니와 결혼을 했는지 궁금한 아들은 부모들이 만나 결혼을 다짐하는 이유를 어머니를 통해 듣게 됩니다. 도저히 만족스럽지 않은 외모에 소심하기만 하고 말주변도 부족한 그 남자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돌멩이 때문이었습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이 극심한 당시 투쟁을 하다 피신해 그들 옆자리에 앉게 된 여대생이 쥐고 있었던 돌멩이는 침묵하던 수백을 깨웠습니다. 백골단이 들이 닥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상황에서 한없이 떨던 수백을 좋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렇게 이 남자와의 만남을 끝내려는 순간 그 공포 분위기 속에서 긴장하던 여대생이 돌멩이를 놓치며 바로 닥쳐올 위기 순간이 감지되는 상황에서 신기하게도 겁쟁이 수백은 떨리던 다리가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아주 조용해 여대생이 떨어트린 돌멩이를 숨기는 그의 모습은 대범하고 무모한 용기는 아니었지만 최악의 순간 회피하지 않고 용기를 낼 줄 아는 수백의 본심을 본 명자(김혜옥)는 바로 이 남자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는 다시 한 번 심하게 떨리는 다리와 함께 과거의 상황과 맞닥트립니다. 재단 비리를 깨낼 수 있는 중요한 증인 심문에서 협박까지 당한 힘없는 평교사는 아들을 위해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마지막 용기를 냅니다.

그 일로 재단 비리가 고쳐지지는 않았습니다. 거대한 힘을 가진 그들이 쉽게 무너질 일이 없으니 말이지요. 용기내어 진실 앞에 당당했던 수백은 28년간 열심히 다녔던 학교에서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짐을 싸는 그와 서슬 퍼런 재단사람 앞에 소심하지만 위대한 용기를 내는 여교사로 인해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해고 사유도 없이 해고하는 것에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여교사에게 재단의 비리에 반발하는 그녀를 즉석에서 해고시키는 재단 사람인 교감에 반기를 드는 교장은 그렇게 여교사와 함께 조그마한 돌멩이를 움켜쥐었습니다. 혼자는 외롭고 두렵지만 정의를 위한 외침은 강력한 힘으로 다가옵니다.

사회 정의는 독재자가 외친다고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떳떳하게 살아갈 용기를 낸다는 것. 그 자그마한 돌멩이를 손에 질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작은 돌멩이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니 이 얼마나 흥겹고 유쾌한 반란인가요.

어른들의 무능으로 학교를 떠나야만 했던 제자가 있는 미용학원에 들린 수백은 어린 제자에게 머리를 맡기고 굵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 여리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제자가 자신에게 "고마워요. 선생님"이라고 건네는 한 마디는, 아들이 학교로 떠나며 존경한다는 말과 함께 그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용기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용기를 냈지만 세상은 한 순간 바꾸지 않았습니다. 복직이 되었는지도 모호한 수백은 사채도 걱정해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고민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 부부는 손을 맞잡고 "괜찮을 거야 우리"를 되 뇌이며 세상과 부딪쳐낼 뿐이었습니다.

자신을 믿고 평생을 함께 하는 부인. 어쩌면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자 꿈일 겁니다. 돈도 없고 능력도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려는 남자를 위해 평생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은 위대해 보일 정도입니다. 돈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 무엇보다도 값진 의미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행복을 나누며 살아가는 극중 수백과 명자 부부는 가장 이상적인 부부상일겁니다.

국가 권력에 의해 핍박받아야만 했던 국민들은 세월이 흘렀지만 또 다른 거대 권력인 돈과 권력자들 앞에서 숨죽이며 살아야만 합니다.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 학교에서 마저 비민주적인 독재가 횡횡하는 사회에서 바른 인재를 길러내는 일이란 힘겨운 일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린 권력자들을 보며 무슨 가치를 만들어가고 롤 모델을 찾을 수 있을까요? 모든 가치의 기준이자 끝을 돈으로 삼고 이를 위대함으로 치켜세우는 세상은 돈만을 숭배하는 이들만 존재할 뿐입니다.

짧은 이야기 속에 한 교사의 삶을 통해 현대사의 굴곡과 비리들을 끄집어내고 작은 용기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은 단막극이기에 가능한 재미였습니다. 정한용과 김혜옥이 보여주는 안정된 연기는 극의 가치를 높여주었고, 방지영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힘과 김형석 피디의 안정적인 연출은 단막극의 재미를 높여주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주제를 담아내면서도 경쾌하고 안정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돌멩이>에는 소수의 힘없는 우리가 올바른 사회를 위해서는 침묵이 아닌 행동도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 행동들이 당장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다 해도 언젠가는 세상을 바꿀 수밖에 없음을 <돌멩이>는 이야기 해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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