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드라마인 <개과천선>이 16회로 종영되었습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18회 종영이어야 했지만 <개과천선>은 2회나 축소되어 종영을 해야 했습니다. 주인공인 김명민의 어쩔 수 없는 일정으로 인해 조기 종영되어야 했다고 하지만, 아쉬움이 커지는 것은 그들이 담아낸 이야기가 대담하고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법피아가 얼마나 두려운지 보여주었다;
사회 부조리에 정면승부한 개과천선, 사회를 지배하는 거대 권력의 민낯을 이야기 하다
김명민과 김상중이라는 절대 강자들이 연기로 자웅을 겨뤘다는 것만으로도 <개과천선>은 분명 웰메이드 드라마였습니다. 이 드라마가 대단한 것은 연기자들의 뛰어난 연기만은 아니었습니다. 법조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중요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이제는 완전히 뿌리를 내린 거대한 로펌과 그들이 사회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은 <개과천선>을 다시 한 번 명확해졌습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들이 진정한 지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당연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민낯을 드러낸 드라마 <개과천선>은 그래서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최대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가 교통사고 후 기억상실에 걸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는 진부한 듯했지만, 흥미로웠습니다. 약자의 편이 아닌 강자의 편에 서서 엄청난 부를 쌓아 올리던 대형로펌의 에이스가 사고를 당하면서부터 <개과천선>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론스타 외환은행 사건, 동양그룹 사태, 삼성 기름유출사고, 키코사태, 골드만삭스와 진로 사태 등 우리 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을 잘 버물려낸 <개과천선>은 그래서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굵직했던 사건들을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담아내고,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과정이었습니다.
법은 공정하게 잘잘못을 가리는 기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은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라는 점에서 이런 믿음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일 수밖에 없습니다. 빈부와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법은 가장 공정한 자대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런 공정한 법논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단순히 탈주범 지강헌의 넋두리가 아닌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절대 가치라는 점에서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공정한 법을 바라는 마음은 모두에게 동일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법은 언제나 가자의 도구로만 활용되어 왔습니다. 독재자가 지배하면 그 법은 철저하게 독재자의 만행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독재자의 손발이 된 법은 이제는 재벌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거대한 사건들 속에 돈을 가진 자들은 법 위에 군림하고 돈이 없으면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사회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우리가 더욱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법은 그저 언제나 강자의 몫이었습니다. 강자 앞에서도 당당해야 할 법은 강자들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그런 법은 언제나 서민들을 옥죄는 도구로 활용될 뿐이었습니다.
지배 권력에 의해 마음대로 활용되는 법은 잔인하게 우리 사회를 구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서양식 로펌이 자리하고 있음은 드라마 <개과천선>만 봐도 알 수 있는 정보입니다. 김석주라는 걸출한 변호사가 대형 로펌에서 시작해 약자의 편에 서는 과정은 이 드라마를 위대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흔하디흔한 로맨스는 초반 반짝 하는 듯했지만, 로맨스보다 중요했던 사회적 문제에 묻히며 사라졌습니다. 처음부터 의도되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로맨스가 사라져 더욱 흥미로운 재미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초반 드라마 시청자들을 위한 미끼처럼 내던져진 로맨스는 인간에 대한 고민으로 넘어가며 보다 강렬한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반가웠습니다.
달달한 로맨스를 버린 대신 드라마는 사회에서 일상화되어가는 부조리에 대해 집중해갔습니다. 자신이 옹호하던 자들에게 칼을 내세운 김석주라는 인물을 쫓다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거대한 로펌에 맞서 싸우는 뛰어난 변호사의 일방적인 능력 보여주기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다행이었습니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냉혹하고 잔인했던 변호사가 아닌 인간성을 회복한 변호사 김석주라는 인물로 남겨졌다는 것은 작가의 강렬한 의도였습니다.
김석주라는 인물이 다시 기억을 회복하고 아픈 상처로 인해 다시 한 번 아버지와 벽을 쌓고 다시 잔인한 괴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은 보는 시청자들마저 다행이었습니다. 작가가 김석주에게 영원한 기억상실을 선물한 것은 우리 사회에 김석주와 같은 특별한 존재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거대한 법이 스스로 권력의 노리개로 전락한 상황에서 이런 노리개에 대항할 진정한 법조인 하나 정도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이 적을 상대로 승리하는 멋진 모습을 보고 싶었던 시청자들에게 <개과천선>은 마지막까지 뒤통수를 치는 드라마였을 듯합니다. 김석주가 부패한 재벌까지 구하는 모습을 보이며 과거의 트라우마에 다시 휩싸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그는 성장해가고 있었습니다. 부패한 자들을 도와 줄 수밖에 없는 자신의 현실. 하지만 그런 부패한 자를 통해 더욱 힘든 처지에 놓인 이들을 구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균형을 잡으며 도움을 주는 것 역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유연한 마음은 그의 성장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노조와의 상생을 강제하기 위해 제멋대로인 재벌 총수를 압박하는 김석주의 모습은 통쾌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거대 로펌의 주인인 차영우의 대화는 큰 충격 그 이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재벌들이 노조를 억압하는 틀을 만든 것이 바로 김석주라는 사실입니다. 노조를 구하기 위해 부패한 재벌을 도운 김석주가 자신이 노조를 억압하는 법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선과 악이 공존했던 김석주라는 캐릭터, 그리고 그런 선악의 공존이 만든 흥미로운 이야기들의 전개는 극과 극을 오가며 우리 사회의 문제는 무엇인지 다시 들여다보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개과천선>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드라마였습니다. 자신이 구속하기 위해 만든 법을 스스로 파괴하고 자유를 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보면서 차영우가 "인생은 그래서 재미난 겁니다"라는 마지막 대사는 큰 울림 그 이상으로 다가왔습니다.
만약 예정된 2회를 모두 채웠다면 <개과천선>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작가는 어쩌면 그 거대한 법과 권력이 하나가 되고, 그런 거대한 권력이 우리의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순진한 사람이 많은거냐?"
극중 김석주의 발언은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순진하거나 순박하거나, 이런 애정이 담긴 단어가 아닌 바보처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당하는 존재로 전락한 서민들에게 권력은 그저 거대한 생존전략을 잔인함으로 담아 세상을 지배하는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배 권력은 언제나 오만불손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얼굴들을 하고 대중들을 기만합니다. 그런 기만이 기만으로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공격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이 바로 지배권력 집단들의 민낯입니다. 단순히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지도층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의 속내는 <개과천선>에 적나라하게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김석주가 던진 순진한 사람. 에둘러 표현한 바보같이 당하기만 하는 대중들의 변화가 절실해진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요즘 절실하게 느끼는 감정일 것입니다. <개고천선>은 시청자들에게 바로 김석주의 대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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