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19. 08:48

창비 신경숙 표절논란과 옹호, 문학권력의 실체 드러낸 절망적 사건

신경숙 작가가 표절을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이 네 번째이다. 신경숙만이 아니라 다양한 작가들이 그동안 표절 의혹에 휩싸인 것이 사실이다. 뛰어난 감성과 글로 수많은 팬 층을 거느린 스타작가인 신경숙이 표절작가가 되는 순간 대한민국 문학은 지독한 절망과 마주해야 했다. 

 

신경숙과 창비;

신경숙의 표절 논란과 창비의 옹호, 한국문학의 지독한 현실

 

 

 

거대한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은 단순하게 경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본은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분야에 침투해 잔인한 힘자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젠 순수라는 단어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 어떤 분야에서도 순수라는 단어는 사용 불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자본이 문학을 잠식한 것도 단순히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자본이 잠식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하지 않다는 말이 더 합리적으로 다가올 정도로 현대사회는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다. 하지만 자본의 지배 속에서도 순수함은 존재해야 하고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표절이 지배하는 사회는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보다 추악하고 타락한 모습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다.

 

허핑턴포스트 코리아는 스타 작가인 신경숙이 일본 작가의 글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표절이라고 지적한 글을 비교해보면 이는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신경숙 표절논란은 당연하게 문화계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표절 논란과 관련해 창비는 홈페이지를 통해 적극적으로 신경숙을 옹호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런 창비의 입장은 논란을 더욱 거세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스타작가에 기생하는 거대 출판사의 한심함이 창비와 신경숙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주장이다. 거대 출판사가 사는 방법이란 단순하다. 베스트셀러 작가를 이용해 거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잘 팔리는 작가와 그들을 비호하는 문학출판사와 평론가, 그리고 고액 문학상 운영을 통해 그들과 결탁한 언론사 등 '문학권력'은 신경숙 표절과 창비의 적극적 옹호에서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작가이자 시인인 이응준이 허핑턴포스트 코리아를 통해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신경숙그이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라는 글을 통해 표절을 언급했다.

 

신경숙의 표절 논란이 절망적인 이유는 그가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큰 사랑을 받은 그녀가 일본 작가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5년 전 있었던 표절 논란에서도 신경숙 작가의 표절 대상은 일본 작가였다.

 

 

당시와 현재의 표절 논란이 너무 큰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이다. 부산 출신의 문학평론가 정문수(46)씨가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은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 기고문에서 신경숙이 일본의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우국'을 표절했다고 주장했었다.

 

95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에 실린 단편 '전설'이 '우국'을 그대로 표절했다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응준은 신경숙이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을 그대로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신경숙에 대한 표절 논란이 이렇게 불거진 것은 충격이다.

 

신경숙의 표절도 놀라운 일이지만 대중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바로 창비의 입장이었다. 창비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백낙청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믿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그곳이 표절 작가를 두둔하고 나섰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충격이기 때문이다.

 

"선남선녀의 결혼과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데다가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

 

표절 논란이 공론화되자 창비는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표절이 아니라 밝혔다. 일상적인 소재이자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라는 주장은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창비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936년 천황 지지 장교들의 친위 쿠데타와 1950년 한국전쟁 참전 장교 사이에는 물론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쿠데타 참가와 전쟁 참전이라는 대의와 신혼의 개인적 행복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개인'을 버리고 '대의'를 택하며 그 결과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공통점이 결코 작다고는 하기 어렵다. 게다가 문제가 된 문장들 사이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조차 부정하는 안목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그 문장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육체적 열락의 강렬함과 절박함은 이윽고 닥쳐올 죽음의 그림자 아래에서 한층 도드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겨레 문화부 선임기자인 최재봉의 칼럼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표절이 아니라는 창비의 주장이 얼마나 형편없는 신경숙 감싸기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두 작품을 읽지 않은 이들이라도 최 기자의 글을 보면 과연 신경숙과 창비의 주장이 맞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창비가 그저 단순하게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 조차 부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행동인지는 명확하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나 권력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권력은 언제나 문제를 만들고는 한다. 문학계가 힘들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대한 자본으로 무장한 곳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표절 논란은 말 그대로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던 지독한 '문학권력'이 실체를 드러낸 사건이다.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 성공한 스타 작가. 그리고 그런 작가만을 적극 옹호하는 거대 출판사. 이런 그들의 결탁은 '표절'이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다가온다.

 

표절로 드러난 '문학권력'이 한순간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거대 문학 자본과 언론사, 그리고 평론가 등으로 만들어진 그들의 권력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신경숙의 표절 논란과 유사한 상황들을 목도할 것이다. 근본적인 변화 없이 이런 처절함은 반복적으로 이어질 수밖에는 없으니 말이다. 믿었던 창비의 배신은 그 무엇보다도 슬프게 다가온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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