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10. 14:34

봉준호 기생충 작품상 포함 4관왕 새 역사를 썼다

대중문화 대국이라 자처하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를 가졌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대 이변이 벌어졌다.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그들이 미국에서 제작된 작품이 아닌, 한국 영화에 4관왕을 안긴 것은 이변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이는 절대적인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아카데미 시상식의 꿈의 무대다. 미국의 대중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중요한 상들을 휩쓴 한국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한국 영화역사 101년 만의 기적은 그렇게 봉준호 감독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전 세계 공통의 문제를 담고 있는 <기생충>은 칸 영화제 역사상 처음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 역시도 기적이었다. 한국 영화로서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였으니 말이다.

 

칸을 시작으로 수상 로드는 전 세계로 이어졌다.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에서 <기생충>은 싹쓸이를 하듯 수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물결은 도도하지만 거침없이 미국까지 이어졌다. 전 세계 대중문화를 진두지휘한다고 확신하는 미국은 거대한 시장이자 권위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로컬 영화제라는 봉준호 감독의 도발은 미국에서도 큰 화제였다. 철저하게 보수적인 아카데미 시상식은 깊은 전통만큼이나 비난도 거센 시상식이기도 하다. 백인 외에는 상을 받기 어려운 그곳은 많은 변화도 있었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시상식이었다.

 

아카데미보다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골든 글로브에서도 <기생충>은 그들의 원칙으로 인해 작품상 후보에도 오를 수 없었다. 비록 외국어영화상은 받았지만, 그만큼 대중문화의 전부라 자부하는 그들의 보수성은 강력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큰 변화를 스스로 알렸다. <기생충>이 시상식장에서 울린 첫 번째는 바로 '각본상'이었다. 외국어영화에게 다른 것도 아닌 각본상을 수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자막있는 영화는 보지 않은 미국에서 외국어로 쓰여진 영화에게 각본상을, 그것도 가장 보수적인 아카데미에서 수여했다는 것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외국어 영화상에서 올 해부터 '국제장편영화상'으로 명칭을 바꾼 이 부분 수상자 역시 <기생충>이었다. 다른 멋진 작품들도 존재했지만, 이번 시상식 시즌은 <기생충>으로 인해 묻힐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전까지 모두가 최소한 '국제장편영화상'은 받을 것이라는 예측은 맞았다.

2관왕에 오른 <기생충>이 다시 불린 것은 '감독상'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단상에 올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함께 경쟁을 한 쟁쟁한 다른 감독들에 경이를 표했다. 핵심적인 본상에 대한 평가는 <1917>의 샘 멘데스 감독이었다. 전통적으로 아카데미가 전쟁 영화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기대치는 더 컸다.

 

골든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 등에서 이미 <1917>은 작품상과 감독상 등을 샘 멘데스에게 주면서 아카데미 시상식 역시 그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들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보수적인 아카데미 시상식은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대변화를 알렸다.

 

"어렸을 때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는 이 말은 함께 후보에 오른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한 말이다"

 

수상 소감을 말하며 봉준호 감독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향해 경의를 표했다. 그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 공부를 한 자신이 이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표했다. 봉준호 감독의 이 경의는 기립박수로 마스터피스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모두가 경의를 표하는 시간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오랜 시간 봉준호 영화를 사랑하고 찬양했던 퀜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형님"이라는 표현을 하며 감사를 표하는 봉 감독. 그는 아카데미가 허락만 해준다면 '텍사스 전기톱'으로 다섯 등분을 해서 나눠 가지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화광다운 소감으로 좌중을 웃게 만드는 봉준호 감독은 소감으로도 모두를 사로 잡았다.

 

그렇게 설마했던 시상식은 마지막 대상인 작품상 수상자로 <기생충>을 호명하는 순간 절정에 올랐다. 설마 작품상까지 수상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높고 높은 벽을 넘어서 작품상까지 받은 <기생충>은 진정한 승자였다.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역사상 두 번째 작품이 되었다.

 

1956년 <마티> 이후에 처음이다. 미국 영화라는 점에서 한국 영화의 이 기록과는 사뭇다르다. 바른손 대표의 소감이 끝나자 막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의 관객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하라며 생방송 연장을 요청했고, CJ 이미경 부회장의 소감까지 하게 되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아시아권 감독으로는 이안에 이은 두 번째 감독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안 감독은 할리우드 작품으로 받았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로 받은 봉준호 감독과는 또 다르다. 6개 후보에 올라 4개의 핵심적인 상을 받은 <기생충>은 세계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여전히 배우들이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 역시 도전을 통해 깨나가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가장 유력했던 <1917>은 기술적인 분야인 촬영, 음향효과, 시각효과만 수상한 채 물러나야 했다. 마틴 스콜세지가 무관에 그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위대한 역사로 남겨질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 참사 부모와 함께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리고 현장에서 희생된 모든 아이들의 펼침막도 준비되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참사 속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 그들의 모습은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깊은 울림으로 남겨졌다.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그날의 기록은 이제 남겨진 모든 이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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