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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Shot Drama 단막극

단막극 12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이끼를 넘어서지 못한 웹툰의 한계

by 자이미 2010.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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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이 주는 재미들은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짧은 시간안에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잔가지들을 최대한 쳐내고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단막극은 한정된 시간과 제작비의 한계 속에서 작가와 연출가 배우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최고의 창의력을 끌어내는 고도의 창작 작업입니다. 때론 아쉬움을 곱씹어야 하는 경우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말이지요.

웹툰의 잔혹사가 단막극에서 재현되다



1. 30년 만의 연쇄 살인 범인은 누구인가?

제법 많은 부동산을 가진 땅 부자 심덕수는 전쟁고아로 악착같이 돈을 번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그 누구보다 돈에 집착하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서부극입니다. 매일 서부극만 보고 서부극에나 나올 법한 복장을 하고 다니는 그는 아리동에 남은 마지막 카우보이였습니다.
매일 술만 마시고 일도 하지 않으면서 월세도 내지 않는 최씨를 찾아가 호되게 나무라는 그는 악독한 집주인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손가락질을 해도 그는 더욱 당당하게 술만 마시지 말고 일이라도 하라며 큰 소리를 칠뿐입니다.

문제는 바로 다음 날 집주인 심덕수에게 호되게 당했던 최씨가 목을 매고 죽은 시체로 발견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이웃들은 심한 월세 독촉으로 인해 자살을 했다며 심 노인을 몰아붙이고 심덕수 역시 자신으로 인해 목숨을 끊은 것은 아닌가란 자책감에 그의 집으로 들어섭니다.

이런 저런 물건들을 살피던 심덕수를 덥친 인물이 있었으니 전직 형사였던 박평달이었습니다. 30년 전 아리동을 떠들썩하게 했었던 살인사건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그는 다시 살인자가 부활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주변에서 일어났던 노인들의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닌 살인일 수 있다는 가정은 사실처럼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조만간 미국에 있는 아들 집으로 들어가려고 비행기 표까지 산 최씨가 자살을 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살인을 시도한 후 젊은 여성을 노리는 범행 수법 상 이젠 여자들을 대상으로 살인이 진행될 거라는 박평달의 충고에 지은이 걱정스럽습니다.

월세를 늦게 내는 그녀에게 구박도 했지만 천성이 나쁘지 않은 심덕수로서는 지은이 다음 범행 대상은 아닐까란 두려움에 늦은 저녁에 그녀의 방문을 두르려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주변 세입자들의 차가운 눈초리였습니다. 최씨를 죽게 한 것도 모자라 이젠 지은까지 죽이려고 저리 안달이냐는 이야기는 그를 힘들게 할 뿐이었습니다.

우려는 현실로 다가오고 지은과 함께 생활했던 친구가 죽은 채 냉장고에서 발견되며 박평달이 이야기했던 것들이 모두 사실이 되어가는 상황이 두렵기만 합니다. 경찰에 신고하려는 심덕수를 말린 박평달은 지은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 말합니다.

그렇게 아리동의 마지막 카우보이들은 돌아온 연쇄 살인범을 잡기 위해 행동에 나섰습니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자신의 동네를 지키려는 그들 앞에 거대한 산처럼 자리한 살인범은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었지만 지은을 살리려는 그들의 노력은 나이를 떠난 용기로 빛나게 했습니다. 점점 좁혀오는 살인자와 그런 잔혹한 존재를 잡으려는 할아버지들의 활약이 유쾌했던 단막 극이었습니다. 


2. 원작을 뛰어넘지 못한 각색의 한계

이 작품이 아쉽게 다가온 이유는 원작의 뛰어난 상징성과 재미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창작극이라면 상관없지만 많은 이들이 봤던 유명한 웹툰이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비교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원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30년 전의 살인사건이 되풀이되는 상황이 아닌 살인자라는 편견을 깬 건실한 우리 이웃이 잔인한 살인자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에 젊은 살인자와 왕년의 노련한 연쇄 살인자의 만남이 주는 멋진 긴장감이 사라진채 젊은 살인자에게 모든 것을 부여함으로서 원작이 주는 긴박함은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30년 전의 살인범은 여전히 모호한 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낯설거나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박평달이라는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모호해지는 느낌은 아쉽게 다가옵니다.

거대 권력을 가진 인물들이 진짜 잔혹한 살인자일 수도 있다는 원작은 대중들의 침묵과 무관심이 또 다른 살인자를 양산해 낸다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무관심이 악마를 키운다는 설정도 흥미롭게 다가왔지만 이런 전체 상황을 설명하고 자연스럽게 묻어나게 하기에는 얼개가 부족해 아쉽게 다가왔습니다.  

스릴러 형식을 취한 원작과는 달리 단막극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서부극을 끄집어들이며 끊임없이 서부극을 이야기합니다. 한 마을에 찾아든 살인마를 잡기 위한 주인공들의 활약은 서부극의 기본 형식을 그대로 차용함으로서 익숙한 느낌을 전달해주었습니다.

여기에 늙어 돌아온 보안관이 악당을 무찌른 방식에서는 '용서받지 못한 자들'의 몇몇 부분들이 떠오르게도 합니다. 범인을 죽이는 과정이나 갇힌 지은에 대한 모호한 정리 등 아쉬운 내용들은 나름 고민해서 만들었던 작품을 안쓰럽게 만들었습니다.  

노골적으로 카우보이에 집착하다보니 어색한 설정으로 캐릭터의 힘을 더욱 극대화하지 못한 아쉬움은 전체 극을 어색하게 만들게 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사건 속에 녹아들어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원작과는 달리 과도한 서부극에 대한 집착은 전체적인 내용을 바꿔버릴 수밖에는 없었고 원작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도 못한 채 다른 의미를 담아내려 한 그들의 시도는 절반의 성공이라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양택조와 김진태로 이어지는 나이든 배우들의 열연은 단막극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는 드라마나 영화가 사라진 상황에서 이들의 등장은 즐겁게 다가왔습니다. 원작을 그대로 반영해 제작할 필요는 없겠지만 원작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특징들을 버린 작품은 언제나 원작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비교의 대상이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 작품이 '이끼'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것은 같은 웹툰을 가지고 너무 다른 결과물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십억을 들인 작품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지만 기술적인 문제나 유명 배우들의 등장유무가 아니라 원작이 가지고 있는 섬세한 감각과 영화 혹은 드라마로 각색되어 보여 진 결과물의 완성도에서 너무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겠지요.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 원작 웹툰을 보셨던 분들이라면 결코 이 단막극에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원자이 주는 촘촘한 얼개와 스릴러가 주는 재미를 원작에서는 웃음으로 무마하고 단순화 시켰기 때문이지요. 단막극으로 각색되어 나름의 의미를 담아내기는 했지만 무척이나 아쉽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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