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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Broadcast 방송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육영재단과 블랙리스트 그리고 국정 교과서는 한 곳을 향한다

by 자이미 2017.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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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일가와 최순실 일가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육영재단' 사건은 그들이 얼마나 추악한지 잘 드러난다. '육영재단'과 관련한 폭력 사태에 숨진 박근혜의 5촌인 박용철 만이 아니라 최순실의 전 남편인 정윤회도 깊숙하게 개입되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정희와 박근혜;

최태민 최순실 비선 농단 육영재단에서부터 시작된 국정 농단의 역사


 
육영재단 사태가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명확하다. 재벌들의 돈을 거둬 만든 육영재단은, 사망 후 자식들에 의해 운영되었지만 잔인한 폭력 사태로 점철된 박씨 일가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독재 시절 만들어진 육영재단은 엄청난 자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전쟁은 오직 돈을 위한 싸움이었다. 


'박근혜 5촌 살인 사건'이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최근 숨진 박지만 회장 비서의 사망 사건 때문이다. 의문의 죽음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육영재단' 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시작이 바로 '육영재단'이기 때문이다. 


1969년 육영수에 의해 시작된 '육영재단'은 북한의 '소년궁전'에 뒤지자 급하게 부산과 서울에 '어린이 회관'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 청와대를 나와 '육영재단'을 운영한 것은 박근혜였다. 하지만 1987년 박근령에게 밀려난 박근혜는 2007년 다시 탈취에 나서며 폭력 사태로 이어졌다.  


1987년 박근혜가 '육영재단'에서 쫓겨난 이유는 바로 최태민과 최순실의 비선 농단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자산을 품고 있는 '육영재단'은 그렇게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의 궁전이었다. 그리고 그 '육영재단' 운영 방식이 결국 현재의 국정 농단으로 그래도 이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최태민 일가의 비선 농단을 문제 삼아 박근령은 자신의 언니인 박근혜를 몰아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물러나지 않았다. 2007년 깡패들까지 동원한 최태민 일가의 반격은 '육영재단'에 잔인한 폭력 사태를 몰고 왔다. 한센인들을 몰고 '육영재단'으로 향한 임두성은 박근혜에 의해 한나라당 비례대표 2번으로 금배지를 달기도 했다. 폭력배가 한나라당 비례대표 남자 1번이 되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한나라당 자체가 박근혜의 사당이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폭력 전과가 가득한 임두성이 금배지를 달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육영재단' 강탈과 관련해 혁혁한 공헌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박근령의 남편인 신동욱이 박정희가 심은 나무도 베어냈다고 분노해 '육영재단' 폭력 사태가 시작되었다고 했지만, 그 나무는 여전히 그곳에 존재했다. 그저 '육영재단'을 강탈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박근혜 5촌 살인 사건'은 단순하게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얼굴까지 공개하며 양심 고백한 당시 사태에 관련된 이의 증언을 봐도 알 수 있다. 세상에 알리는 것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흉악한지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증언들 속에서 중요한 인물은 정윤회다. 이 증언자는 자신이 정윤회를 목격했다고 밝혔다. 박근혜의 비서실장이었고, 최순실의 남편이었던 정윤회가 깊숙하게 관여 되었다는 것은 '육영재단'의 폭력 사태의 뒤에는 박근혜와 최순실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나 '국정 교과서'의 경우도 박근혜의 박정희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이어간 사업이다. 두 개의 사업 모두 박정희가 유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끌었던 탄압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독재자 박정희의 곁에서 모든 것을 보고 배운 박근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40년 전 아버지의 영혼을 따르는 것이 전부였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탄압의 도구로 삼은 것은 독재 시절 국가를 통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은 명확하다. 40년이 지난 후 박근혜가 다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운영한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자신과 각을 세운 모든 이들을 적으로 만들어 그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것이 곧 자신의 권력 사유화에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국정 교과서' 역시 박정희가 자신의 영구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국민교육헌장'을 무조건 외우도록 한 독재의 시절. 북한의 독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박정희 독재 시절의 방식은 '독재'란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40년 전 유물을 끄집어 낸 박근혜는 아버지라는 유령을 앞세운 정치를 했다. 그리고 박정희 시절 엄청난 재산을 끌어모은 최태민은 최순실로 이어져 다시 박근혜 곁에서 박정희 유령을 공유하며 국정 농단을 일삼았다. '육영재단'을 통해 이미 비선 농단이란 무엇인지 체험한 이들에게 '청와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육영재단'이나 '청와대'나 그들에게는 그저 사유화를 통해 사적 이익을 극대화 시키는 공간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김기춘이 '육영재단'과 '청와대' 모두에 깊숙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도 이미 드러났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부역자들은 그렇게 부당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국가가 붕괴되어도 자신의 이익만 취하면 그만 이라는 이들은 나라를 판 이완용과 을사오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엄청난 자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최순실 일가. 그들은 다시는 대한민국에 등장해서는 안 되는 희대의 사기꾼이다. 최순실만이 아니라 최순득 역시 국정 농단에 깊숙하게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여러 언론을 통해 언급되어왔다. 최태민을 중심으로 최순득과 최순실, 그리고 그 딸들로 이어지는 이 악의 고리는 이제 끊어내야만 한다. 


박정희를 위해 대한민국 전체를 제물로 재단에 올린 박근혜. 그런 박근혜를 예수에 비유하는 한심한 자들의 마지막 충정은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닌 신격화 된 한 사람을 위한 애절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가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독재자 박정희와 박근혜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40년 혼으로 연결된 독재는 끝났다. 이제 산적한 적폐들을 청산하고 제대로 된 대한민국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할 시점이다. 


-세월호 1000일 2차 특조위가 시작되어야 한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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